[취재현장] 열정 강요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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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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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한지연 기자=요즘 패션 및 유통업계에 '열정페이'란 말이 유행이다. 열정페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줄테니 너희의 열정으로 쥐꼬리만한 페이(봉급)를 극복해보라'는 냉소적인 의미가 담겼다.

주로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패션, 미용, 방송계에서 많이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일반 대기업은 물론 편의점, 패스트푸드점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 소셜커머스 위메프의 수습사원 전원해고와 GS25(편의점) '열정페이' 강요가 논란이 됐지만 이 같은 문제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패션노조는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대다수의 의상실 인턴급여가 최저임금은커녕 교통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고발했다.

피팅모델비를 아끼기 위해 인턴들에게 항상 44~55사이즈를 유지하길 강요하는 디자이너도 많았다. 미용업계에서도 견습생들의 '열정'을 무기로 저임금과 고된 노동시간, 성추행이 비일비재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기업에서도 사원을 채용할 때 인턴의 형태로 열정페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를 '업계 관행'으로 부른다.

열정페이는 기성세대가 젊은층에 가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관행도 모르는 철없는 소리'로 취급된다. 

부조리한 관행과 조직문화도 헝그리 정신으로 견뎠던 기성세대들이 지금의 청년층에 '나 때는 더 힘든 것도 참았다'는 생각을 주입시키며 또 다른 착취구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란 목표 아래 사회와 조직에 모든 것을 올인하던 7080년대와 지금은 다르다. 따지고 보면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어른들도 과거엔 열정페이의 희생자였을 것이다. 지금의 비극은 모든 문제가 거기서 멈췄다는 데 있다.

어른들이 과거 불합리한 관행으로 피해를 보았다면 고치는 게 인지상정이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듯 착취는 세대를 거슬러 대물림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과거엔 아무렇지 않았던 열정페이가 논란이 된건 지금 젊은층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버티면 뭔가를 기대할 수 있었던 기성세대와 버텨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의 청년층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시대의 충돌이 열정페이라는 세대간의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이 열정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청춘을 착취당하고 있다. 이제는 불합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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