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경제·안보 아웃소싱' 유럽의 위기, 한국은 얼마나 자립적인가

  • 에너지·국방·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이 드러낸 취약성…한국도 전략적 자립 기반 점검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까지 한국을 찾아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유럽연합(EU) 내 경제 규모 1·2·3위 국가의 정상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유럽 주요국 정상들이 이처럼 잇따라 한국을 찾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럽이 처한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주요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경제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계엄 사태라는 정치적 위기에도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 역시 국제사회가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경제력과 기술력, 정치적 안정성을 두루 갖춘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유럽 입장에서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공급망과 안보, 첨단기술 분야에서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유럽의 러브콜을 단순히 한국의 위상 상승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유럽이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유럽은 값싼 에너지 공급원을 잃었고, 이는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되고 있다. 여기에 이란 전쟁까지 겹치면서 중동발 에너지 공급 불안이라는 새로운 위험도 떠안게 됐다.

안보 측면에서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커졌지만, 전통적인 안보 우산이었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오히려 유럽에 대한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압박까지 강화하면서 유럽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 역시 더 이상 값싼 제품을 공급하고 유럽산 상품을 사주는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 거대한 시장과 높아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럽 기업의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무역 갈등의 대상이 됐다.

에너지는 러시아, 안보는 미국, 하드웨어 공급망은 중국, 디지털 기술은 미국에 아웃소싱하며 의존해 온 유럽의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격화되고 있는 시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최적화됐던 국제 분업 체제가 작동했지만,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 등 분절화 흐름이 대두되자 이같은 체제가 오히려 약점으로 바뀐 것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은 평상시에는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외부 환경이 급변하면 국가 경제와 안보를 위협하는 구조적 위험으로 바뀐다.

유럽의 위기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은 많은 부분이 유럽과 닮아 있다. 에너지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으며, 안보는 미국과의 동맹에 크게 기대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은 미국과 중국의 기술·통상 갈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유럽이 겪는 어려움은 한국도 언제든 마주할 수 있는 현실이다.

동맹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협력이 의존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의존은 곧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반도체에 집중된 산업 경쟁력을 확대하면서 방위산업과 인공지능(AI) 등 미래 전략산업에서의 경쟁력을 꾸준히 다져 나가야 한다. 

주요 유럽 정상들의 잇따른 방한은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시켜 준다. 이제는 그 위상에 걸맞은 전략적 자율성을 갖추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외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국가를 넘어, 국제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스스로 버틸 수 있는 국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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