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경쟁력 회복을 발판으로 미래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부진 속 반도체 수장을 교체하는 인적 쇄신을 단행한 데 이어 차세대 제품 양산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수주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투자 여력을 로봇·전장·공조 등 신사업 육성에 투입할 방침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27일 회장 취임 4주년을 맞는다. 별도의 공식 행사나 대외 메시지는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주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차세대 제품 경쟁력 회복과 AI 메모리 호황으로 반도체 사업이 반등하면서 미래 사업 투자에도 여력이 생겼다.
반도체 사업 재건의 출발점은 2024년 단행한 수장 교체였다. 삼성전자는 HBM3E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자 전영현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으로 복귀시켰다. 전 부회장은 HBM4의 핵심 기반인 10나노급 6세대(1c·D1c) D램 개발을 직접 챙기며 기술 경쟁력 회복에 주력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6월 D1c 개발을 완료하고 양산 이관 승인(PRA)을 획득했다. 이어 7월 생산라인 구축을 위한 장비 발주에 착수했다. D1c는 HBM4에 적용되는 핵심 D램으로, 차세대 제품 양산을 위한 기술적 기반을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세계 최초로 HBM4 양산·출하에 나섰다. 경영진 교체와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한 전략이 제품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고객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대규모 반도체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브로드컴과 메모리·파운드리 분야 협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특히 HBM4에 자체 파운드리 4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베이스다이를 적용하는 등 메모리와 시스템LSI, 파운드리를 모두 보유한 종합 반도체 기업 강점이 부각됐다. AI 반도체 시장에서 첨단 공정과 패키징을 연계한 통합 솔루션 공급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도 사업 확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취임 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리사 수 AMD CEO 등과 잇달아 만나 AI 반도체와 미래 기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 범위를 메모리 공급에서 파운드리와 AI 인프라 전반으로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투자 여력은 신사업 육성에도 투입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독일 공조기업 플랙트그룹과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Xealth)를 인수했다. 자회사 하만을 통해 독일 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냉각과 전장, 헬스케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다.
로봇 분야에서는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고 지난 7월 디바이스경험(DX)부문 대표이사 직속으로 RX사업추진실을 신설했다. 이 회장이 '제2의 반도체'로 점찍은 바이오 분야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위탁개발생산(CDMO)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미래 사업 확대에 맞춰 그룹의 경영 조직도 재정비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정식 조직인 사업지원실로 개편하고 박학규 사장을 실장에 임명했다. 오랜 기간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해 온 정현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경영진 세대 교체를 단행했다. 특히 사업지원실 산하에 인수합병(M&A) 전담 조직을 신설해 계열사 간 투자 전략을 조율하고 신사업 발굴을 지원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오는 11월로 예상되는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는 반도체 사업의 경영진 재편과 미래 사업 조직 강화 여부가 주요 관심사다. 특히 전영현 부회장이 겸직 중인 메모리사업부장 직책을 분리해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비메모리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도록 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해 사업지원실 출범과 주요 경영진 교체로 조직을 정비한 만큼 올해는 기존 경영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AI와 로봇 등 신사업의 실행력을 높일 인재 발탁과 조직 개편에 무게가 실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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