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과 증권가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토큰증권(STO)이다. 흔히 '조각투자'라고도 불리는 이 시장이 내년 초에 본격 개화할 전망이다. STO는 분산원장(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화한 증권이다. 이론적으로는 증권, 부동산, 콘텐츠 등 거의 모든 것을 증권화해서 거래·유통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이 시장에 대한 이해도는 낮지만, 관련 업계에선 벌써부터 '합종연횡' 바람이 거세다. STO 시장 선점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STO인프라·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내로라하는 은행, 증권사들이 앞다퉈 이들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기 위해 줄을 서는 중이다.
블루어드도 최근 '몸값'이 급상승한 곳 중 하나다. 백만용 블루어드 금융공공부문 대표를 최근 만나 국내 STO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백 대표는 PwC컨설팅 금융본부 상무, AT커니코리아 글로벌파트너·부사장, 메타넷핀테크 대표 등 금융·IT컨설팅 분야에만 20년 넘게 몸담은 디지털금융 전문가다.
"STO는 기술이 아닌 '금융'"
백 대표는 "STO 시장을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바라보면 안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STO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시장을 지배했던 '조각투자'와 '블록체인 중심의 접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현재 STO와 관련해서는 상위법 개정이 끝나고 하위법령 정비 단계에 들어선 단계다. 사업화 대상도 미술품·부동산·한우 등 비정형증권 중심에서 채권·펀드 등 정형증권으로 확대돼 가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4일 발표한 '토큰증권 정책방향'에서 기존 조각투자뿐 아니라 채권과 펀드 등 정형증권으로 STO 범위를 넓히는 방향을 제시했다. 내년 2월 개정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시행 이후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채, 비상장주식 신탁방식 등을 단계적으로 토큰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백 대표는 "그동안 비정형증권을 토큰화하는 사업은 당장 돈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인식이 컸는데, 최근에는 증권사들이 정형증권 토큰화 쪽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초기 시장에서는 대형사들이 우선 허용된 정형증권 토큰화부터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사업형 투자계약증권도 활성화해야"
백 대표는 STO 시장이 커지기 위해선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이 활성화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은 특정 실물자산의 일부를 직접 소유하기보다 하나의 사업에 투자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성과를 약정에 따라 배분받는 구조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투자계약증권은 미술품이나 한우 등 특정 기초자산의 지분을 투자자들이 공동으로 보유하는 공유지분형이 대부분이다.문제는 유통이다. 공유지분형 투자계약증권은 증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기초자산의 공유지분 이전 문제까지 함께 처리해야 한다. 민법상 공유지분 양도 문제 때문에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파는 유통시장 구축에 제약이 있다. 이에 금융당국도 공유지분형 투자계약증권의 유통방안과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의 증권신고서 심사 기준 등을 연구하고 있다.
백 대표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려면 지금까지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자기 지분을 팔아야 했다"며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이 활성화되면 지분을 주는 대신 투자를 받고 성과를 나눠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자본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은 미래 사업의 성패가 투자성과를 좌우하는 만큼 투자자 보호와 가치평가가 중요하다. 백 대표는 "어차피 금융에는 안정적인 상품만 있는 게 아니다"라며 "하이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상품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사는 자체원장, 중소형사는 공동원장"
증권사들의 토큰증권 인프라 전략도 갈릴 것으로 전망했다. 백 대표는 "미래에셋증권, 하나증권, 한화투자증권처럼 발행 플랫폼과 분산원장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는 회사가 있을 수 있고 공동 분산원장을 쓰면서도 자체 시스템을 함께 갖추려는 곳도 있을 수 있다"며 "아예 자체원장을 만들 역량이나 비용 여력이 없어 공동원장만 사용하는 회사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중소형사는 비용 때문에 공동 분산원장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면서도 "향후 토큰증권과 다른 디지털자산 사업까지 계속 확대할 생각이라면 금융그룹 계열사나 대형사는 자체원장을 가지고 가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공동 분산원장을 이용해 온체인 상품을 발행한 뒤 나중에 자체 분산원장으로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토큰발행이 끝? 즉시결제까지 가야”
내년 초 관련 법이 시행되면 STO 시장은 얼마나 커질까. 백 대표는 시장이 단숨에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냉정하게 보면 법 시행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위 규정도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며 "토큰증권 제도만 시행한다고 시장이 바로 열리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큰증권으로 발행될 신종증권에 대한 제도 정비도 함께 끝나야 한다"며 "아직 해결해야 할 게 남아 있어 초반에는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특히 그는 지급결제 인프라가 함께 발전해야 토큰증권의 장점이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제대로 된 온체인 자산시장이 활성화되려면 즉시결제가 돼야 한다"며 "진짜 365일 24시간 거래가 되고 월렛에서 월렛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왜 굳이 이걸 토큰으로 하느냐'는 질문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증권만 토큰화해 놓고 지급결제는 기존 방식 그대로라면 블록체인의 장점을 살리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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