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나와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다른 국적, 다른 성별과 정체성,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말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다양성의 시작이라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우리는 그 다름을 허락하고 있는가.
배우에서 연출로 자리를 옮긴 남연우 감독의 영화 ‘초미의 관심사’는 이 질문을 아주 유쾌하고 거침없는 방식으로 던진다. 2020년 개봉한 영화는 이태원에서 가수 ‘블루’로 활동하는 순덕(김은영)과 10년째 따로 살아온 엄마 초미(조민수)의 하루를 따라간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친한 척 하지 마”, “너나 엄마라고 부르지 마”라고 받아칠 만큼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만난 이유는 막내 유리가 초미의 가겟세와 순덕의 비상금을 들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돈을 되찾고 유리를 찾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목적 앞에서 두 사람은 단 하루 손을 잡기로 한다. 그렇게 파출소와 고시원, 학교와 타투숍 등을 오가며 이태원 곳곳을 헤맨다.
하지만 유리를 찾는 일이 진행될수록 영화의 관심은 점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유리는 어디에 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10년 동안 서로를 외면했던 엄마와 딸이 왜 그렇게까지 멀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가족은 이상한 관계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도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타인에게라면 “그 사람의 삶이니까”라고 넘길 일을 가족에게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다.
순덕과 엄마가 그렇다. 순덕에게 엄마는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한 사람이고, 엄마에게 순덕은 자신과 너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딸이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기보다 상대가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에 맞춰주기를 기대했던 시간만큼 두 사람 사이에는 골이 깊어졌다.
그래서 영화에서 인상적인 순간 중 하나는 유리를 찾아다니던 두 사람을 본 고시원 관리자가 “가족 맞아요?”라고 묻는 장면이다. 그러자 엄마는 되묻는다.
“가족은 다 같아야 하니?”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닮기를 기대한다.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비슷한 선택을 하고, 서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주기를 바란다. 자식이 부모와 다른 길을 선택하면 ‘철이 없다’고 하고, 부모가 자식의 기대와 다르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가 상대방의 다름을 지워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두 사람의 여정을 거창한 화해로 포장하지 않는다. 엄마와 순덕은 하루 동안 함께 유리를 찾아다니면서도 계속 부딪힌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서로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결국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태원에서는 ‘다름’이 특별하지 않다. 영화가 이태원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순덕과 엄마가 유리를 찾아다니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태원이라는 공간 역시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들을 굳이 ‘특별한 사람들’로 만들어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일 수 있고, 누군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그 삶은 그저 일상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다양성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양성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해라는 말에는 어쩌면 상대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해야지’라는 말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저 사람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려운 연습은 낯선 타인보다 가족에게서 먼저 시작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영화 후반부에도 모녀 사이에는 화해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순덕은 초미에게 묻는다. “밥이나 해 줬어?”
그리고 하루 동안의 추격전이 끝난 뒤 초미는 순덕에게 말한다. “언제 밥 먹으러 와!”
처음의 두 사람을 생각하면 의외로 담담한 말이다. 서로의 상처를 모두 해결했다는 선언도 없다.
하지만 어쩌면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 이해하지 못해도 다시 만날 자리를 남겨두는 것.
영화의 제목인 ‘초미’는 엄마의 이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막내를 쫓는 일이 두 사람의 가장 큰 관심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루 동안 서로를 다시 바라본 뒤 제목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결국 그들이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돈도, 사라진 유리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이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다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그것이 ‘초미의 관심사’가 말하는 가족의 모습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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