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영의 우.다.세] 역사 앞에 '그 이름'을 꺼내놓는 일 -영화 '내 이름은'

  • 제주 4.3사건과 교실의 폭력…세대를 관통하는 폭력의 형태

▲ ‘다양성 영화’는 단순히 장르를 뜻하기보다 상업 중심의 주류 영화와는 다른 시선·형식·주제를 가진 영화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적, 장르, 소수성 등을 포함하는 범주를 갖고 있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며 외면했던 이야기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마주하는 역할을 기대해본다. '우'리들의 '다'양한 '세'상을 위해.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사람에게 이름은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죽음의 이유도, 죽음의 장소도, 때로는 죽었다는 사실조차 오랫동안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영화 ‘내 이름은’은 바로 이 ‘이름’에서 출발해 제주 4·3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상처를 개인의 삶 속으로 끌어온다.

영화의 시간은 1998년과 1949년 제주를 오간다. 한쪽에는 자신의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18살 소년 영옥(신우빈)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어머니 정순(염혜란)이 있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나이의 영옥은 남자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이름이 싫다. 무엇보다 촌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신을 ‘민종’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고 하고 정순에게도 개명을 해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정순은 영옥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 영옥의 이름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기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정순은 9살 이전의 기억 대부분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매년 봄이 찾아오면 의식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증상을 겪지만 정작 무엇 때문에 그런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정순은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봉인해뒀던 기억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하고 자신의 기억을 따라가면서 1949년 제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영옥의 이야기는 이에 비에 한 청소년의 성장담으로 보일 수 있지만 교실 안의 상황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서울에서 전학 온 경태(박지빈)가 영옥의 반에 등장하면서 돈을 무기로 한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경태는 힘을 이용해 교실 안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고, 영옥은 그 질서에 휘말린다. 부당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태의 힘에 끌리고, 어느 순간에는 폭력의 구조를 방관하거나 그 일부가 된다. 반면 친구 민수는 경태의 부당한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결국 영옥은 경태가 만들어놓은 질서와 민수 사이에서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이때 영화가 보여주는 학교폭력은 단순히 ‘나쁜 학생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힘을 행사하고 누군가는 그 힘에 기대며 또 누군가는 잘못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 폭력이 개인의 행동을 넘어 집단의 질서가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은 교실은 정순이 겪은 1949년 제주의 봄과 묘하게 겹쳐진다.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정순의 사연은 제주 4·3 사건에서 비롯됐다.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제주읍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 사건을 시작으로 무장봉기와 진압 과정이 이어지며 7년 7개월 동안 제주 사회를 휩쓴 비극이다. 해당 사건은 당시 사회상과 맞물려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피해자 중 많은 이들이 평범한 도민들이었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노인과 여성, 어린아이 등도 포함됐는데 군과 경찰은 폭력 앞에 도망칠 수 밖에 없던 이들을 모두 사살하거나 불에 태우는 등 방식으로 살해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 4.3 사건의 총 희생자는 2만 5000∼3만 명 가량이다. 이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비극이 끝난 뒤 총성은 멈췄지만 희생자의 가족들은 연좌제에 따른 감시와 사회적 제약을 겪어야 했다.

정순 또한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아픔을 겪은 피해자다. 영옥의 이름은 단순한 가족사가 아닌 정순이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폭력 속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이었다. 

‘내 이름은’은 제주 4·3 사건을 과거의 역사로 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힘 있는 사람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라진 사람들의 이름을 너무 쉽게 잊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더 이상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함께 기억하는 것.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은 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을 향한 우리의 가장 작은 예의일지도 모른다.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사진=영화 '내 이름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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