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개월간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12일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호르무즈 다국적 군사 임무 관련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또 국제법과 해상로 안전, 한미동맹과 한반도 안보상황, 국내법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현실적인 기여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8월에는 군사적 기여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청와대는 8월 17일 한반도 대비태세와 국내법 절차 등을 감안해 실질적·군사적 기여 방안을 미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이란 관련 기여에 불만을 표출하고 한미 연합연습 축소를 지시한 시점과 맞물렸다.
9월 들어서는 구체적인 파견 전력과 절차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3일 해상초계기·군수지원함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국방부와 청와대는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에는 청와대 관계자가 전투뿐 아니라 비전투·수색 등 다양한 기여 방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와대는 이후 특정 방안을 선택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부연했다.
9일 한국시간 새벽에는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안전 통항을 위한 국제연대 논의가 발표됐다. 청와대는 양국이 실질적 기여 방안을 논의했다면서도, 이를 파병 결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지조사단 파견 역시 검토 과정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정부가 군사적 기여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최종 결정에는 선을 긋는 것은 외교적 협상 여지를 확보하고 국내 여론을 살피려는 행보로 읽힌다. 참여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면서 파견 규모와 임무를 조율할 시간을 벌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참고할 만한 방향은 영국·프랑스가 추진하는 방어적 다국적 임무다. 전력을 주변 지역에 배치하되 실제 작전 개시는 현지 여건에 따라 판단하는 방식이다. 한국 역시 참여를 결정한다면 이러한 단계적 접근을 바탕으로 감시·수색 등 지원 임무에 무게를 두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은 지난 5월 기뢰대응 무인체계와 전문인력, 전투기·구축함 등을 기여 전력으로 제시하면서 임무의 방어적·독립적 성격을 강조했다. 실제 임무는 여건이 허용될 때 가동한다는 조건도 명시했다. 전력 배치가 곧바로 작전 참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에도 시사점이 있다.
지원 중심의 제한적 참여가 절충안이 될 수 있는 배경에는 미국이 기대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한국 등 동맹국의 참여를 통해 대이란 정책과 항행 안전 활동에 대한 국제적 지지를 부각하고, 동맹국의 부담 분담을 끌어냈다는 성과를 내세울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는 한국군이 제공할 전력의 규모나 군사적 역량 못지않게 한국의 참여 자체가 미국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한국으로서도 소규모 전력을 보내 제한적인 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동맹의 요구에 응하면서 전투 연루에 따른 부담을 줄일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파병 전력의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절충 가능성과 맞닿아 있다. 당초 언급됐던 군수지원함을 제외하고 해상초계기와 폭발물처리(EOD) 전력 등 전문 전력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방안이다. 한국이 참여를 결정한다면 임무를 감시·수색으로 한정하거나 전문인력을 통해 항행 안전 확보를 지원하는 방식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재외국민 보호와 유사시 철수 지원을 명분으로 주변 지역에 전력을 배치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이란 전쟁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소규모라도 파병하면 미국으로서는 국내외에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의 (파병) 압박이 거세진 만큼, 국익을 위한 현실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전쟁의 장기화로 걸프 국가들에 불안 요소가 있는 만큼 재외국민 철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일부 전력을 배치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파병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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