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나면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경험은 타인에 대한 불신을 넘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관계를 피하는 방식으로 굳어진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는 삶이 반드시 외롭지 않은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에 또 다른 관계를 향해 나아간다. 영화 '새벽의 탱고'는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한 여성이 자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면서 겪는 변화를 그린다.
주인공 지원(이연)은 믿었던 친구에게 통장을 빌려줬다가 사기를 당해 보증금까지 잃는다. 공대를 졸업한 뒤 하루아침에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그는 숙식을 제공하는 공장에 취직하고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원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사람을 믿었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은 그를 더욱 경계하게 만들고, 타인의 호의에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다.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피하는 그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쪽을 택한다.
처음에는 주희의 다정함이 지원에게 낯설고 부담스럽다. 누군가의 친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원에게 주희의 행동은 때로 지나친 관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서툴지만 꾸준하게 다가오는 주희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지원의 마음에도 조금씩 온기가 스며든다.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자신의 곁을 주희에게 내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지원은 주희를 통해 누군가와 함께하는 일상의 따뜻함을 경험하고, 주희 역시 지원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다정함이 누군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는 순간을 마주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장의 어린 조장 한별(박한솔)이 있다. 평소 주희가 동생처럼 챙겼던 한별과 지원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세 사람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한별에게 지원은 못마땅한 존재이기도 하다. 갓 입사한 지원이 공대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조장 자리를 맡게 되자, 자신이 쌓아온 위치와 관계가 흔들린다고 생각하기 때문. 한별은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원에게 가감없이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현우의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발생하고 당시 기계를 작동시킨 주희는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으려 한다. 그런 주희를 지켜보던 지원은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조장의 허락이 있어야만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었음에도 현우가 요구하는 위자료 명목의 1000만원을 자신이 혼자 부담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타인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채 거리를 두었을 지원은 주희의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고 주희를 설득하려 한다. 혼자 짊어질 필요 없다고. 그러나 주희는 대신 자신과 함께 탱고를 춰 달라고 말한다.
탱고는 혼자 출 수 없는 춤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호흡을 맞추며, 때로는 자신의 걸음을 늦춰 상대와 보폭을 맞춰야 한다. 자신의 방식만 고집해서는 함께할 수 없다. 영화에서 탱고는 두 사람의 관계를 비추는 상징이기도 하다. 주희는 서툰 스텝으로 지원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굳게 닫힌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고, 지원 역시 주희와 춤을 추면서 누군가와 보폭을 맞추고 함께하는 일의 기쁨을 조금씩 알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정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이들의 관계를 오해한다. 주희와 지원이 손을 맞잡고 탱고를 추는 모습을 봤다며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으로 번지고 급기야 공장 사람들은 두 사람을 '레즈비언'이라며 수군거린다. 주희에게 마음을 열어가던 지원은 타인의 시선 앞에서 다시 한 번 움츠러든다. "쟤랑 난 아무 관계가 아니다"라며 다수 앞에서 관계를 부인하고, 그 말이 주희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다.
이후 주희는 오히려 지원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점차 거리를 두고 사람들 앞에선 말도 섞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원의 안위만을 걱정했던 주희와 지원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주희가 사망하면서다. 문이 망가진 창고 안에서 갇힌 채 숨을 헐떡이다 끝내 숨지고 만 것.
주희가 떠난 뒤 지원은 울지 않는다. 주희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절차를 마친다. 이후 두 사람이 함께 탱고를 배우기 위해 찾았던 학원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이어폰을 나눠 끼고 춤을 췄던 공원을 지나며 끝내 오열한다. 그 눈물은 한때 자신의 곁에 머물렀던 주희를 향한 그리움이자,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한 애도였을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춤을 추던 평범한 일상이 더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비로소 마주하는 순간이다.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 지원은 주희를 만나 누군가와 함께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사람이 사라진 뒤에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까지 경험한다. 주희와의 만남은 지원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줬다. 관계는 언제나 영원할 수 없지만 함께했던 시간은 한 사람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어쩌면 주희는 지원에게 아직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 것인지 모르겠다. 비록 그 희망은 사라졌지만 지원은 주희의 따뜻함을 평생 안고 살아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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