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역 참배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박세진 기자  swatchsjpajupresscom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박세진 기자 = swatchsjp@ajupress.com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홍범도 장군 묘역에 분향했다. 전날 한국 정부와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 협약을 맺은 장관이 곧바로 홍 장군의 묘를 찾은 것이다.

키릭바예프 장관은 15일 청와대에서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과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관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서명식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함께 자리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날 정상회담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5년 전 카자흐스탄의 협력으로 홍 장군의 유해가 돌아오면서 양국의 신뢰가 깊어졌다고 말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국빈 방한에 동행한 키릭바예프 장관은 이날 현충원에 도착해 먼저 현충탑에 분향하고 묵념했다. 이어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있는 홍 장군 묘역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분향했다.

묘역에서 장관을 맞은 나치만 국가보훈부 보훈문화정책실장은 "21년도에 카자흐스탄 대통령께서 잘 해주셔가지고 이렇게 대전현충원에 장군님 잘 모셨다"며 감사를 전했다. 나 실장은 대전 묘역뿐 아니라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기념공원도 보훈부가 관심을 갖고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홍 장군을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의 우정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분향하기 위해 현충탑으로 걸어가고 있다 박세진 기자  swatchsjpajupresscom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분향하기 위해 현충탑으로 걸어가고 있다. 박세진 기자 = swatchsjp@ajupress.com

키릭바예프 장관은 "선조들의 영령이 흡족해하시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그는 홍 장군의 영웅적인 삶이 "한국 민족의 모든 청년들,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민족의 청년들에게도" 애국심과 조국을 사랑하고 지키는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관은 이번 참배가 토카예프 대통령의 공식 방문 일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틀 안에서 당연히 이러한 성스러운 인물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며 토카예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 국민을 대표해 "두 나라의 우정과 형제애가 언제나 더욱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 장군이 양국에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아주경제의 질문에 키릭바예프 장관은 카자흐어로 답했다. 그는 홍 장군이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훗날 많은 고려인과 함께 크즐오르다로 이주해 생의 마지막까지 그곳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유해 봉환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경의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인도 우리 카자흐인도 자신의 역사와 민족, 조국을 사랑한다는 표시"라고 말했다.

장관은 지나간 일에 경의를 표하라는 카자흐 속담을 언급한 뒤 "이러한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이 양국의 우정을 더욱 굳건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박세진 기자  swatchsjpajupresscom
아르만 키릭바예프 카자흐스탄 문화정보부 장관이 16일 국립대전현충원 현충탑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박세진 기자 = swatchsjp@ajupress.com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이다. 1868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었고, 평양에서 군 복무를 한 뒤 함경도 산악지대에서 포수로 살았다. 1907년 9월 일제가 총포 및 화약류 단속법을 공포해 사냥총까지 거둬들이자, 그해 11월 포수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항일 투쟁은 가족을 앗아갔다. 일제는 귀순을 압박하려고 부인을 붙잡았고, 부인은 모진 고문 끝에 옥중에서 숨졌다. 큰아들 양순도 전투에서 전사했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만주와 연해주로 근거지를 옮긴 홍 장군은 1920년 6월 대한독립군 사령관으로 봉오동에서 일본군 대대를 매복 공격해 독립군 최초의 대규모 승전을 거뒀다. 같은 해 10월에는 김좌진 장군 부대와 함께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다.

이후 연해주에서 고려인 집단농장을 이끌던 홍 장군은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 1937년 스탈린이 극동의 고려인 17만1781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69세의 홍 장군도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졌다.

크즐오르다에 정착한 홍 장군은 고려극장 수위로 일했고, 극장이 다른 도시로 옮겨간 뒤에는 정미소에서 일했다. 그는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10월 25일 75세로 그곳에서 눈을 감았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 박세진 기자  swatchsjpajupresscom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역. 박세진 기자 = swatchsjp@ajupress.com

크즐오르다의 고려인 사회는 이후 40년 넘게 홍 장군의 묘를 돌보며 추모의 공간으로 지켜왔다. 1991년 카자흐스탄이 독립하자 남북은 유해 봉환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북한은 출생지인 평양으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정부가 정상 차원에서 봉환을 추진했고 카자흐스탄이 이에 협조했다.

홍 장군의 유해는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에 전투기 6대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이틀 뒤 열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식에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참석해 홍 장군의 사망 진단서와 고려극장 사직서를 전달했다.

보훈부는 2023년 11월 크즐오르다의 옛 묘역을 기념공원으로 새로 단장했다.

홍 장군은 2021년 8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됐다. 세상을 떠난 지 78년 만이었다. 안장식 추모 화환은 카자흐스탄의 추모화인 카네이션과 한국의 국화로 꾸며졌다. 하관 뒤에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가져온 크즐오르다 묘역의 흙이 한국의 흙과 함께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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