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불편을 팔아라! 브라질 시장의 진짜 기회

  • 권준섭 상파울루무역관 관장

권준섭 상파울루무역관 관장 사진코트라
권준섭 상파울루무역관 관장 [사진=코트라]

“늘 내가 마지막이어야 했다.” 브라질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주인공 제제의 독백이다. 문맥은 다르지만 브라질에서도 나만 마지막이 되는 듯한 기다림은 낯설지 않다. 도로에 차는 막히고, 병원과 은행 창구 앞 줄은 길다. 그러나 기다림에 익숙하다고 기다림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대안이 생기는 순간, 소비자는 기다림 대신 비용을 선택했다.

그간 우리 기업이 브라질을 바라보는 전통 축은 분명했다. 산업재, 소비재, 공공 수요를 공략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2억 내수시장을 이 세 축으로만 보면 중요한 결을 놓칠 수 있다. 보편적 내수는 평범한 하루에서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사라질 때 움직이는지에서 드러난다.

바로 그 지점에서 혁신은 수요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은 단순한 빠름이 아니다. 대기와 지연을 줄이는 첫 접점 위에 비용·행정·결제 같은 주변 불편을 덜어내고, 이용 과정 자체를 재설계하는 힘이다. 빠름이 문을 열었다면 시장을 키운 것은 그 뒤의 과정 혁신이었다. 그 변화는 이미 브라질 일상 곳곳에서 확인된다.

교통은 접점 확장형 혁신이다. 셈파라(Sem Parar)는 톨게이트 자동결제로 출발했지만 소비자가 반응한 것은 단순한 자동결제가 아니었다. 매번 멈추고, 결제수단을 찾고, 영수증을 챙기는 시간을 월이용료를 내고서라도 덜어낸 것이다. 이 경험은 주차·주유, 세차와 드라이브스루 등 차량 생활의 결제 접점으로 넓어졌다. 공영 주차 결제 앱인 줄 플러스(Zul+)도 본연의 기능에 더해 관련 세금, 범칙금, 보험 등 운전자가 따로 확인해야 했던 절차를 하나의 화면에 묶었다. 결제 간소화를 넘어 차를 움직이고 세우고 관리하는 번거로움을 줄인 것이다.

의료는 운영 구조 혁신이다. 공유 진료 모델은 진료를 둘러싼 행정을 바꿨다. 예약은 모바일 플랫폼이 맡고, 현장 접수와 결제, 서류 발급은 키오스크가 처리한다. 시간이 되면 의사가 직접 환자를 맞이한다. 별도 행정 인력 없이도 진료가 돌아가는 구조다. 혼자 개원했다면 떠안아야 했던 공간·예약·접수·결제·서류 발급 부담이 플랫폼으로 옮겨 간 것이다. 그 결과 의사는 자기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히지 않고 여러 지역을 돌면서 진료할 수 있고, 환자는 더 가까운 곳에서 더 빠르게 의사를 만난다. 단순한 예약 간소화를 넘어 의료 인력과 공간의 활용 방식을 바꾼 것이다.

민간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픽스(Pix)는 정부가 결제의 거래비용을 낮춰 시장의 선택지를 넓힌 사례다. 브라질 중앙은행의 결제 시스템인 픽스는 송금과 결제 지연을 몇 초 단위로 줄였지만 성공의 본질은 속도에만 있지 않다. 계좌 개설이나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소비자, 단말기와 수수료가 부담이었던 소상공인, 영업시간과 송금 확인에 묶여 있던 거래가 휴대전화 안으로 들어왔다. 노점의 간식값, 가사 도우미 일당, 거래처 대금 정산까지 실시간 결제망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픽스는 이미 1억70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확보했고, 온라인 구매에서는 신용카드를 앞서는 결제 수단으로 부상했다. 정부가 구축한 결제 인프라가 소비와 판매 방식을 함께 바꾼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브라질 내수의 기회는 물건 자체에만 있지 않다. 이용 과정에서 줄어드는 시간·비용·절차의 부담, 그 위에 쌓이는 부가가치에도 있다. 브라질의 2억 내수는 기존 세 축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산업재, 소비재, 공공 수요라는 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길에서는 타깃을 좁혀야 시장이 보인다. 2억 내수의 가치를 온전히 활용하려면 그 경계 바깥의 공통 수요도 읽어야 한다. 그 수요는 특정 산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의 일상 속 다양한 접점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불편을 덜어내고 더 나은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네 번째 축, 곧 편익의 축이다. 산업과 품목은 시장을 쪼갠다. 그러나 불편을 덜어내는 경험은 흩어진 소비자를 하나로 묶는다. 그 지점에서 2억 내수는 비로소 하나의 시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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