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B스토리]개천에서 태어난 비운의 코뿔소…中 자본 얻고 'K-Jeep' 도약할까

  • '무쏘' 활동은 10년, 단종은 20년…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SUV 1위

오프로드 불모지인 한국에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시장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

챗 GPT가 기사를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챗 GPT가 기사를 바탕으로 생성한 이미지

1990년 프로젝트명 FJ(Future Jeep). 약 4년간 투입된 연구 개발비 3200억원. 테스트에 투입된 시험차 총 146대.

현 KGM(구 쌍용자동차)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차 '무쏘(Musso)' 얘기다. 무쏘는 1993년 출시된 후 단숨에 한국형 SUV로 등극했지만 자본이 미약했던 모기업의 숱한 부침의 역사로 단종된 비운의 브랜드다. 놀라운 점은 브랜드 존속기간(12년)보다 단절의 시간(22년)이 더 길었음에도 지난 1월 재론칭되자마자 단숨에 KGM 브랜드 역사의 핵심축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코뿔소를 뜻하는 순우리말 '무소'를 강하게 발음해 만든 브랜드명은 오프로드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태어나 글로벌 성공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약자의 성공기'로 평가받는다. 'K-SUV의 자존심' 무쏘의 히스토리를 정리했다.

◆가난한 집안 '영끌'로 태어난 무쏘···전 세계 오프로드 시장을 홀리다
무쏘는 1993년 8월 첫 출시됐다. 쌍용자동차가 무쏘 개발에 투입한 자금은 3200억원. 현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원에 달한다. 개발에 소요된 기간(4년)의 연간 소비자 물가, 당시 인건비 기준 구매력, 국내총생산(GDP), 경쟁사 신차 개발 프로젝트 비용 등과 비교해 산출한 결과다.

당시 연매출이 1조원이 안됐던 쌍용차가 매출을 뛰어 넘는 규모의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는 것은 FJ에 회사의 명운을 걸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쌍용차는 무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계식 프로토타입 10대, 프로토카 46대, 파일럿카 90대 등 총 146대에 달하는 시험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최형탁 전 쌍용차 사장은 시험차의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사비로 무쏘 시험차를 구매해 서울고속터미널 인근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를 모조리 분해해 구조를 분석했다고 한다. 그는 엔진은 물론 볼트와 너트 구조 하나까지 뜯어보며 개선점을 찾아 무쏘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쏘 개발 당시 국내에는 SUV용 디젤 엔진을 자체 개발할 능력이 없었다. 때문에 쌍용차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완성차 업체를 찾아다니며 디젤 엔진 기술 지원을 요청했고,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 제휴를 얻는 데 성공한다. 실제 쌍용차와 벤츠의 기술 제휴로 탄생한 무쏘는 1994년 초까지 엔진 헤드에 벤츠의 삼각별 로고가 그대로 각인돼 나오기도 했다.

디자인은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켄 그린리(Ken Greenley) 교수가 맡아 돌고래의 유선형을 모티브로 했다. 엔진의 구조적 완성도와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덕분에 무쏘는 당시 SUV로서는 이례적으로 승용차 수준인 공기저항계수 Cd 0.36을 달성, 1994·1996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버밍엄 모터쇼 4륜구동 부문 오토 디자인 최우수상을 수상한다. 이후 무쏘는 국산 4WD 차량 최초의 ABS 장착, 국내 최초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 채용 등 독자적인 성공 스토리를 써냈다.

브랜드명은 코뿔소의 순 우리말인 '무소'로, 웬만한 충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험지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더 강력한 이미지를 원했던 개발자의 의도에 따라 경음화한 '무쏘'로 변경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차'를 각인시키기 위해 순 우리말로 차명을 정했다고 한다. 무쏘는 상품성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려 1995년 독일·일본 수출을 시작으로 태국, 시리아, 이탈리아 등 활로를 넓히는데 성공한다. 

무쏘는 첫 탄생한 1993년부터 단종된 2005년까지 파생 모델을 포함해 국내에서만 약 25만대가 팔렸다. 브랜드 존속기간은 13년에 불과했지만 엔카닷컴이 실시한 '가장 기억에 남는 1990~2000년대 SUV'조사에서 1위에 오를 만큼 존재감이 강하다. 유럽에서도 무쏘는 아직 높은 인지도를 보유하고 있다. KGM은 1993년 SUV 무쏘와 국내 최초 SUT(Sports Utility Truck)였던 무쏘 스포츠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신규 픽업 전용 브랜드로 '무쏘'를 올 1월 재런칭해 수출 활로를 넓히고 있다.

◆中·印 거쳐 다시 中···흑역사 딛고 새 성공 방정식 쓸까

무쏘를 개발한 쌍용차의 서사는 기술은 있지만 자본이 부족했던 '결핍의 역사'다. 1954년 하동환자동차제작소로 출발해 동아자동차를 거쳐 1986년 쌍용그룹에 매각되며 쌍용자동차가 됐지만 재벌 계열사에 밀려 자체 자본을 확보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대여섯 차례 주인이 바뀌는 굴곡을 겪었다.

쌍용차는 1990년대 중반 무쏘 성공에 힘입어 렉스턴, 체어맨 등을 연달아 흥행 시켰음에도 늘 규모의 한계에 부딪혔다. 1998년 쌍용그룹이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대우자동차에 인수됐지만 대우의 해체로 재분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4년에는 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상하이자동차와 손을 잡았지만 상하이차가 고용·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SUV 생산기술만 중국으로 이전해가는 최악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후 법정관리 절차를 밟은 쌍용차는 인도 마힌드라그룹의 지원으로 티볼리를 개발하며 부활의 날개를 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2020년 마힌드라그룹이 추가 투자를 철회하면서 2022년 지금의 주인인 KG그룹을 주인으로 맞았다. KG그룹은 쌍용차 인수 후 '쌍용'을 지우고 사명을 KGM으로 변경했다.

최근 KGM은 중국 체리자동차와 손잡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체리차가 KGM의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1000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KGM은 상하이자동차, 마힌드라그룹의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경영권을 통째로 넘기는 인수가 아닌 플랫폼 기술 라이선스와 공동개발 방식을 택했다. KGM은 신차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체리차는 중국 외 생산기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KGM은 체리차의 T2X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SUV 'SE-10'를 통해 무쏘의 성공 신화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첫 출시 예정은 2027년이다. SE-10을 시작으로 공동 개발 차종을 늘리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 신차를 선보일 예정이다.

상하이차의 '먹튀', 마힌드라의 '지원 철회' 등 고난의 역사를 겪은 KGM에게 이번 동맹이 세 번째 학습효과를 증명하는 계기가 될지는 SE-10의 흥행 여부에 달렸다. 곽재선 KGM 회장은 이번 투자 의미에 대해 "전동화와 소프트웨어중심차(SDV)로 대표되는 미래차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글로벌 기업 간 전략적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단순한 재무 투자를 넘어선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의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자율주행과 첨단 전기·전자 플랫폼, 소프트웨어, 친환경 파워트레인 등으로 협력 범위를 점차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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