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선>은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현장, 학령인구 감소, 요동치는 대입 제도 속에 초중등·고등교육의 이슈를 진단하고, 당면한 교육 현안·과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또 한편으론 지속 가능한 대안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도 담겠습니다.
지난 30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86년 역사의 무학여고와 성심여고의 남녀공학 전환 방침, 동덕여대를 비롯해 다른 여대에서도 공학 전환과 관련한 진통은 이러한 변화가 얼마나 깊은 통증을 수반하는지 보여준다. 교육 행정의 눈으로 보면 단성(單性) 학교의 공학 전환은 지극히 당연한 ‘학생 수급 조절’이자 ‘학교 살리기’ 수단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성장해 온 구성원들에게는 단지 숫자를 채우는 문제로 읽히지 않는다.
숫자를 셈하는 ‘행정’과 마음을 품은 ‘공동체’
중·고교와 대학이 맞닥뜨린 수치는 시리다. 신입생 자원이 해마다 줄어드는 상황에서 특정 성별만으로 정원을 채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학교는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다채로운 과목 개설과 통학 불균형 해소라는 과제도 안고 있다. 공학 전환이 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해지는 우려의 목소리는 단순한 반발 이상이다. 동문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나 학생들이 쏟아낸 목소리의 바탕에는 ‘우리가 쌓아온 정체성이 단숨에 사라질지 모른다’라는 불안감과 소외감이 엉켜 있다. 여고와 여대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율적 리더십을 키워온 정서적·역사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속을 더 들여다보면 갈등이 커지는 진짜 이유는 공학 전환 자체보다 과정의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학령인구의 급감에 따른 폐교 위기를 이유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탓이다.
남녀공학 전환 정책이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시설 지원 같은 물리적 개보수를 넘어, 구성원의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한다. 공간을 바꾸는 행정만으로는 사람의 마음까지 전환할 수 없다. 공학 전환 정책이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듣는 행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숫자를 제시하며 이해를 요구하기 전에 재학생, 학부모, 동문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고민하는 숙의의 과정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정서적 안착’이다. 기존 여학교가 지녀온 포용의 가치가 공학화 이후에도 유연하게 이어지도록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학교의 역사를 기록해 정체성의 단절감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명한 미래 교육 비전’ 제시다. 단순히 “남학생을 받아 인원을 채우겠다”라는 수동적 목표 대신, 공학 전환을 통해 교육과정이 어떻게 풍성해지는지 희망적인 이행표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전해지는 우려의 목소리는 단순한 반발 이상이다. 동문들이 느끼는 안타까움이나 학생들이 쏟아낸 목소리의 바탕에는 ‘우리가 쌓아온 정체성이 단숨에 사라질지 모른다’라는 불안감과 소외감이 엉켜 있다. 여고와 여대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율적 리더십을 키워온 정서적·역사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속을 더 들여다보면 갈등이 커지는 진짜 이유는 공학 전환 자체보다 과정의 부재에 있다고 봐야 한다. 학령인구의 급감에 따른 폐교 위기를 이유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탓이다.
우선 ‘듣는 행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숫자를 제시하며 이해를 요구하기 전에 재학생, 학부모, 동문이 한자리에 모여 미래를 고민하는 숙의의 과정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정서적 안착’이다. 기존 여학교가 지녀온 포용의 가치가 공학화 이후에도 유연하게 이어지도록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을 보강해야 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학교의 역사를 기록해 정체성의 단절감을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명한 미래 교육 비전’ 제시다. 단순히 “남학생을 받아 인원을 채우겠다”라는 수동적 목표 대신, 공학 전환을 통해 교육과정이 어떻게 풍성해지는지 희망적인 이행표를 제시해야 한다.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는 교실을 향해
미래교육의 소중한 가치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다. 단성 학교의 공학 전환은 어쩔 수 없는 퇴로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새로운 교실의 열림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갈 내일의 사회는 배경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유연함을 요구한다. 같은 공간에서 차이를 경험하고 갈등을 다스려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진실한 시민교육이다. 물론 여고와 여대가 일궈온 ‘주체적 성장의 공간’이라는 가치는 공학으로 바뀐 뒤에도 세심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입는 옷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옷을 새로 지어 입히는 주체는 행정관청만의 몫이 아니다. 당사자인 아이들과 동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그 옷은 몸에 꼭 맞아든다.
우리가 살아갈 내일의 사회는 배경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유연함을 요구한다. 같은 공간에서 차이를 경험하고 갈등을 다스려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진실한 시민교육이다. 물론 여고와 여대가 일궈온 ‘주체적 성장의 공간’이라는 가치는 공학으로 바뀐 뒤에도 세심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학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입는 옷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그 옷을 새로 지어 입히는 주체는 행정관청만의 몫이 아니다. 당사자인 아이들과 동문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을 때 비로소 그 옷은 몸에 꼭 맞아든다.
효율 너머, ‘아이들의 미래’를 바라볼 때
학령인구 절벽은 앞으로도 더 많은 학교를 변화의 갈림길로 안내할 것이다. 이 변화를 단지 ‘인원을 줄이는 수술’로 처리할 것인가, ‘더 넓은 공동체를 새로 일구는 계기’로 만들 것인가는 정책의 깊이에 달려 있다. 무학여고와 성심여고의 새로운 출발, 공학 전환 진통을 겪는 동덕여대의 사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변화의 길목에서 생존이라는 숫자만을 셈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눈동자와 학교가 품어온 역사까지 보듬어 안을 것인가. 교육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정책의 배가 풍랑을 넘어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가운 ‘행정적 셈법’이 아닌,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공동체적 시선’이다.
우리는 변화의 길목에서 생존이라는 숫자만을 셈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눈동자와 학교가 품어온 역사까지 보듬어 안을 것인가. 교육의 출발점과 도착점은 언제나 ‘사람’이어야 한다. 남녀공학 전환이라는 정책의 배가 풍랑을 넘어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가운 ‘행정적 셈법’이 아닌,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공동체적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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