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기술력에서는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산업 기반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중국이 자본과 임상, 사업화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가운데 한국도 생태계 전반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5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국내 신약 파이프라인은 3259개로 미국(11662개), 중국(7141개)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며, R&D 중심 바이오벤처 수도 OECD 상위권에 속한다.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은 별개의 문제라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 전주기 플랫폼, 대규모 자본이 맞물리며 임상·생산·사업화까지 연결되는 생태계를 구축한 반면, 한국은 개별 기술력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를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키워낼 산업 생태계의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평가다.
특히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VC), 위탁연구개발생산(CRDMO), 인수·합병(M&A)을 통한 연계 플랫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글로벌 임상과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생태계 전체의 체급을 키우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분석했다.
중국 역시 처음부터 혁신 신약 강국은 아니었다. 2015년만 해도 승인 의약품의 95% 이상이 제네릭이었지만 지속적 투자와 산업 기반 확충으로 체질을 바꿨다. 대표 사례인 항서제약은 2000년 상장 이후 14년간 연구개발 투자를 이어간 끝에 자체 개발 신약 허가를 획득했고, R&D 투자 비중도 매출의 5% 수준에서 최대 30%까지 확대했다. 이후 말기 위암 치료제 '아파티닙'과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상업화에도 성공했다.
이 같은 변화는 개별 기업의 투자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중국 정부가 과학 분야 전문가 지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에서 근무하던 중국계 과학자들이 귀국해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시장이 성장했다. 글로벌 임상 경험을 갖춘 CRO와 VC, 정부 지원이 맞물리며 기술 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이어지는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미국제약협회가 인용한 글로벌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 진행한 임상 1상은 미국보다 평균 7개월 빠르고 비용도 30~50% 낮았다. 올해 1월 글로벌 의약품 승인 건수에서 중국은 미국과 유럽을 제쳤고, 2024년 임상에 진입한 신약 개발 건수도 미국을 넘어섰다.
정부는 '원천기술-기술창업-투자-기술수출-신약개발'로 이어지는 혁신 생태계 구축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업계도 이제는 기술 확보보다 이를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주리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한국 바이오는 기술력을 의심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글로벌 시장 경험을 갖춘 인재와 자본, 사업화 노하우가 국내 생태계로 유입되고 축적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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