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6월 중순 자카르타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거리 시위가 벌어졌다. 대학생들이 주도한 이번 시위는 정부가 석유 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이틀 후에 시작됐다. 시위 자체는 가격 인상 이전에 계획된 것이어서 두 사건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유가 인상은 시민의 불만을 자극하며 시위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석유 가격 인상은 매우 민감한 정치적 사안이다. 1998년 유가 인상은 반정부 시위에 불을 지피며 발표 일주일 만에 수하르토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켰다. 다른 정권에서도 석유 가격 인상은 잠재된 불만을 결집하여 대규모 항의 시위를 촉발했다. 민심 이반에 놀란 정부는 복지 정책 확대나 보조금 지급을 약속하며 악화한 여론을 수습하려 했다.
유류비 인상의 정치적 민감성은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상황과 연결된다. 한때 석유 수출국이었다는 이유로 인해 정부는 유가 보조금을 통해 국내 가격을 국제 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왔다. 따라서 국제 유가 상승 국면에서 석유 가격은 정부와 시민 가운데 어느 쪽이 경제적 고통을 부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결되었다. 가격 인상은 이를 일반 시민에게 전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2월 이란 전쟁 발발 후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가 동결 기조를 유지해 왔다. 유가 인상의 정치적 파장을 익히 알고 있는 정부가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이유는 단기적으로 재정 부담의 확대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최근의 경제 상황 일반과 연결되었다.
5월 초만 하더라도 인도네시아 경제는 이란 전쟁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으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6년 1분기 경제 성장률이 5.61%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이는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했다. 재무부 장관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이 성장률이 인도네시아 경제의 높은 회복력을 보여주는 성과라고 평가하며, 대외 충격에 대한 정부의 충분한 대응 능력을 부각했다.
높은 성장률 수치는 프라보워 대통령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공약한 연 8% 경제 성장 목표가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한편 무상급식, 협동조합, 국부펀드와 같은 핵심 성장 전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를 이용했다. 이러한 정책은 비생산적 부문에 대한 과도한 재정 지출, 행정적 비효율성, 정책 결정의 불확실성 등 때문에 그동안 비판받아 왔다. 프라보워는 예상치를 뛰어넘는 성장률을 앞세워 이를 잠재우려 했다.
높은 성장률은 프라보워의 경제 정책 추진을 뒷받침하는 데 기여했지만 해외 투자자와 국제 금융기관의 시각을 전환하지는 못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대한 우려를 거두지 않았고 이전부터 제기해 온 구조적 문제와 정책 리스크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유지했다.
MSCI는 1월에 예고한 방침에 따라 5월 중순 18개 인도네시아 종목을 지수에서 편출했다. 이 조치는 외국계 자금의 이탈을 촉발하며 자카르타 종합지수(Jakarta Composite Index)를 끌어내렸다. 연초 9000선을 돌파했던 주가지수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6월 초 500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6월 초까지 올해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에서 유출된 해외 자금 규모는 약 61조 루피아(약 5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컸다.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6월 들어서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sell Indonesia’라는 표현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환율 역시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였다. 1월 초 달러당 1만6700루피아 수준에서 거래되던 환율은 4월 들어 1만7000루피아 안팎으로 상승했으며 높은 경제 성장률 발표 이후에도 약세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인 1998년에 기록한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며 루피아화는 역사상 가장 낮은 가치로 거래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처럼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에서 경고 신호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프라보워 정부와 경제 관료는 5.6% 성장률을 앞세우며 인도네시아 경제의 견고한 기초체력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낙관적 시각에 기반하여 두 가지 파격적인 정책이 시행되었다.
첫 번째는 석탄, 팜유, 니켈 등 전략 자원의 수출을 전담할 기관을 국부펀드 산하에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기관은 국내 생산자에게서 자원을 구매한 뒤 해외 수입업체에 판매하는 독점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다시 말해 기업 간 자율 거래를 기반으로 진행되던 수출 방식을 정부가 지정한 기관을 통해서만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수출 기업의 저가 신고 관행을 방지함으로써 재정수입과 외환보유액을 확대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정책의 핵심은 전략 자원 수출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두 번째는 법률 개정을 통해 중앙은행의 역할을 확대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기존 책무에 더해 경제 성장 및 일자리 창출에 우호적인 경제 환경 조성 지원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또한 중앙은행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국회에 부여되었다. 정부는 이를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이 법안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약화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개입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높은 경제 성장률이라는 지표를 근거로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오히려 외국 투자자와 국제 평가기관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자본 시장에서 외국계 자금 이탈과 루피아화 약세가 지속되자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언론 보도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이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관련 보도가 자연스럽게 부정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환율이 달러당 1만8000루피아를 넘어서자 1998년 금융위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사회 전반에 불안 심리를 확산시켰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달러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하자 정부 역시 일정한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기관은 중앙은행이었으며 기준금리를 기존 4.75%에서 5.25%로 전격 인상했다. 그러나 인상 후에도 루피아화 약세가 계속되자 6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각각 0.25% 높였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기준금리가 4.75%에서 5.75%로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환율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함과 동시에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시장에 확인시키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었다.
정부의 핵심 정책과 관련하여 일정한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움직임 역시 포착되었다. 무상급식 정책을 총괄하던 기관의 수장이 부패 혐의로 구속되고, 새로운 인사가 임명된 것이다. 이는 정책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정책 집행 방식이나 운영 구조에 대해 정부가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었다.
또 다른 조치는 석유 가격 인상이었다. 이는 정부가 재정 적자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타협할 의지가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기준금리 인상, 무상급식 기관의 인적 쇄신, 그리고 유가 인상은 프라보워 정부의 경제 정책에 비판적이던 해외 투자자와 국제 금융시장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라보워가 정책 방향을 수정할 의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화 조치가 발표되는 와중에도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공언하면서 자신의 정책이 사적 이해관계가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신뢰해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바로 이런 태도를 대학생 시위대는 정조준했다. 석유 가격 인상과 무상급식 철회에 추가하여 이들은 프라보워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 확산하는 분위기 속에서 올해 2분기 경제 성장률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1분기에 이어 다시 한번 기대 이상의 성장을 기록한다면 이는 시장과 여론의 압박 속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정부가 다시 적극적인 정책 추진으로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성장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정부로 하여금 더욱 신중한 정책 운영과 거시경제적 안정에 무게를 두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2분기 성장률은 단순한 경제지표를 넘어 프라보워 정부의 향후 정책 방향과 국가 운영 방식의 변화를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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