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美 스테이블코인 2027년 1조 달러 전망… 속도전 밀리는 韓

국내 원화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
국내 원화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
미국이 디지털 화폐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한 '스테이블코인 속도전'에 나섰다. 달러에 연동된 디지털 화폐를 민간이 발행하되, 현금과 단기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1대1 담보를 쌓도록 하는 법적 틀을 마련했다. 미 하원 금융위원회를 통과한 ‘지급용 스테이블코인 명확성 법안(Clarity for Payment Stablecoins Act)’은 발행·준비자산·감독 체계를 연방 차원에서 정리한 첫 법적 이정표다. 시장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2027년 전후 1조 달러 규모로 커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단순한 가상자산 규제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달러 패권을 제도화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처럼 가격 급등락을 노리는 투기자산이 아니다.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돼 결제와 송금, 정산에 쓰이는 디지털 지급수단에 가깝다. 해외 송금은 더 빨라지고, 기업 간 결제 비용은 획기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이 은행 창구를 대체했듯, 블록체인 기반 지급망이 기존 금융 인프라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이 시장을 서두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준비자산으로 미국 국채 수요가 늘고, 디지털 공간에서도 달러 사용권이 확대된다. 실제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신흥국의 금융 시스템과 자금 흐름을 흔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한국의 대응은 여전히 신중론과 부처 간 이견에 묶여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은행 중심으로만 허용할지, 핀테크와 빅테크에도 문을 열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과 금융안정 우려를 어떻게 반영할지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더라도 은행 등 엄격히 규제되는 기관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당국도 은행 컨소시엄 중심 방안을 검토해 왔지만, 국회와 업계의 시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물론 신중론이 틀린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름과 달리 언제나 안정적인 자산이 아니다. 준비자산 부실, 대량 환매(뱅크런), 발행사 파산, 자금세탁, 사이버 사고가 겹치면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한국에서 무턱대고 규제를 풀자는 주장은 위험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발행되면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고, 통화정책 전달 경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문제는 신중함이 곧 지연의 명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위험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길을 택했다. 발행 주체, 준비자산, 상환 의무, 감독 체계를 먼저 정하고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한국이 위험을 이유로 논의를 미루는 사이, 국내 이용자는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제도권 원화 대안이 없으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달러 기반 서비스로 빨려 들어간다. 이는 단순히 가상자산 산업의 주도권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결제망에서 원화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국가적 리스크다.

한국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 하나는 철저한 안전장치다. 준비자산 100% 보유, 고객자산 분리, 상시 공시, 외부 감사, 즉시 상환 의무, 자금세탁 방지 기준은 기본이다. 발행사가 파산하더라도 이용자 자산이 완벽히 보호되는 장치를 법에 명확히 넣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통제된 실험의 허용이다.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활용성 테스트와 연계해 은행권부터 실험을 시작하되, 일정 요건을 갖춘 핀테크와 지급결제 사업자에도 단계적으로 길을 열어야 한다. 은행만 허용하면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혁신 속도는 떨어진다. 반대로 아무에게나 허용하면 신뢰가 무너진다. 해법은 금지가 아니라 엄격한 인가와 차등 규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금융의 미래 인프라가 될 수도 있고, 방치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하청 시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과도한 공포도 아니다. 미국이 법과 시장을 동시에 움직이는 동안 한국이 회의만 반복한다면 승부는 이미 끝난다. 디지털 금융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다. 디지털 결제망에서 원화의 영토를 지키려면 정부의 규제 시계도, 산업의 혁신 속도도 지금보다 훨씬 빨라져야만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2
0 / 300
  • 반대ㅋㅋ.
  • ㄴㄴㅋ나쁜 cbdc반대ㅋㅋ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