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부 2> 코를레오네 가문의 수장 마이클은 형인 프레도가 적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말한다. “형이 그랬다는 걸 알아. 내 가슴을 찢어 놓았어.” 마이클은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형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만 어머니의 장례식 직후 결국 냉혹하게 형을 처단하며 가문의 비극을 완성한다. 이란의 입장에서 UAE는 가문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미국·이스라엘)과 내통한 프레도와 같다. 이란이 ‘가문의 장자’로서 서방 세력에 대항하는 ‘저항의 축’을 이끌고 있다면 UAE는 가문의 이익보다 자신의 안위와 부를 위해 형제를 팔아넘긴 동생이다.
단테의 <신곡>에 코키토스(Cocytus)가 나온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인 제9지옥이다. 상식과는 달리 이곳은 뜨거운 불길이 아니라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호수다. 코키토스는 조국이나 혈연을 배신한 자들이 갇히는 곳이다. 이란은 UAE가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통해 이스라엘을 끌어들인 것을 이슬람 형제들에 대한 영원한 배신으로 규정한다. 이란의 눈에 비친 UAE는 뜨거운 중동의 태양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배반한 대가로 영원히 얼어붙은 호수 속에 갇힌 배신자의 형상이다.
이란의 민족 서사시인 <샤나메(Shahnameh·왕서)>에 전설적인 폭군 자하크(Zahhak)가 나온다. 악신 아흐리만의 유혹에 빠져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자다. 아흐리만이 그의 양 어깨에 입을 맞추자 그 자리에 두 마리의 검은 뱀이 돋아난다. 뱀들에게 머리를 갉아 먹히지 않으려면 매일 두 명의 젊은이를 학살해 그들의 뇌를 뱀에게 먹이로 주어야 한다. 이란의 관점에서 UAE는 마치 자신의 어깨 위에 자라난 두 마리 뱀(미국·이스라엘)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동족의 뇌를 제물로 바치는 폭군 자하크다.
UAE가 오랜 금기(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전 이스라엘과 미수교)를 깨고 협정에 나선 데는 명확한 실리가 있었다. UAE와 이스라엘 모두 이란의 팽창과 핵 위협을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 UAE는 이 협정의 대가로 미국의 F-35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 체계를 도입할 명분을 얻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이테크 기술(물 부족 해결, 사이버 보안, 의료 등)을 받아들여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란은 격분했고 UAE의 결단은 페르시아 문명권의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악의 세력’에 영혼을 판 행위였다.
이미 서로 대사를 소환한 양국의 관계는 당연히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다가 2022년이 되어서야 다시 대사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다. 미묘한 화해였다. 경제적 실리와 지역 안보 관리를 위해 양국은 다시 대사를 보내기로 합의한다. 2022년 8월 UAE는 6년 만에 대사를 다시 테헤란으로 보냈고, 이란은 2023년 4월 8년 만에 주UAE 대사를 임명해 아부다비로 보냈다. 윤석열이 UAE를 국빈 방문해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이 2023년 1월이다. 이란과 UAE가 화해국면을 맞고 있을 때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다.” 문제는 그 말이 중동의 적대 구도를 빌려 한국의 동맹 의존 본능까지 함께 드러냈다는 점이다.
윤석열의 발언은 국내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 외무부는 “이란과의 관계와는 무관한 발언”이라며 해명했지만 이란 외교부는 “무책임하고 외교적 타당성이 결여된 발언”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제3국의 국외자가 양국을 적대관계로 규정하는 것도 무례한 일이지만, 더군다나 두 나라가 모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형국에 초를 뿌린 셈이니 보통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렵게 복원된 양국의 대사급 관계는 이란 전쟁이 터지면서 다시 파탄을 맞았다. 윤석열이 ‘천재적인 감각으로 간파’한 양국의 뿌리 깊은 적의가 다시 표면화한 것이다.
UAE는 아브라함 협정 체결 이후 이스라엘과 ‘안보 및 기술 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이란 전쟁이 발발하자 UAE는 이스라엘의 방공 기술과 미국의 군사 자산을 적극 도입하며 실질적인 공동 방어 전선을 형성해 왔다. UAE는 부정하지만 지난 3월 네타냐후가 몰래 방문했다는 정보도 있다. 아울러 미국의 대이란 압박 정책에 적극 호응하면서 지역 내 핵심 파트너로서 입지를 굳혔다. UAE에는 알 다프라 공군기지, 제벨 알리 항구, 알 민하드 공군기지에 약 5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란으로서는 이들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갈이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개구리가 쏠까 봐 걱정하자 전갈은 “너를 쏘면 나도 익사하는데 왜 그러겠느냐”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강 한복판에서 전갈은 개구리를 쏜다. 함께 죽어가며 개구리가 이유를 묻자 전갈이 답한다. “어쩔 수 없어. 이게 내 본성이야.” 1971년 12월 6개 토후국이 연합해 결성한 UAE는 석유 자본이라는 엔진으로 구르는 세속적인 국가다. 중동이라는 ‘가문’을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이란의 입장에서 UAE의 행보는 실수가 아니라 지역적 연대(Pan-Islamism)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다.
UAE 입장에서 명분(Brotherhood)은 실리(Interest)의 껍데기일 뿐이다. UAE가 오랜 ‘형제적 결속’을 버리고 이스라엘과 손을 잡은 것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 앞에서는 천년의 유대감도 하루아침에 폐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UAE의 ‘배신’을 칭송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처절한 ‘생존 투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살펴야 하는 ‘본성’의 국제정치학이다. 하지만 지금 이란이 전쟁의 승자로 우뚝 서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UAE는 배신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UAE가 특별히 더 배신적인 것도 아니다. 또 본성은 약소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패권국에도 있다. 미국의 본성 역시 극도로 이기적인 것이다. 미국은 지금 동맹을 보호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의 전략 비용을 외주화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장치로 다루고 있지 않은가. 필요할 때는 자유와 민주와 규범을 말하지만 실제 속셈에 넣고 있는 것은 미군의 안전, 달러의 질서, 에너지 통로, 무기 판매, 그리고 중국 견제다. 동맹의 언어가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각자의 충돌하는 국익을 가리는 껍질일 뿐이다.
국제 관계는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와 상호 필요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한·미 동맹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먼저 깨고 있는 동맹의 ‘가치’에 왜 우리만 집착하고 있는가. 사이먼과 가펑클이 히트시킨 <엘 콘도르 파사>의 노래 가사같이 우리는 달팽이처럼 과거의 관습에 묶여 기어갈 것인가, 아니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는 콘도르가 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힘이 있는 나라만을 존중하는 법이다.
필자 소개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지금은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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