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여름과 함께 빨리 찾아온 호러 시즌, 진화하는 K-좀비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SEOUL, May 28 (AJP) - 올해는 호러 시즌이 때이른 여름과 함께 일찍 찾아왔다.

K-호러 하면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좀비가 떠오른다. 강시에서 출발한 아시아적 좀비를 재해석해온 한국형 좀비가 올해 또 한 번 진화했다. 이번에는 AI 시대에 걸맞게, '생각'이라는 능력을 장착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좀비 스릴러 〈군체〉가 개봉 6일 만에 관객 210만 명을 돌파하며 여름 극장가의 초반 흥행작으로 떠올랐다. 2025년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좀비딸〉이 세운 200만 돌파 기록보다 하루 더 빠른 속도다.

〈군체〉는 전국 1,858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며 예매율 39.9%를 기록했다. 2016년 1,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좀비 영화를 세계 시장에 각인시킨 〈부산행〉과의 비교도 자연스레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연 감독은 〈군체〉를 〈부산행〉의 연장선이 아니라, 좀비 장르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 작품으로 설명한다.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군체 VIP시사회에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연상호 감독 전지현 구교환 신현빈 지창욱 김신록 고수 20260520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 열린 영화 '군체 VIP시사회'에 감독과 출연 배우들이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연상호 감독, 전지현, 구교환, 신현빈, 지창욱, 김신록, 고수. 2026.05.20[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연 감독은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역〉, 〈부산행〉, 〈반도〉는 고전적인 좀비를 새로운 공간에 배치하는 방식에서 출발한 이야기였다"며 "〈군체〉는 좀비 자체에 관한 영화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만든 첫 번째 좀비 주인공 영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점의 변화는 설정의 변화로 이어진다. 〈군체〉 속 감염자들은 빠른 속도로 변이하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대신 서로 소통하며 하나의 집단처럼 행동한다.
연 감독은 "집단지성을 가진 좀비와 인간의 대결"이라며 "좀비는 원시적인 상태에서 출발해 빠르게 진화하고, 인간은 문명에서 야만으로 퇴행한다. 그 퇴행의 끝에 무엇이 남는가, 그것이 인간성의 핵심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부산행〉이 한국 좀비의 '속도'를 각인시켰다면, 〈군체〉는 그 공포를 '연결'과 '집단지성'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 좀비는 더 이상 단순한 감염자의 육체가 아니다. 하나의 네트워크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스틸컷 [사진=쇼박스]

원혼에서 시스템 붕괴로

한국 공포영화는 오랫동안 원혼과 한(恨)의 정서 위에 서 있었다. 풀리지 않은 원망, 억울한 죽음, 하얀 소복의 여귀, 폐쇄적인 학교와 붕괴된 가족의 공간이 한국적 공포의 주요 무대였다.

1980년대 초반 강범구 감독의 〈괴시〉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거론되지만, 좀비 장르는 오랫동안 주변부에 머물렀다. 이후 한국 사회가 겪은 위기와 불안은 좀비 서사의 토양이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량 실업과 제도 불신이 커지면서, 대중문화 속 공포 역시 개인의 원한보다 집단적 붕괴와 시스템의 실패를 상상하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최근 한국 공포는 초자연적 복수보다 감염, 격리, 사회적 패닉, 공동체의 해체를 더 자주 다룬다. 〈군체〉 역시 이 흐름 위에 서 있다.

영화는 의문의 감염 사태가 벌어진 밀폐된 건물 안을 배경으로 한다. 생존자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맞닥뜨린다. 제목 '군체'는 생물학적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개별 생명체들이 모여 하나의 단위처럼 기능하는 집단. 영화의 도발적인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감염자들은 '생각 없는 괴물'이 아니다.
 
영화 군체 포스터 사진쇼박스
영화 '군체' 포스터 [사진=쇼박스]

"AI를 닮은 좀비" — 관객들의 시선

서울을 방문 중인 영국 에든버러 출신 대학생 애런 김(20)씨는 본래 한국 좀비 영화를 볼 계획이 없었지만, 한국인 친구의 권유로 극장을 찾았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봐온 대부분의 좀비 영화에서 좀비는 생각이 없고,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존재였다"며 "〈군체〉에서는 좀비에게 지능이 있다. 그게 얼마나 불쾌하고 무서울 수 있는지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이 해외 좀비 영화와 비교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김씨는 "해외 좀비 영화는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따른다"며 "한국 좀비는 새롭다. 빠르게 달리고, 단순하지 않다"고 평했다. 그는 영화에 10점 만점에 8점을 줬다.

특히 김씨는 영화의 핵심 설정을 인공지능과 연결해 해석했다.

그는 "사람들이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들어가고, 그 시스템은 점점 더 강력해진다"며 "〈군체〉의 좀비도 그렇게 느껴졌다. 각각의 좀비가 계속 학습하는 더 큰 회로의 일부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대학생 이지윤(20)씨도 〈군체〉가 〈부산행〉이나 〈킹덤〉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기존 작품에서는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공격적으로 달려들지만, 사고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며 "〈군체〉의 좀비들은 바이러스를 퍼뜨리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만의 소통망을 통해 집단지성을 만들고 함께 움직이는 점이 섬뜩했다"고 말했다.
 
영화 군체 팀 사진AP 연합뉴스
영화 '군체' 팀 [사진=AP 연합뉴스]

한국 좀비, 무엇이 다른가

두 관객의 반응은 〈부산행〉 이후 한국 좀비 영화가 구축해온 이미지와도 맞닿아 있다. 빠르고, 격렬하며, 물리적으로 압도적인 좀비다.

하지만 속도만으로는 한국 좀비 영화의 흡인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 좀비 서사는 대체로 감염을 밀도 높은 사회적 공간에 심는다. 열차, 학교, 아파트 단지, 폐쇄된 건물처럼 한국 사회의 생활 밀도가 압축된 장소가 주 무대가 된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공포는 폐쇄된 공간 자체보다, 위기 속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관계와 제도에서 나온다.

이 지점에서 한국 좀비 영화는 조지 A. 로메로의 전통이 형성한 서구 좀비물과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서구 좀비물이 '문명이 무너진 뒤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면, 한국 좀비물은 '모두가 아직 시스템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영화평론가 이지혜씨는 한국 좀비 서사의 힘이 감염 자체보다 감염이 건드리는 '관계'에서 나온다고 봤다.

이 평론가는 "한국 좀비물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괴물이 됐다는 설정을 중심에 두는 경우가 많다"며 "기존의 관계성이 서사 안에 촘촘히 얽히기 때문에 관객의 몰입도가 훨씬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좀비물에서 슬픔과 죄책감이 감염의 서사와 결합한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누군가 좀비가 됐다는 사실에 집단적 죄책감이나 애도가 따라붙는 경향이 있다"며 "그 안에서 상실을 애도할 수 있는 공 두 작품은 한국 좀비물이 더 이상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같은 정서는 한국 좀비물의 주요 작품들 곳곳에서 확인된다. 〈부산행〉은 가족의 희생과 계급 갈등을 엮었고, 〈킹덤〉은 감염을 왕권 정치와 기근, 국가 시스템의 실패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교를 괴롭힘과 생존의 극장으로 만들었으며, 〈해피니스〉는 격리된 아파트 단지를 통해 공포와 위계, 이기심을 해부했다. 그리고 〈좀비딸〉은 좀비라는 소재를 가족 코미디로 끌어안으며 K-좀비의 새로운 스펙트럼을 열었다.

이 평론가는 제도의 붕괴 역시 한국 좀비 서사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그는 "한국 좀비물은 단순히 좀비가 사람을 쫓는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며 "위기 상황에서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정부와 관료제가 얼마나 무능하게 작동하는지, 인간의 이기심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함께 다룬다"고 말했다.

1980년대 홍콩 영화의 강시가 도교적 민속과 결합한 '뛰는 시체'였다면, 한국의 좀비는 감염과 제도, 도시의 과밀함 속에서 태어난 현대적 재난의 형상에 가깝다.

〈군체〉는 이 장르를 한 걸음 더 밀어붙인다. 이제 두려움은 죽은 자의 속도에만 있지 않다. 〈군체〉가 제시하는 공포는 학습하고 연결되며 집단으로 진화하는 존재가, 인간 사회의 취약성을 정조준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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