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시진핑 방북설, 안미경중(安美經中)에서 안미경세(安美經世)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지형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최근 중국 경호·의전팀의 평양 방문 정황과 북·중 고위급 교류 흐름 등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중 정상회담 직후 북핵 문제가 다시 주요 의제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의 방북설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한반도 이슈가 더 이상 안보와 외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중·러 밀착 가능성과 미·중 전략경쟁은 환율과 공급망, 투자와 산업 전략, 금융시장까지 동시에 흔드는 경제안보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한반도 지정학 자체가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이자 동시에 생존 전략의 일부가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과 만났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과 만났다. [사진=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국 경제는 구조적으로 복합 의존 체제 위에 서 있다. 안보는 미국 동맹 체제에 기대고 있고, 무역과 산업은 여전히 중국과 깊게 연결돼 있으며, 에너지와 원자재는 중동과 글로벌 해상 물류망에 의존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화 시대에는 이 구조가 큰 충돌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미·중 전략경쟁이 기술·금융·군사·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의 안보와 경제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미일 협력 강화는 중국 입장에서 미국 중심의 대중 견제 체제 확대와 다르지 않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겨냥한 공급망 재편과 기술 통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첨단기술 투자 제한 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건설적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는 접근은 구조적 긴장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는 이상보다 이해관계에 가깝다. 중국 역시 북핵 문제를 단순한 비핵화 차원이 아니라 미국 견제와 동북아 영향력 유지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단순한 친미 또는 친중의 양자택일인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한국 안보의 중심축은 한미동맹일 수밖에 없다. 군사·기술·금융 시스템 모두 미국 중심 글로벌 질서와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까지 완전한 탈중국 구조로 전환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이며, 반도체·배터리·전기차 산업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과 소재 공급망에서도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희토류와 흑연, 일부 배터리 소재 정련 분야는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조차 최근에는 ‘디커플링(decoupling·완전 분리)’보다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중국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 역시 ‘탈중국’이 아니라 ‘선택적 의존 축소’가 돼야 한다. 핵심 전략산업에서는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원자재·부품 조달선을 다변화하되, 중국 시장 자체를 포기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되,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는 중국과의 실용 협력 공간을 유지하는 복합 전략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지정학 리스크를 개별 기업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기업들에 공급망 다변화와 리스크 대응 체계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북·중·러 공조와 미·중 전략경쟁이 촉발하는 구조적 충돌은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는 시장 논리만으로 대응할 수 없는 대표적 사례다. 중동 위기로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릴 경우 개별 기업이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을 수도 없다. 핵심 광물 공급 통제 역시 기업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 체계다. 외교·산업·금융·안보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고, 핵심 광물 전략 비축과 공급망 동맹 확대, 첨단산업 보호 체계를 종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경제안보는 더 이상 특정 부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핵심 과제가 됐다.
 
 
기업도 발상을 바꿔야 한다. 이제 최고경영자는 지정학을 재무제표 밖의 변수가 아니라 핵심 경영 변수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별 리스크 분석 조직과 지정학 대응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생산기지와 투자 전략 역시 시장 규모만이 아니라 정치·외교 리스크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시진핑 방북설은 단순한 북·중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가 다시 블록화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냉전 이후 세계 경제를 움직였던 ‘효율 중심 글로벌화’ 시대는 약해지고 있고, 이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한 공급망과 신뢰 가능한 동맹, 전략산업 보호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한국은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전략적 균형’이라는 구호가 아니다. 안보는 미국 중심 질서에 두되, 경제는 중국과의 실용 협력을 유지하는 현실적 이중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다. 동시에 핵심 산업의 공급망 자립도를 높이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장기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국가도 기업도 더 이상 지정학을 외면할 수 없는 시대다. 한반도 문제는 이제 외교 뉴스가 아니라 산업과 금융, 기업 생존의 문제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우선순위 설정만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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