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삼성전자와 TSMC, 같은 반도체 다른 길

  • — '노조·보상·국가'가 갈라놓은 두 개의 경쟁력

반도체 산업은 기술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의 경쟁이다. 조직, 보상, 노동, 그리고 국가의 역할이 맞물리며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삼성전자와 TSMC는 이 구조 경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같은 글로벌 최상위 기업이지만, 운영 방식은 전혀 다르다.


최근 삼성전자의 노사 성과급 갈등은 단순한 임금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국형 대기업 모델이 글로벌 기술 경쟁 환경에서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묻는 사건이다. 반면 TSMC는 큰 노사 충돌 없이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차이는 ‘노조의 존재 여부’라는 단순한 변수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산업 설계와 국가 전략, 조직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만 신주에 있는 TSMC 사진EPA 연합뉴스
대만 신주에 있는 TSMC [사진=EPA 연합뉴스]



우선 노동 구조를 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과거 ‘무노조 경영’ 기조를 유지하다가 2019년 이후 노조가 공식화되며 교섭 구조가 자리 잡는 전환기에 있다. 반면 TSMC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노조  없이 운영돼 왔다. 이는 단순히 노조를 배제했다기보다, 애초에 개인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와 조직 설계를 기반으로 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은 반도체 산업을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 집약 산업’으로 규정했다. 그는 전통 제조업식 집단 교섭 구조가 혁신 속도를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반도체 공정은 24시간 멈추지 않는 연속 공정이며, 클린룸 환경에서 미세 공정이 이어지는 특성상 생산 중단 시 손실이 막대하다. 자동차나 철강처럼 공정을 끊었다가 재개하는 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은 삼성전자도 동일하다. 문제는 구조가 아니라 운영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한국의 노동·정치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성과급, 임금 체계, 복지 문제는 기업 내부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대된다. 노조 역시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영향을 확대한다.


반면 대만은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반도체를 육성하면서도 기업 운영에는 상당한 자율성을 부여해왔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유지에 정책 초점을 맞추고, 기업은 성과 중심 보상 구조를 강화했다. 그 결과 노조 중심 구조보다 개인 보상과 성과 중심 문화가 자리 잡았다.
 

보상 구조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기본급, 성과급, 복지 등 전통적 대기업 보상 체계를 유지해왔다. 반면 TSMC는 성과와 직접 연동된 보상이 핵심이다. 성과 보너스, 장기 인센티브, 주식 보상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집단 교섭보다 개인 성과를 중심으로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다.


이 차이는 조직 문화로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조직 중심, 집단 협상 중심의 특성이 남아 있다. 노조의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이 경향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TSMC는 철저히 개인 성과 중심이다. 조직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보상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집단 투쟁으로 확대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러한 흐름은 더욱 분명해진다. Intel과 Micron Technology는 제한적인 노조 활동만 존재하며, 엔지니어 중심 보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반도체 산업은 고급 인력 중심 구조로 인해 집단 교섭보다는 개별 계약과 성과 기반 보상이 일반적이다.


또한 NVIDIA, Google, Meta 등 글로벌 IT 기업 역시 노조 영향력이 제한적이며, 스톡옵션과 성과 보상이 핵심이다. 기술 산업일수록 개인 역량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 경쟁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도시바 등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기업별 노조가 존재하지만, 파업보다는 고용 안정과 내부 협의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TSMC 모델이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성과 중심 체계는 높은 업무 강도와 압박을 동반한다. 실제로 TSMC 엔지니어들은 장시간 근무와 높은 스트레스를 감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라는 한계도 분명하다.


반대로 삼성전자 모델은 안정성과 집단 보호라는 장점을 갖는다. 문제는 기술 경쟁 속도와 충돌할 때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 경쟁이다. 공정 지연, 의사결정 지체, 생산 중단은 곧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전통적 노사 갈등이 반복될 경우 경쟁력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 주주행동 실천본부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파업 철회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주주행동 실천본부 관계자들이 12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파업 철회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노조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산업 특성에 맞는 노동·보상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전통 제조업식 노사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면 기술 산업의 속도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해법은 극단이 아니다. 완전한 무노조 모델로 돌아가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고, 강성 노조 중심 구조를 확대하는 것도 위험하다. 필요한 것은 집단 보호와 개인 성과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성과 기반 보상을 강화하되, 고용 안정과 기본 권익을 함께 보장하는 구조가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단순한 임금 협상이 아니라 산업 구조에 맞는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노조 역시 단기적 이익을 넘어 기업 경쟁력과 장기 생존을 고려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TSMC의 차이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나온다. 같은 반도체를 만들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쟁력을 구축해왔다. 지금 삼성전자가 마주한 갈등은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어떤 구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향후 10년의 경쟁력이 결정될 수 있다.


반도체는 공장에서 만들어지지만, 경쟁력은 조직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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