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Indonesia Story] 메카행 번호표 50년을 기다려도 좋습니다

  • 인도네시아 무슬림의 성지 순례 '티켓 전쟁'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4월 초 인도네시아 언론 보도에서 ‘워 티켓(war ticket)'이라는 낯선 표현을 접했다. 쉬운 영어 단어의 조합으로 ‘전쟁 티켓’ 정도로 번역될 수 있었지만, 그 뜻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도 내용을 몇 차례 읽고 고민한 끝에 그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두 단어가 결합된 형태이기에 앞 단어를 형용사처럼 받아들인 것이 이해를 가로막은 원인이었다. 형용사를 명사 뒤에 쓰는 인도네시아식 어순에 따라 바꾸어 보면 ‘티켓 워’, 즉 ‘티켓 전쟁’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서도 ‘티켓 워’가 적절한 표현인지 의문이 남았다. 챗GPT에 질문해 보자 이 표현이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영어식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영어권 화자 역시 의미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정리하자면 한국식 영어 표현이 한류 확산과 함께 세계 곳곳으로 퍼져 인도네시아에까지 도달했고, 현지어에 맞게 ‘워 티켓’으로 변형되어 활용된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과 한류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사례였다.

인도네시아 언론에서 이 표현을 사용한 맥락은 낯설었다. 아이돌 공연 티켓을 예매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티켓 전쟁’이라 부르는 우리와 달리 언론 보도에서 이 말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로의 순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순례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티켓 전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해하기가 쉬운 비유는 아니었다.

성지 순례는 무슬림에게 부과된 다섯 가지 핵심 의무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신자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네 가지 의무와 달리 성지 순례에는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여유이며,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무슬림에게는 순례 의무가 면제된다. 메카까지 이동하는 데 필요한 적지 않은 비용을 고려하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성지 순례에는 과거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조건이 추가되었다. 순례지인 메카의 수용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많은 무슬림이 순례를 떠날 경제적 여건을 갖추게 되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순례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적용된 기준은 대체로 무슬림 인구 1000명당 연간 1명의 순례객이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별 순례 쿼터가 배정된다. 한 나라의 무슬림 인구가 100만명이라면 매년 1000명에게만 순례 비자가 발급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슬림 인구가 많지 않은 국가에서는 순례 쿼터가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처럼 수억 명의 인구 중 대다수가 무슬림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순례를 희망하는 인원이 배정된 쿼터를 훨씬 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이돌 공연 예매에 적용되는 ‘티켓 전쟁’이라는 표현이 순례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을 지칭하는 데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슬람으로 개종이 본격화된 13세기 이래 인도네시아 무슬림에게 있어 성지 순례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행위로 자리 잡았다. 순례를 마친 사람에게는 ‘하지(haji)'라는 존칭이 부여되는데, 이는 높은 종교적 성취와 신실함의 상징이었다. 성지 순례를 다녀온 사람이 극히 드물었던 만큼 이 호칭은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를 보장해 주었다.

이 같은 상황은 19세기 중반 증기선의 등장과 함께 변화를 맞았다. 메카로 이동하기가 이전보다 수월해지면서 순례자 수가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이전까지 매년 2000명 수준이던 순례자는 19세기 말 1만명 안팎으로 증가했고, 20세기 초에는 5만명에 이르렀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던 네덜란드 식민 정부는 이러한 증가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순례자를 통해 중동의 급진적 이슬람 사상이 유입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식민 정부는 순례 인원을 제한하고 이들의 활동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정책을 펼쳤다. 네덜란드 운송회사는 정부 정책에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았지만 이를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메카행 선박 운임을 높게 책정했을 뿐 아니라 순례객을 상품으로 취급하며 비용에 걸맞지 않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20세기 초 기준으로 순례 비용은 대략 금 300그램에 상응했는데,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6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도 인도네시아 순례자는 비좁고 열악한 선실에서 수개월간 항해를 견뎌야 했고, 메카에 도착한 뒤에는 현지 여행업자의 착취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는지 순례를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1912년 기록을 보면 전체 순례자 중 약 15%에 해당하는 2600여 명이 메카에서 생을 마감했다. 물론 여기에는 성지에 묻히기를 소망하는 고령의 무슬림들이 순례길에 오른 상황도 일조했다.

정부가 순례 정책을 총괄하고 민간 기업이 순례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는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에도 이어졌다. 세부 제도는 여러 차례 바뀌었는데, 1990년대 후반에 마련되어 현재까지 유지되는 기본 틀은 다음과 같다. 순례를 희망하는 사람은 정부의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리며, 이때 우리 돈으로 200만원 조금 넘는 선금을 납부한다. 이후 자기 순번이 돌아오면 정부가 책정한 전체 순례 비용 중 선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내고 정부의 관리 아래 순례 절차를 진행한다.

모든 순례 희망자가 정부 프로그램을 따르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민간 여행사에도 전체 쿼터 중 10% 범위에서 순례자를 모집할 권한이 주어진다. 이때도 신청자는 먼저 선금을 납부하고 대기자 명부에 등록한 뒤 순번이 되면 잔여 비용을 낸다. 민간 여행사가 더 나은 숙소와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정부 프로그램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선금 제도는 순례를 희망하는 무슬림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한 획기적인 장치였다. 예를 들어 2026년 순례 비용은 500만원을 조금 넘었는데, 이를 두 차례에 나누어 부담함으로써 순례자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선금 제도는 경비 부담을 추가로 낮출 여지를 가지고 있다. 선금을 운용해 얻은 이익이 순례 비용 보전에 활용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순례자가 부담한 금액은 전체 경비 중 62% 수준이었고 나머지 38%는 선납금 운용 수익으로 충당되었다.

순례자 입장을 고려한 합리적인 제도였음에도 시행 10여 년이 지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례자 명부에 등록한 인원이 국가별 순례 쿼터를 훨씬 넘어설 정도로 급증한 것이다. 2010년 무렵에는 등록 후 순례를 떠나기까지 평균 6년이 걸렸다. 쿼터가 지역별로 배정되었던 탓에 일부 지역 주민은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순례 정책 자체의 실패로 볼 수는 없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따라 순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점 역시 중요한 배경이었다.

인도네시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면 연 5% 안팎의 경제성장을 꾸준히 이어 왔다. 이는 순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무슬림 인구를 확대했고, 결과적으로 대기 기간을 더욱 길게 만들었다. 2025년을 예로 들면 가장 심각한 지역은 대기 기간이 50년을 초과했고 대다수 지역에서 20년을 넘어섰다. 지역 간 격차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지역별 쿼터제를 전국 단일 체제로 전환했지만 평균 대기 기간은 여전히 26년에 이르렀다. 지금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면 2052년에야 순례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 발전이 현재 속도로 이어진다면 대기 기간은 더 연장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앞서 언급한 ‘티켓 전쟁’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인도네시아에 배정된 순례 쿼터가 현재의 22만명보다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나오자 추가 물량 배분을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는 아이돌 콘서트 예매처럼 자유 경쟁 방식으로 추가 쿼터를 배정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티켓 전쟁’을 통해 대기 시간 없이 곧바로 순례를 떠날 기회를 제한적이나마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종교적 의무인 순례 기회를 운이나 속도 경쟁에 맡기려는 시도는 거센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정부 관계자가 파격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순례 문제가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에는 경제 발전이 지속되면 그에 비례하여 종교적 열정이 약화할 것이라는 인식이 주도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종교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한 듯한 추세가 이런 통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인도네시아의 현실은 이와 대조된다. 과거처럼 ‘하지’라는 호칭이 절대적인 권위와 명예를 상징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성지 순례를 향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순례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중동 전쟁을 바라보면서 인도네시아에서는 유가 불안이나 물가 상승에 더해 성지 순례의 차질 없는 진행 여부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5월에 시작하는 순례 기간에 맞추어 4월 하순부터 순례자가 출국해야 하는데 지역 정세 불안이 이동과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순례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는 수십 년 동안 순번을 기다려 온 무슬림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길 수 있다. 동시에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500만명이 넘는 대기자에게도 순례 기회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수십 년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바로 이러한 기다림 속에 순례가 가진 어떤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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