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동남아시아와 관련하여 최근 ‘시블링(SEAbling)'이라는 낯선 표현이 소셜미디어와 언론 보도에 등장했다. 이는 ‘형제자매’를 뜻하는 영어 단어 ‘시블링(sibling)'에 동남아시아를 가리키는 ‘Southeast Asia’ 약자 ‘SEA’를 결합하여 만든 말로, ‘동남아시아의 형제자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복수 형태인 ‘시블링즈(SEAblings)'가 동남아에서 사용된 반면 한국에서는 복수 표시 없이 ‘시블링’이라는 형태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표현이 갑자기 우리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유는 ‘시블링’이라는 이름으로 뭉친 동남아 네티즌이 한국을 조롱하는 사진과 밈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대규모로 유포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희화화하는 데 자주 동원된 소재는 성형이었다. 하얀 플라스틱이나 붕대를 얼굴에 붙인 한국인 이미지, 한국 여성의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 외모 변화를 강조하는 방식 등이 사용되었다. 심지어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비교 대상으로 활용되는 일도 있었다. “한국인의 얼굴에는 여드름이 없다. 여드름은 플라스틱 위에서 자랄 수 없다”는 식의 표현에서 보이듯 이들은 조소와 비아냥이 섞인 메시지를 통해 한국인을 비하했다.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한국 네티즌에게 전달되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부정적 메시지에 당혹해하던 한국 네티즌은 곧이어 반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이용된 카드 중 하나는 동남아 국가의 경제적 저발전 상황이었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인도네시아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장면을 두고 촬영장을 빌릴 돈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냉소하거나, 일상적 빈곤 상황을 비아냥거리는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상황이 격화되자 한국 네티즌은 동남아시아 사람의 외모를 조롱하는 방식까지 동원했다. 여기에서 등장한 소재는 유인원이었다.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등 사진을 동남아 사람과 동일시하는 콘텐츠가 유포되었다. ‘우리 이제 그만 싸워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에는 한 여성이 오랑우탄과 포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여성 옆에는 한국 국기가, 오랑우탄 옆에는 말레이시아 국기가 붙어 있었다. 이런 식의 비하는 인종주의적 성격을 띤 것으로, 자극적인 콘텐츠의 확산 과정에서 혐오 표현이 증폭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시블링과 한국 네티즌의 대결’로 불린 이 사건의 발단은 한국 보이밴드 DAY6의 말레이시아 콘서트였다. 공연 자체는 성공적이었지만 그 와중에 ‘해프닝’이 발생했다. 한 한국인 관중이 망원렌즈가 부착된 금지된 카메라로 공연을 촬영하다 현지 팬들의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사과하며 마무리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관중은 오히려 고함을 치며 소란을 일으켰다. 이 장면이 영상으로 촬영되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고 순식간에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로 퍼져나갔다. 이처럼 반한 감정을 중심으로 ‘시블링’ 연대가 형성되어 강력한 영향력을 떨칠 수 있었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남아시아 국가의 높은 정보화 수준이다. 산업화 속도와 달리 소셜미디어 중심의 정보화는 동남아 대부분 국가에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5시간 정도인 반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는 7시간을 넘어섰다. 인터넷 사용 시간이 길수록 온라인 사건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진다.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일이 순식간에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한 데에는 활성화된 소셜미디어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
둘째는 동남아 네티즌 사이에 형성되어 있던 연대의 경험이다. ‘시블링’이라는 표현은 몇 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사용되었지만 특히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급부상했다. 당시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던 배달 기사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의 네티즌들이 일면식도 없는 인도네시아 배달 기사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온라인 운동을 펼쳤다. 국경을 넘어 서로의 상황에 지지를 표현한 것이다. 이 경험은 한국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시블링’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번 사건이 한류 콘서트 현장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한류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하여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반면 한류의 일상화와 함께 그에 대한 부정적 정서도 서서히 축적되어 왔다는 사실은 덜 주목받아 왔다. 이러한 반감은 이번 사건과 같은 계기를 통해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빠르게 동조화되어 표출되는 배경이 되었다.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나타나는 반한류 정서는 특정 영역으로 제한되지 않고. 종교·경제·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종교적 관점에서는 한류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는 노출이나 음주, 폭력 장면이 무슬림 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한류 콘텐츠에 지나치게 몰입할 때 종교 활동에 소홀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한국 아이돌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관련 상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정치적으로는 한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자국 문화를 경시하고 전통문화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되었다. 나아가 한류로 인해 민족주의와 국가 정체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한류에 몰입한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대 간 관심사 차이가 벌어지면서 가족 내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온라인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기에 현실 세계에서 관계 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측면이 부각되었다. 한류 콘텐츠에 과도한 시간을 소비하면서 일상생활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으며, 획일적인 미적 기준이 확산하면서 외모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처럼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누군가 한류에 불만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논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자녀의 학업 문제를 걱정하는 학부모, 종교적 가치를 중시하는 종교 지도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정치인, 소비 구조를 우려하는 경제인 등 서로 다른 집단이 각자의 이유로 한류 비판의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설문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2010년대 중반 20%에 미치지 못했던 인도네시아인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2023년 조사에서 30% 중반 수준으로 높아졌다. 태국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2014년 약 16%였던 부정 인식은 2023년 41%까지 상승했다. 이는 한류와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남아시아 사회에 내재해 있는 반한류·반한 정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던 사건을 증폭시키며 ‘시블링’ 연대의 활동을 결집시켰다.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인을 조롱하는 밈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한류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었다. 일부에서는 한국 제품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하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2월부터 소셜미디어를 뒤덮었던 ‘시블링’ 활동은 3월 중순에 접어들어 소강 상태에 놓였다.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류와 한국인 비난은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류와 한국 문화에 호의적인 동남아시아 사람 역시 이번 사건만으로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등이 사라진다고 해서 상황이 사건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갔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한류가 20여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확산한 것처럼 반한류 정서 역시 반복되는 사건을 통해 서서히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류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혜택이 문화 산업을 포함한 경제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반 한국인에게까지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동남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지인의 관심과 호의를 받게 되는 일은 한류가 만들어낸 긍정적 이미지의 결과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반한류 정서의 확산이 미칠 부정적 영향 역시 한국 제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한국인 일반에게로 확장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남아시아에 존재하는 반한류 정서를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이번 사건 자체는 우발적으로 발생했다. ‘시블링’과 한국 네티즌 사이의 상호 조롱 역시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나타나는 갈등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사건이 언제든지 한류와 한국 전체를 향한 공격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사건은 예시한다. 한류의 지속적인 인기 뒤에 아직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반한류 정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그 여파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한류와 한국 문화에 대한 동남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관심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준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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