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쳐오는 기업부채] "투자 대신 상환" 선택…금리 부담·중동 늪에 '성장 엔진' 꺼지나

 
 

국내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 대신 부채 상환을 선택하며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과 자금 조달 여건이 동시에 악화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위축이 향후 성장 저하로 이어지며 우리 경제 전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초 효과' 대신 '빚부터 갚자'…공포에 짓눌린 시장

2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3월 회사채 시장은 6조4000억원의 순상환을 기록했다. 2024년과 2025년 같은 기간 순발행에서 순상환으로 전환한 것이다. 통상 연초는 기업들이 한 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회사채 시장으로 몰리는 이른바 ‘연초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다. 기관투자자들의 자금 운용이 새로 시작되는 시점인 데다 기업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금리 조건으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자금 확보 시기임에도 오히려 빚을 갚는 데 주력했다는 점은 기업들의 위축된 심리를 보여준다. 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나선 배경에는 예측 불가능한 대외 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고채 금리 상승세가 이어진 가운데 중동 전쟁이 국제유가와 환율을 자극하며 비용 인상 압력을 키웠다.

이에 시장은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반영했고, 국채 금리도 급등했다. 지난 3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617%까지 오르며 두 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을 선반영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지자 기업들은 차입을 통한 확장보다 이자 비용을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는 ‘생존’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들의 보수적 행보가 경제 전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투자가 줄어들면 고용 시장이 위축되고, 이는 다시 가계 소비 감소로 이어져 내수 경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번 식어버린 성장 엔진을 다시 가동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기업경기 위축…투자 감소가 부르는 악순환

실제 기업들의 경기 지표는 이미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3월 전 산업 기업심리지수(CBSI)는 전월보다 0.1포인트 하락한 94.1로 집계됐다. CBSI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가운데 주요 지수(제조업 5개·비제조업 4개)를 바탕으로 산출한 심리 지표로, 기준치인 100을 웃돌면 낙관적, 밑돌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중동 전쟁의 파급 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4월 기업 경기 전망은 더욱 악화됐다. 4월 CBSI 전망치는 제조업 95.9, 비제조업 91.2로 각각 전월 대비 3.0포인트, 5.6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24년 12월 ‘비상계엄 사태’ 직후였던 지난해 1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당시 제조업은 3.8포인트, 비제조업은 9.7포인트 하락한 바 있다.

기업이 체감하는 수익성(채산성) 지표도 부정적이다. 3월 채산성 BSI는 73으로 전월 대비 3포인트 하락했고, 다음 달 전망치(70)는 전월 대비 9포인트 급락했다. 자금 사정에 대한 기업 심리도 악화하는 흐름이다. 자금사정 BSI는 3월 79로 전월보다 1포인트 하락했으며, 4월 전망은 이전 전망치(80)보다 3포인트 낮은 77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익성 악화와 자금난은 투자 위축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설비투자실행 BSI 역시 3월 전망치 95에서 4월 94로 하락하며 기업들이 기존 설비 확장이나 신규 프로젝트를 줄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업들의 투자 위축은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앞서 한은은 우리 경제의 성장 둔화가 기업 투자 부진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이종웅 한은 조사총괄팀 차장은 “경제위기 이후 성장 둔화는 기업 수익성 악화에 따른 투자 부진과 이를 개선하는 자정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며 “기업의 투자 부진은 자금 조달의 어려움(금융제약)보다는 근본적인 수익성 악화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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