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컬럼] "길이 없으면 만든다" SK해운 홍해 돌파, 정부·기업 합작의 승부수

SK해운의 유조선이 홍해를 지나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약 48일 만에 확인된 첫 우회 수송이다. 사우디 얀부항에서 원유를 싣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인도양으로 나와 한국으로 향하는 경로다. 약 보름 뒤 도착한다. 숫자와 경로만 보면 하나의 운송 사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지금 한국 경제가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통과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후 처음으로 우리 선박이 홍해를 통해 원유를 안정적으로 운송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며 관련 부처들이 원팀으로 움직이며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호르무즈 해협 봉쇄 후 처음으로 우리 선박이 홍해를 통해 원유를 안정적으로 운송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며 "관련 부처들이 원팀으로 움직이며 이뤄낸 값진 성과"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출발점은 단순하다. 길이 막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한국 원유 수입의 핵심 통로다. 이 길이 막히면 에너지가 멈춘다. 에너지가 멈추면 공장이 멈추고, 물류가 멈추고, 경제가 멈춘다. 그래서 문제는 단순한 해운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생존 문제로 번진다.


이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움직일 것인가.
정부는 기다리지 않았다. 대체 항로를 찾았다. 그리고 실행을 지시했다. 홍해를 통한 우회 수송이다. 문제는 이 길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후티 반군의 공격이 이어진 지역이다. 실제로 수십 건의 선박 피격 사례가 발생한 곳이다. 그동안 운항 자제가 권고됐던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박은 출항했다.
여기서 핵심이 나온다. 이번 선택은 ‘위험 회피’가 아니라 ‘위험 관리’다. 위험을 없앨 수 없다면, 계산하고 감당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 경제는 이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정부는 판을 만들었다. 항로를 열고, 관련 정보를 모으고, 안전을 모니터링하며, 외교적 리스크를 관리했다. 쉽게 말해 ‘가능한 길’을 만든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선택지다.


하지만 판만으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실제 경제는 기업이 움직인다. SK해운은 그 길 위를 걸었다. 선박을 보내고, 원유를 싣고, 위험 지역을 통과하며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운송이 아니다. 리스크를 실제 행동으로 바꾼 결정이다.


이렇게 두 축이 맞물린다.
정부는 방향을 만들고, 기업은 결과를 만든다.
이번 홍해 항해는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 대응을 평가할 때 ‘누가 더 잘했는가’를 따진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함께 움직였는가’다. 정부만으로도, 기업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사례는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선다.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평상시에는 시장이 중심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이 전환이 빠를수록 충격은 줄어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점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다는 사실이다.
이란이 휴전을 이유로 통행을 일시 허용했다. 그러나 조건이 붙어 있다. 특정 경로를 따라야 하고, 기간도 제한적이다. 언제든 다시 막힐 수 있다. 이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기존 경로의 복원이 곧 안정의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한국 경제는 특정 경로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의존 구조는 얼마나 위험한가.


이번 홍해 항해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답이다.
하나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여기서 공급망의 개념이 바뀐다.
과거에는 가장 빠르고, 가장 싸고,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중요했다. 지금은 다르다. 가장 안정적인 경로가 중요하다.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멈추지 않는 구조가 더 가치 있다.


이 변화는 기업에도 요구된다.
SK해운의 선택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다. 계산된 판단이다. 리스크를 비용으로 환산하고,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이것이 기업의 역할이다.


정부 역시 변해야 한다.
단순히 규제를 만들고 지원을 하는 역할을 넘어, 리스크를 관리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전략적 주체로 바뀌어야 한다. 이번 사례에서 정부는 그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했다. 그러나 이것이 일회성 대응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런 상황은 반복된다.
홍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호르무즈,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 주요 해상 경로는 모두 지정학적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 문제는 위기가 오느냐가 아니라 언제 오느냐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이 구조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 항로를 다변화해야 한다. 하나의 경로에 의존하는 구조를 줄여야 한다.
둘째, 정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위험 지역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국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단독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핵심은 연결이다.
정부와 기업이 따로 움직이면 대응은 늦어진다. 함께 움직이면 속도가 붙는다. 이번 사례는 그 차이를 보여준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다.
홍해 항로는 여전히 위험하다. 비용도 증가한다. 그리고 언제든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선택’이다.


이번 홍해 항해는 그 선택의 결과다.
위험을 감수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결론은 단순하다.
지금 세계 경제는 안정된 환경을 전제로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 안에서 정부는 판을 만들고, 기업은 결과를 만든다.


SK해운의 홍해 돌파는 그 구조가 실제로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국이 그 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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