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영화 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김우창 고대 영문과 명예교수의 삶과 사상을 조망한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 —최정단 감독, 모스크바 영화제로 간다

한 시대의 지성은 책 속에만 남지 않는다. 그가 살아온 집의 공기 속에 남고, 오래 붙들어 온 문장의 호흡 속에 남으며, 그를 바라본 제자와 후학의 기억 속에도 남는다. 한국 인문학계의 원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삶과 사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가 제48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는 소식은, 단순한 영화제 진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올해 이 부문에 오른 한국 작품은 이 영화가 유일하며, 한국의 한 인문학자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가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초청은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건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묘하다.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제목만으로도 이 작품이 한 사람의 전기를 단순히 정리하는 영화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사유 자체를 따라가려는 영화임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작품은 김우창 교수를 학문적 업적의 목록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문명, 문학과 철학, 죽음과 존재를 가로지르며 평생 생각해 온 한 사상가의 내면 풍경을 따라간다.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사진고려대 제공
다큐멘터리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사진=고려대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소개에 따르면, 이 작품은 김우창 교수의 “기이한 삶”과 “죽음과 생명에 관한 우주적 사유”를 탐색한 21년의 기록이며, 그가 40년 동안 살아온 집과 생애 마지막 저서를 둘러싼 시간을 중요한 무대로 삼는다. 


김우창 교수의 삶은 한국 현대 지성사의 한 축을 이룬다. 그는 193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65년 「청맥」에 ‘엘리어트의 예’를 발표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대와 고려대에서 영문학과 비평이론을 가르쳤고, 고려대 명예교수로 남아 문학과 철학, 사회와 문명을 아우르는 사유를 이어왔다. 그의 저작들은 문학비평을 넘어 한국 사회가 어떤 이성과 어떤 공공성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묻는 작업으로 읽혀 왔다. 그는 한쪽 진영의 언어에 자신을 가두기보다, 늘 더 깊고 더 넓은 차원의 이성적 성찰을 요구한 학자였다. 


그래서 김우창을 다룬 이 영화의 가치는 단순히 “학자 한 사람을 기념하는 작품”이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잊고 지낸 질문, 곧 ‘지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유는 어떻게 삶과 일치해야 하는가’를 다시 화면 위로 불러낸다는 데 본질적 의미가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소개문을 보면, 영화는 김우창 교수가 오래된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부모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병든 아내 설순봉 여사와 함께 늙어가는 시간 속에서 끝내 써내려는 마지막 책의 의미를 천천히 응시한다. 이것은 학문의 개념을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사유가 한 인간의 생활양식과 윤리로 어떻게 굳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의 서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위대한 사상가의 화려한 명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일상적 고독과 성실함일 것이다. 김우창 교수는 영화 속에서 거대한 담론의 연설자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늙어가는 육신을 이끌고, 아픈 배우자를 돌보며, 오래된 집의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놓여 있다. 그 모습은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아주경제 보도에서 최정단 감독은 몇몇 중요한 인터뷰를 끝까지 넣고 싶었지만 결국 빼게 됐다고 하면서, “말보다는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 더 맞다고 느꼈다”고 했다. 바로 이 연출 의도가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거대한 이론의 설명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자기 철학과 일치하는 삶을 견뎌냈는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인문학적 영화 문법이기 때문이다. 


최정단 감독의 집념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글에 따르면 그는 오직 이 영화를 위해 회사를 차리고, 무려 21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처음에는 강연 아카이빙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 사상가의 말이 아니라 삶 전체를 기록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나아갔다. 상업영화의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한 인문학자를 따라 20년 넘게 카메라를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신사적 사건이다. 그것은 단순한 제작 노동이 아니라, 스승의 삶을 향한 제자의 경의이자 한국 인문학에 대한 오랜 봉사의 기록이라고 보아야 한다. 


감독의 언어 역시 인상적이다. 그는 김우창 교수에 대해 “말보다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고, 영화의 첫 문장인 “기이한 바다를 항해하는 자다”를 언급하며 자기답게 살기 위해서는 강한 결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려 김우창의 삶 속에서 “단독자의 고결한 삶”을 보았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미화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너무 쉽게 집단의 소음에 휩쓸리고, 학문조차 성과와 유행의 언어로 재단되는 오늘, 끝까지 자기의 사유를 지키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야말로 영화적 진실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다. 


이번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은 바로 그런 점에서 값지다. 세계 영화제가 주목한 것은 한국의 유명 학자를 소개하는 이국적 호기심이 아니라, 한 사상가의 내면과 한 제자의 집념이 빚어낸 영화적 완성도였을 것이다. 


고려대는 이번 초청이 “한국 인문학자의 학문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세계 주요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례적 사례”라고 밝혔고, 선정 과정에서도 작품의 철학적 성찰과 독창적 접근 방식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영화의 해외 진출은 흔히 장르영화나 상업영화의 쾌거로 설명되지만, 이번 성과는 한국 인문학과 다큐멘터리 미학의 만남이 국제적으로도 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조용한 증거다. 


김우창 교수의 사상은 원래부터 좁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다. 그는 문학평론가이면서 철학자였고, 영문학자이면서 문명 비평가였다. 그의 사유는 한국 사회의 이념적 편 가르기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더 자유롭고 더 이성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확장돼 왔다. 그런 인물이 늙어가는 집의 시간 속에서 마지막 책을 준비하는 모습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결국 한 지성인의 말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존엄’을 기록하는 일이라 해야 옳다. 시대가 급할수록 느린 생각은 더 귀해지고, 세상이 소란스러울수록 조용한 지성은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이 영화가 바로 그런 가치를 되살린다. 


그래서 이번 쾌거는 두 사람의 성취가 겹쳐 이루어진 결과다. 한 사람은 평생 사유를 통해 한국 지성사의 높이를 지켜온 김우창 교수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유의 삶을 영화라는 언어로 건져 올린 최정단 감독이다. 스승의 삶이 깊었기에 영화가 가능했고, 제자의 집념이 치열했기에 그 깊이가 화면 위에서 살아났다. 이것은 단순히 다큐멘터리 한 편의 성공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 사유와 형상, 인문학과 영화가 오랜 시간 끝에 맺은 아름다운 결실이다.


결국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가 모스크바로 간다는 소식은 한국 인문학의 한 원로가 국제 무대에 다시 소개된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가장 느리고 깊은 정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호이며, 사유의 삶을 끝까지 붙든 사람이 결국 시대를 넘어 감동을 전한다는 증거다. 


김우창 교수의 삶은 말로만 지성을 외치지 않았다. 그는 오래된 집과 늙어가는 몸, 끝내 다 쓰지 못한 문장과 병든 아내를 돌보는 시간 속에서도 한 인간이 자기 철학과 얼마나 오래 일치하며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최정단 감독은 그 숭고하고도 고독한 시간을 무려 21년 동안 따라가며, 한 사람의 삶을 넘어 한국 인문학의 품격 자체를 필름 위에 새겼다. 


그 점에서 이 영화의 모스크바행은 단지 영화제 초청이 아니라, 한국 지성의 깊이가 세계 앞에 조용히 도착한 사건이라 불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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