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전쟁에 긁힌 코스피 6000 … 시험대 오른 정부의 '3高' 위기 대응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미국-이란 전쟁으로 코스피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넘나들면서 위태로운 움직임을 보인다. 중동산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겨 기름값이 치솟자 30년 만에 처음으로 석유가격 통제 조치가 시행됐다. 글로벌 물류망의 교란으로 주력 제품의 수출과 원자재 수입이 언제 어디서 막힐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증시 호황에 힘입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던 한국 경제가 중동에서 터진 초대형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위기는 짙은 화장을 지운 한국 경제의 민낯을 민망할 정도로 극명하게 노출했다. 글로벌 투자업계를 놀라게 한 코스피 6000 돌파, 세계에서 6번째로 이룬 수출 7000억 달러 달성 같은 경이로운 수치는 빛바랜 훈장이 됐다. 국제 정세가 출렁이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소규모 개방 경제국의 허약한 실상이 있을 뿐이다.

원유를 100% 수입하고 공급량의 70% 이상을 중동 산유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 지역 정세가 불안해지거나 가격이 급등하면 변변한 완충장치 없이 충격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은 뒤 중동 정세 불안으로 홍역을 치를 때마다 원유 도입처 다각화를 다짐했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고 나면 손을 놓은 무사안일의 대가를 또 한번 치르고 있다.

원유 도입 환경은 그대로인데 산업이 고도화·선진화되면서 오히려 유가 변수에 더 취약해졌다. 한국 제조업의 주력인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는 에너지 수급과 연관성이 높아 유가가 수출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초기엔 정유·석유화학에 국한됐던 위기감이 자동차, 가전, 반도체 등 산업 전체로 번지는 이유다.

글로벌 소비 위축으로 자동차, 스마트폰 등 완제품 판매가 부진해지면 관련 업종의 부품 생태계가 타격을 받고, 한국 경제의 회복을 선도하며 코스피 호조를 이끈 반도체 슈퍼사이클마저 주춤해질 수 있다.

코스피는 6000을 넘기면서 한때 시가총액 합계 세계 9위를 자랑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외부 악재로 인한 변동성이 크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좌우되는 신흥국 시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비슷한 약점을 가진 인접국 중국, 일본, 대만 증시가 2~3% 안팎 등락 폭을 유지한 반면 코스피는 하루에 10%씩 급등락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전쟁이 일단락되면 패닉은 진정되겠지만 한국 증시가 정상적인 투자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시장인지에 대한 의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500원에 육박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유가 상승, 코스피 급락, 외국인 투자자 이탈, 에너지 공급망 위기, 주력 수출품 생산 차질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해 생긴 원화 약세가 가속화되면서 원화가 외환시장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기는 더 어려워졌다.
세계 원유 공급량 중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기름값 상승이 생필품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대대적인 물가 관리에 나선 정부의 단속 엄포로 식품업체들이 밀가루, 식용유, 빵, 라면 등 가격을 낮췄거나 내릴 예정이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통계 수치보다 훨씬 높은 상태다.

미국-이란 전쟁은 한국 경제에 고유가·고환율·고물가라는 3고(高) 현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숙제를 안겼다. 3고 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지 못하면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닥칠 위험이 커진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는 각자가 원인과 결과의 성격을 갖고 상호작용하면서 충격을 키우는 복합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고유가는 경상수지를 악화시켜 원화 약세(고환율) 요인이 되고, 소비자가 체감하는 유가와 물가 부담을 키운다(고유가·고물가). 원화가치 하락(고환율)과 원유가격 상승(고유가)이 맞물려 물가를 끌어올리고(고물가), 고유가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강화해 원화 약세(고환율)를 초래한다.

3고 현상은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며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린다.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1.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는 국제 유가를 배럴당 62달러로 예상해 내놓은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오르면 성장률이 0.3%포인트 하락하고 150달러가 되면 0.8%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전략 비축유 4억배럴 방출을 발표했지만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거듭 선언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있다.

중동에 오일쇼크가 발생하면 한국은 어김없이 경제위기를 겪었다. 1979년 이란 혁명을 계기로 발생한 2차 오일쇼크 당시 배럴당 15달러였던 국제 유가가 39달러로 폭등하면서 국내 물가는 1980년에만 30% 가까이 치솟았다. 2008년 7월 국제 유가가 신흥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쳐 150달러까지 오르자 세계적인 소비·투자 위축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해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이번 사태는 금융시장 혼란과 실물경제 피해가 결합됐다는 점에서 장기화하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질 뿐 아니라 그동안 습득했던 위기 극복 방식이 유효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21세기 최초의 오일쇼크로 경제 쓰나미가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 같은 에너지 순수입국은 단기간의 유가 폭등이 교역조건 악화와 경상수지 흑자 감소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산업 전체의 원가를 과도하게 높여 생산과 소비, 투자, 고용을 연쇄적으로 위축시킬 위험이 크다. 적시 대응에 실패하면 ‘유가 상승→경상수지 악화→환율 상승→수입물가 상승→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태그플레이션 취약성 1위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런 특성 때문이다.
경기가 나쁘면 당국이 금리를 낮추거나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살리려 하는데 물가가 동시에 오르면 오히려 금리를 올리거나 긴축 정책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정부가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 중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이 12일 중동 정세 불안으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당분간 ‘신중한 중립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은 그만큼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기 쉽지 않다는 고민을 내비친 것이다.

전쟁이나 대규모 재난 등 비상 상황에서는 시장의 예상이나 기존 정책을 뛰어넘는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부 대응이 필요하다. 당면한 최대 과제는 3고 현상의 불길을 조기에 잡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등장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100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기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해 시중자금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기름값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고통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경제 분야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다. 정부가 최대 20조원의 조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나서는 것은 위기 대응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신속한 대처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생경제 충격 완화를 위한 골든타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며 추경 집행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라고 주문했다.

이번 추경 예산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유의하면서 ‘기름값 추경’이라는 본래 취지에 충실해야 효과가 극대화되고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돈 풀기’라는 오해도 피할 수 있다. 정부가 밝힌 대로 공공요금 동결, 유류세 인하,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 확대, 화물차 유가보조금 지원 등 재정 지원이 필요한 항목이 많다. 중동 사태의 후폭풍을 최소화하고 유가 상승에 따른 실물경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선별적이고 제한적으로 예산을 투입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추경 편성과 집행은 정부의 역량과 진정성을 검증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원유와 천연가스 도입 지역을 중동 일변도에서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다각화하는 작업은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절대 미루지 말아야 할 과제다.

중동 위기는 화려한 숫자 뒤에 가려진 우리의 약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주식시장을 포함해 한국 경제의 현주소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토대로 외부 변수에 휘둘리지 않는 진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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