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
독일의 역사철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동시성의 비동시성' 개념을 사용해 역사 발전의 다층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지구에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발전 속도를 가진 사건이나 구조들이 뒤섞여 발생한다는 뜻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미국이 선도하고 있지만 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저개발 상태에 살고 있다. 이를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적용해 설명할 수 있다. '현대'(modern)라는 새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도 잘살아보세‘라는 미래에 대한 새 기대가 새 역동성을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로 ‘현대’ 프로젝트에 성공한 나라가 한국이다. 3번의 대전환에 성공했지만 네 번째 대전환, 즉 ‘전국 어디서 누구나 잘살 수 있는 온전한 자치분권의 연방국가’는 미완성이다.
첫 번째 대전환은 산업화 성공이었다. 독일 발 상업차관에 광원·간호원 파독으로 땀 흘려 번 돈이 경제발전의 종잣돈이 되었다. 이어 베트남 전쟁터, 중동 모래터에 청춘을 바쳐 외화벌이에 나섰다. 이를 기반으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심에 있었다. 성공의 원동력은 위대한 국민의 피땀 어린 희생과 이를 이끌어간 정치·경제 리더십이 있었다. 후자로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을 들 수 있다. 또 공산화가 아닌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블록에 편입한 결과다.
이후 국가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기 시작해 현재 1%대로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 수준이 되었고, 해마다 출산율이 세계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0.7명인 최악으로 떨어졌고, ‘청년 3포’(무연애, 무결혼, 무자식) 시대로 세계 최악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역·계층·성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세상은 다시 격변의 시대가 되었다. 거대한 4대 메가트렌드 파고가 우리를 덮치고 있다. 먼저 지역화·세계화다. 우리 국민 약 5200만 명 중 80%가 해외여행 경험이 있을 정도다. 동학개미와 서학개미로 나눠 약 2000만명이 세계 경제와 기업 트렌드를 공부하고 투자하고 있다. 또 해마다 최악의 열대야를 기록할 정도의 지구가열화는 수많은 재난과 더불어 산업구조를 바꾸고 있다. AI 디지털 기술 발전과 플랫폼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승자 독식구조와 미·중 패권전쟁을 가열시키고 있다. 자유무역질서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발 관세정치로 파괴되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 시진핑의 대국굴기와 러시아 푸틴의 유라시아 패권 추구는 지정학적으로 세계를 더욱 불확실하면서 다극시대로 만들고 있다.
격변의 시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의 인구·경제 소멸이다. 더 이상 지방에서 서울로 올 사람이 사라지고 유모차가 아닌 개모차가 득실대면서 대한민국 소멸로 이어진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폴 크루그먼 칼럼니스트도 “한국 인구소멸이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메가트렌드에 대응하고 인구소멸을 극복하기 위해서 네 번째 대전환, ‘온전한 연방국가로의 대개혁’이 필요하다.
250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의 계몽학자 애덤 스미스는 “자유, 행복을 찾아가는 노동이 생산성을 높이고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국부론>을 출간했다. 이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도 해당된다. 당시 이미 그는 미국을 주목했다. 지방 주끼리 경쟁하는 최강국 미국뿐 아니라, 평화통일을 달성한 유럽 최강국과 세계 3대 경제강국 독일, 세계 최고 행복국가이자 개인 GDP가 11만 달러인 스위스 등이 연방국가로서 승승장구해 왔다. 연방국가는 지방주권으로 재정, 인사, 법률권이 지방정부에 있다. 미국·독일 연방국가의 성공비결은 3가지, 즉 새 비전과 실적을 보여주는 리더십, 각 주마다 차별화된 경제발전 전략 실행,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도 시스템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성공한 레이건 주지사나 작은 아칸소주에서 실적을 낸 클린턴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돼 대통령직 수행에 성공했다. 독일 역시 비전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는 베를린 시장을,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은 니더작센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새 리더십과 실적을 보여 총리에 등극해 데탕트와 평화통일이라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온전한 연방국가 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에 정치 리더들은 실적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지방자치는 ‘미완이자 반쪽’으로 지방 권한이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2할 자치’라고 조롱받는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약 8대 2 수준으로 중앙의 교부세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경북 이철우 지사 등 광역단체장들은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독일·미국의 재정은 중앙 40%, 지방정부 60%로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지방정부가 교육, 치안 등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 우리처럼 중앙 정부가 움켜쥐고 통제하는 개발모델은 시대에 낙후된 것이다. 선진국은 지방에 권한을 주고 서로 다원적으로 경쟁하는 모델이다.
대한민국 네 번째 대전환의 성공은 ‘로글로’, 지역(local)+세계(global) 추진에 달려있다. 지역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바로 지역에 오고 투자하는 모멘텀을 만드는 것이다. ‘2개 문’만 거치면 세계 어디든 교류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와 항공 인프라 구축이다. 미국은 16개, 독일은 10개의 국제공항이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미국·독일처럼 전 국토를 폭넓게 활용해 균형 발전해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때마침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가 균형발전을 위해 ’5극 3특’을 내걸고 행정통합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20조+α”에다가 공공기관 이전을 내걸었다. 지방으로서 새 청사진을 그려 도약할 호기를 맞고 있다.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통합을 먼저 제시했으나 광주전남만 통합법이 통과되었다. 다수가 원하지만 대구경북통합과 여야가 동상이몽인 대전충남통합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선과 일부 행정통합은 4번째 대전환 연방국가로 가는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서울강남공화국으로서는 독일 등 선진국처럼 지역 특색에 맞는 산림대전환·농업대전환뿐만 아니라 AI 대전환을 자율적으로 추진하기도 어렵다. 지방에 재정권과 입법권이 없다. 지방의 세제 혜택으로 미국 테슬라 본사가 캘리포니아에서 텍사스로 이전했다.
또 이 대통령이 공약한 대로 국가권력기관 지방이전 실천이다. 대통령실과 국회가 세종 충청으로, 헌법재판소, 대법원, 산업은행, KBS·MBC 본사, 서울대·육사가 여러 지방에 이전하는 것이다. 이어 미국과 독일처럼 대기업 본사들, 즉 예로 삼성전자가 TK(대구경북)로, 현대기아가 광주전남, LG 및 한화가 부울경, SK 및 KT가 충청권으로 옮기는 것을 상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상속세 빅딜이나 미국처럼 조세권을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것이다. 최고 국가권력기관, 대기업 본사, 최고 교육기관들이 지방 이전하면 5대 서울종합병원 이전뿐만 아니라 새 교육·문화 환경을 조성해 ‘인 로컬’이 가능하다. 미국 LA시민이 뉴요커를, 독일 뮌헨시민이 베를리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미국과 독일처럼 연방국가 완성을 위해 상원제를 도입하는 ‘원 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네 번째 대전환을 위해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며, 지방 언론사들이 새 기회를 맞게 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FAZ나 뮌헨의 SZ지 모두 지방지에서 출발해 전국지·고급지로 성장했다. AI시대 페이크(가짜)뉴스가 난무하기 때문에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회장이 애플 주식을 팔고 뉴욕타임스에 투자했다. 이어 뉴욕타임스 아서 슐츠버거 회장은 “AI보다 모든 신문에 투자하라”고 공익광고를 게재했다.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네 번째 대전환 성공은 레거시 미디어와 새 정치리더십에 달려있다. 네 번째 대전환을 외치는 단체장 후보와 차기 대권주자를 보고 싶다.
김택환 원장(미래전환정책연구원)
국가비전전략가로 문명을 공부하고 있다. 독일 본(Bonn)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다. 중앙일보 기자, 대학 교수를 거쳤다. <미중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 미래> 등 20권 이상을 저술한 작가이자 국회·삼성전자 등에서 350회 이상 특강한 유명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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