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징계 사유에 관한 충실한 심의를 거치지 않고 균형을 벗어난 징계 양정을 함으로써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 ··· 이에 따라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밝힌 내용이다. 일반인들은 이를 그저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해당 사안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정당 내부 사안에 대해 가처분 신청이 제기될 경우, 사법부는 이를 기각하는 것이 통례다. 사법부가 정치적 문제에 관한 가처분 신청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자칫 사법부가 정치 문제에 휘말리는 상황을 피하고 동시에 정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 관련 사안에 대해 본안 소송은 제기하더라도 가처분 신청만큼은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사안 모두 선거를 앞둔 시점에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즉,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하자가 있는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선거의 공정성 회복을 위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공식 절차에 의해 선출된 후보를 인위적으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선거 과정 전반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사법부가 판단했을 수 있고, 이번 역시 서울시당 위원장인 배현진 의원에 대한 징계가 상당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는 만큼, 선거 과정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사법부가 판단했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 혹은 주류 세력 그리고 국민의힘 기관의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볼 여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지도부나 당 기구는 이제부터라도 정치적 행위에 있어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현재 김종혁 전 최고위원의 징계 문제에 대한 가처분 결과도 이달 말경에는 나올 것이라고 한다. 당시 김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면서 당 윤리위는 "당대표는 당원 개개인의 '자유 의지의 총합'으로 만들어진 정당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단순한 자연인 인격체가 아니며 하나의 정당 기관에 해당한다"면서 "당의 리더십과 동료 구성원, 소속 정당에 대한 과도한 혐오 자극의 발언들은 정당한 비판의 임계치를 넘어선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해당 결정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당대표'를 하나의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식은 근대 초기 사상에서 나타났던 '국가 유기체론'을 연상시킨다. 국가 유기체론이란 국가를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보아, 탄생한 이후 유년기를 거쳐 성숙하고 이후 노화와 사멸에 이른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는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국가는 가시적 실체가 없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왕을 국가의 가시적 현현(顯現)으로 삼는다는 이론인데, 절대국가에서 나타나는 '왕=국가'라는 공식이 여기서 형성된다. 물론 국민의힘 윤리위가 당대표가 곧 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당 언급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인격체가 당의 기구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한, 당원들의 자유 의지의 총합이 당대표, 즉 당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경우 과연 ‘당의 기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역대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당의 기관’에 책임을 물어 해당 기관을 폐지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당대표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도 당대표가 실제로 물러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에 대한 해답의 단초가 최근 제시됐다. 국민의힘 주요 당직자 중 한 인사가, 설령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장동혁 대표는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당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는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장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이는 윤리위가 언급한 '당대표=정당 기구'라는 인식과 유사한 사고 구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다면, 국민의힘을 공당(公黨)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사당(私黨)으로 봐야 할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분명한 점은, 선거 승패에 대한 책임과 공을 당대표에게 귀속시키지 않는 한, 국민의힘 주류 세력은 앞으로도 반대 세력에 대한 '징계 정치'를 지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징계를 통해 정적들을 당 밖으로 축출하거나 당내 활동을 무력화함으로써 자신들의 당권을 공고히 하려 들 것이라는 의미다. 과거에는 선거에서 패배한 당대표 모두가 대표직을 내려놓고 주류가 교체되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이번에는 선거에서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당대표가 직을 유지하거나, 설사 물러나더라도 주류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는 '새로운' 선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지금 국민의힘 주류 세력이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은, 일반 국민들이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만일 이를 조금이라도 의식한다면, 지금과 같은 태도와 사고방식은 반드시 버려야 한다. 국민의힘이 현재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론이 잘못됐다거나, 언젠가는 여론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계몽적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