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으로 반도체 슈퍼사이클(호황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폭증에 힘입어 올해 영업이익이 각각 245조7000억원, 179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D램 시장도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하며 양사 글로벌 점유율이 70%에 달하는 등 'K-반도체 투톱'의 위상이 공고하다.
다만 이 같은 호황 뒤편에는 노조 리스크, 인재 유출, 기술 유출이라는 '3대 리스크'가 사방에서 포효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미래 투자마저 위축돼 호황의 열매를 제대로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
우선 노사 갈등이 문제다.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수준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올해 임금교섭에 난항이 예상된다. 올해 교섭에서 가장 큰 쟁점은 성과급 산정 방식 개편으로, 성과급 상한을 폐지해 경쟁사 대비 낮은 성과급 수준을 크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요구안을 포함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은 노사 간 임금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최악에는 파업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안팎에서는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도체 생산 차질은 곧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재 전쟁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직원 수는 최근 5년간 1만7000명가량 늘었다. 반도체 업황이 좋지 못했던 2023년 말에는 같은 해 2분기와 비교해 675명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이후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꾸준히 증가한 것이다.
다만 지속적인 충원에도 의대 광풍으로 반도체 계약학과 등록 포기율이 200~30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공장 가동에도 '사람 부족'이 만연하다. 실제 AI 분야 인재 이동을 분석하는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가 내놓은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 AI 인재 이동 지수는 -0.36(10만명당 0.36명 순유출)으로 2023년 -0.30에서 유출 폭이 더 커진 상황이다.
최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한국 AI칩 엔지니어를 대상으로 공개 구인에 나서는 등 빅테크의 한국 인력 빼가기가 가속화하는 모습이다. 역대급 성과급에도 불구하고 해외 빅테크로 인재 이동이 이어진다면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치명적인 건 기술 유출이다. 작년 12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0나노급 D램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에 유출한 전 삼성전자 임직원 10명이 기소됐다. CXMT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D램 양산에 성공하며 사실상 기술 격차를 좁혔다. 피해액은 매출 감소만 5조원, 장기적으로 수십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시장에선 처벌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 속에 재발 방지 대책이 시급한 가운데 호황기 인재 이동이 기술 유출의 온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리스크들은 결국 미래 투자와 직결된다. 삼성과 SK는 HBM4·파운드리 등 차세대 기술에 수백조 원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노조 리스크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인재 유출로 개발 속도가 느려지며 기술 유출로 경쟁력이 약화되면 투자 우선순위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와 기업은 노사 화합 플랫폼 마련, 인재 유치 인센티브 확대, 기술 보호법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 속 한국 반도체가 '호황기 자승자박'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