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이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및 미국·캐나다·중국 등에 대한 '펜타닐 관세' 부과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1·2심의 위법 판단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대법관 9명 가운데 6명이 위법, 3명이 합법 의견을 냈다.
판결의 핵심은 IEEPA에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1977년 발효된 IEEPA는 외국 상황이 미국의 국가 안보, 외교정책, 경제에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경제 거래를 통제할 권한을 부여한다.
IEEPA가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 가운데 하나는 수입을 '규제'(regulate)할 수 있는 권한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이 수입 규제 권한에 관세 부과도 포함된다고 주장해왔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관세 부과를 목적으로 IEEPA를 발동한 사례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미국 헌법 제정자들은 평시 관세 부과 권한을 '의회 단독'으로 부여했다"며 "관세에 외교적 영향이 있다고 해서 의회가 모호한 표현이나 신중한 제한 없이 관세 권한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은 수량, 기간, 범위의 제한이 없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하는 엄청난 권한을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권한의 폭, 역사와 헌법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가 이런 권한을 행사하려면 분명한 의회의 승인을 식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호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관세 정책으로 꼽힌다.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집권 2기 2년 차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관세 수익을 재원으로 추진하려던 각종 정책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대외적으로는 각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는 핵심 압박 수단이었던 상호관세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통상 전략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집권 2기 들어 논란이 된 주요 정책에서 비교적 우호적인 판단을 내려온 보수 우위의 대법원마저 이번에는 제동을 걸었다는 점도 정치적 부담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대체 수단을 제시했다. 그는 판결 직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로 더 이상 징수할 수 없게 된 10% '기본관세'(상호관세에 포함됐던 세율)를 다른 법적 근거로 우선 대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새 '10% 관세'가 "사흘 후 발효될 것 같다"고 말했으며, 이와 동시에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관세 조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이 국제수지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최장 150일간 최대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하거나 차별적 행위에 대응해 관세를 매길 권한을 규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201조, 관세법 338조 등 다른 수단도 거론했다.
이는 무효가 된 상호관세 대신 150일간 10%의 관세를 우선 부과하고, 그 사이 외국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해 추가 관세를 매김으로써 사실상 기존 수준의 관세 부담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이번 판결이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에는 적용되지 않는 만큼, 품목별 관세를 적극 활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법원 판결에 "매우 실망했다"고 비판한 뒤 "좋은 소식은 이 끔찍한 판결을 한 대법원 전체와 의회도 인정하고, IEEPA에 따른 관세보다 강력한 수단, 방법, 법규, 권한이 있다는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걷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관세 환급' 문제라는 또 다른 혼란도 예고한다. 대법원이 그간 위법하게 징수된 관세의 환급 여부를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기업들과 외국 기업의 미 자회사들이 반환 소송을 제기한 상태로, 소송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견에서 "그들(대법관들)은 의견을 쓰는 데 수개월이 걸렸는데도 그 문제를 논의하지도 않았다"면서 앞으로 수년간 소송에서 다투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수의견을 낸 보수 성향 브랫 캐버노 대법관도 "정부가 수십억 달러를 반환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결에)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한 뒤 "그 과정은 엉망진창(mess)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비롯해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대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한 국가들의 대응도 관심사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된 만큼 기존 무역 합의의 효력에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곧바로 새로운 관세 카드를 꺼내든 만큼, 각국은 미국의 후속 조치와 다른 국가들의 대응을 지켜보며 신중히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IEEPA 관세를 활용해 체결한 무역 합의의 효력에 대해 "다수는 유효하다. 일부는 유효하지 않을 텐데 그런 것은 다른 관세로 대체하겠다"고 답했다.
한국은 당장 독자적인 대응에 나서기보다는 미국의 후속 조치와 다른 국가들의 대응 동향을 지켜보며 대응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는 이번 대법원 판결 직후 "정부는 연방대법원 판결 내용 및 미국 정부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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