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양화대교 너머, 음악과 삶을 잇는 자이언티

자이언티는 감정을 터뜨리는 음악가가 아니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감정의 끝이 아니라, 그 감정이 시작되는 자리에 머문다.
‘가족’, ‘거리’, ‘소리’, ‘고요함’ 그의 노래를 이루는 단어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삶의 가장 조용한 결에서 흘러나온다.

그는 말한다. “나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이거 누구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더 공포스러워요.”

자이언티에게 예술은 경쟁이 아니라 조율이다. ‘나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 사이에서 매번 질문하고, 타협 대신 균형의 온도를 찾아가는 과정.
그는 음악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기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는 도구로 삼는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듣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의 온기로 남는다.
익숙함과 실험 사이, 소리와 침묵 사이, 그 경계 위에서 자이언티는 묻는다.
“지금 이 상태가 지속가능한가?”

그에게 ‘성공’은 결과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다.
그의 답은 언제나 단단하고, 그 단단함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이언티는 ‘감정을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 균형의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천천히, 자연스럽게, 자신을 음악으로 살아낸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이언티 사진 스탠다드프렌즈
자이언티 [사진= 스탠다드프렌즈]

 
자이언티의 음악은 늘 감정의 시작점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이언티 안의 음악은, 처음 어디에서 시작됐나. 소리였나, 침묵이었나, 아니면 외로움이었나
-글쎄, 뭔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단순한 계기로 음악이 좋아진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교회에서 여러 악기 소리를 듣고, 누구나 그렇듯이 자라면서 대중가요도 좋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장르 음악에도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있으니 만들고 싶어지고, 그러다가 이렇게 된 것 같다.
 
'자이언티다움'을 스스로 정의한다면 어떤 단어로 설명할 수 있나. 그리고 자이언티 답다는 건 무엇이고 아티스트로서 자이언티, 사람으로서의 김해솔은 어떤 사람인가
-모르겠다. 희망사항이지만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아서 아직은 제가 무엇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다. 저는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것 같다. 음악가, 사업가, 37세 이런 객관적인 정보도 제가 좋아서, 가치 있다 느껴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제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어떻게 평가되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하신 거라면 저만의 답이 있긴 하지만 그게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평가하는 대상이 워낙 다양할 테니까 말이다. 제 가족이나 친구들 또는 가까운 동료들이나 관객들에게도 저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평가되고 있을 것이고, 제가 만든 틀은 어찌보면 의미 없는 것 같다.
 
‘정체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시는데, 지금의 자이언티는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하는 것들이 있나
-고민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남들의 의견을 최대한 들어보는 것 같다. “당신은 뭘 느끼나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내 기준과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비교하면서 서로 다른 점을 느끼고, 무엇이 더 나은지도 생각해본다. 그 과정에서 나의 기호나 취항, 무의식적인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자이언티의 음악은 언제나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 감정을 언어보다 먼저 꺼내는 방식, 그것이 음악이었나. 아니면 선택된 수단이었나
- 말씀드린 것처럼 제 음악이 감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평가 또한 제가 내린 것이 아니다. 물론 제가 음악을 만들 때 감정을 소모하긴 한다. 열의가 있고, 사랑이 있을 거고, 때론 분노도 담길 테지만 음악 자체에 감정을 가득 채우려 애쓴 적은 잘 없다. 그건 아주 가끔이었다. 주로 창작 과정에서 제가 채우려 하는 부분은 ‘지금 내 수준에서 특정 기준에 도달하는 표현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자이언티라는 이름은 처음엔 '가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숨는 공간인가. 아니면 드러내는 통로인가
- 가면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게임 아이디 같았다(하하). 그래서 ‘숨는다’라는 표현은 제 입장에선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 누군가에겐 ‘숨는다’가 피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자기만의 세계를 지킨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저한텐 그 단어가 꼭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이름 안에 숨어 있었다기보단 그 이름을 통해서 활동을 시작했고, 계속해서 드러내고 있는 중이라는 게 더 가깝다.
‘드러내는 통로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 자이언티는 지금도 저한테 그런 통로다. 제가 사랑하는 제 업을 세상에 보여주는 이름이고, 그걸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자이언티 음악에서 ‘위로’나 ‘치유’를 느낄 때, 스스로는 어떤 감정을 받나. 오히려 외로움이나 책임감 같은 걸 느끼기도 하나
-누군가 제 음악에서 위로와 치유를 경험한다면 창작자로서 그만큼 감사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책임감을 갖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왜냐면, 위로나 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면 반대되는 감정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래도 나름 표현에 신경을 쓰고는 있다.
 
 창작자로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그때 무너짐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기억이 있다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
-무너질 만큼 괴로운 순간이 없진 않았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제가 처음 과도한 관심을 받았던 때 갑자기 환청을 들었다거나 억울한 일로 악플 세례를 받았을 때 혼자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셨다거나 원치 않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놀림 받는 그런 상황들로 인한 괴로운 감정들이 음악으로 표출될 수 있었기에 단지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라고 지금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자이언티 음악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가족', '거리', '소리', '고요함' 같은 키워드들이 있다. 이 키워드들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되는 이유가 있다고 느끼나
-제 음악에 그런 키워드들이 있었다고 정리해보긴 처음이다. 음, 아무래도 제가 가깝다고 느끼는 어떤 ’코드’아닐까 싶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실험적인 사운드 사이에서 늘 균형을 잘 잡아오셨는데, 본인의 작업에서 타협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나
-그 단어는 제가 창작자로서 살아온 시기마다 다양한 인상들로 남아있는 것 같다. ’나의 기준을 죽이고 남의 말을 듣는 게 타협이다‘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고, 어떤 시기에는 ’나만의 기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다른 좋은 것들을 놓치는 것 또한 나 자신과의 타협이다‘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밸런스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것도 타협이라면, 좋은 타협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너무 추상적인 답변이지만, 사람마다의 기준이 다를 거라서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질문을 많이 하는 친구들을 사귈 필요도 있다.
 
곡 작업을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이건 너무 나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을 것 같다. 그런 순간은 더 나아가는 자극이 되나. 아니면 갇혀 있다는 공포가 되기도 하나
- 나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잘 하고 있다고 느껴질 것 같다. 이거 누구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게 더 공포스러울 것 같다.
 
자이언티에게 ‘좋은 음악’이란 어떤 기준으로 완성되나. 차트 성적, 완성도, 감정의 진실성 중 어디에 더 큰 무게를 두나
-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 무슨 말이냐면, 차트 성적이 좋고 웬만큼 알려졌던 곡들은 시간이 꽤 지나고 좀 촌스럽다 느껴져도 일단 좋지 않나. 그래서 제 생각엔 그것도 좋은 음악의 기준이라면 기준인 것 같다.
감정의 진실성에 대해서라 제가 배우는 아니기 때문에 성급한 비유같지만, 좋은 연기란 과연 진실된 감정이라 좋은 걸까? 말이야 방구야 싶은 말이지만(하하). 얼마나 진실된 감정을 잘 모방했느냐 이게 기준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듯하지만, 후자가 완성도에 관한 질문인 것 같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주는 아무 감정 없더라도 청자를 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반대로 발성 연습도 안해본 초짜 보컬이 마이크도 없이 사람이 많은 대낮의 공원에서 진심 담은 세레나데를 부른다고 해도 눈물이 날 만큼 무척 감미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준은 다양한 것 같다.
 
자이언티의 음악을 단 한사람에 들려줄 수 있다면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나
-글쎄, 만들어 놓고 다음날 아침에 들어보니 별로여서 저 혼자만 듣고 만 적은 있다(하하).
 
자이언티의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음악만큼이나 독특하다. 사람들은 ‘스타일리시하다’고 하지만, 그 속에 감추려 했던 진짜 표정은 무엇이었나
-제가 옷으로 감추는 건 저의 맨 몸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팬들이 ‘이건 자이언티밖에 못 해’라고 말할 때, 어떤 감정이 드나. 영광인가요, 혹은 두려운 굴레인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건 제일 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사장님께서 ”이번 프로젝트, A씨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라고 말한다면 A씨 어깨에 뽕 좀 차지 않을까. 여기서 생존할 수 있겠다며 안도감이 들 거다.
 
자이언티’와 ‘김해솔’은 항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나. 갈라지는 지점은 언제였고, 그것이 내적으로 어떤 갈등을 만들어내나
- ’두 자아’라고 표현할 만큼 아예 갈라진 시기도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싱크가 맞춰지는 느낌이다. 제가 저를 지키기 위해 중요했던 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또는 필요한 게 뭔지 계속 스스로 질문하는 거였다.
 
'양화대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곡이 됐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노래를 지금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아직도 스스로에게 중요한 곡인가, 아니면 지나가버린 시절의 기록인가

- 후렴 가사는 제 묘비에도 적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말인 것 같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길 기도하는 노래가 저를 대변하는 히트곡 중 하나가 된 것이 크나큰 축복이라고 느낀다.
 
자이언티로서 살아간다는 건, 점점 ‘해답을 찾는 삶’인가, 아니면 ‘질문을 품고 사는 삶’인가
-좋은 질문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아무 질문이나 던지더라도 쓸만한 힌트가 돌아올 때도 있으니까. 질문은 웬만해선 오래 품고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음악을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사랑했던 적이 있나. 반대로 음악이 오히려 관계를 멀어지게 한 적은 없었나
-보다 나은 결과를 원하는 저를 포함한 동료 대다수의 바람으로 내린 판단이 관계를 소원하게 했던 경험들이 물론 있다. 하지만 음악은 제가 사랑하는 놀이이자 업이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 가깝게 해줄 때가 훨씬 많다.
 
세상은 ‘성공’의 기준을 자꾸 물어보지만, 자이언티에게 진짜 중요한 건 무엇인가
- ’지속가능한 상태인가?‘ 잘 됐어도 왜 잘 됐고, 그중 아쉬운 건 없는지. 잘 안 됐다면 왜 안 됐고, 뭘 더 신경쓰면 좋을지.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의 소통 비용을 줄이려 노력하며 최선의 사이클을 만들어가려는 마음, 어려운 일이지만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게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하고, 지속할 수만 있다면 성공의 ‘단위‘에 집착하지 않고 오랫동안 생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믿음과 방향성을 갖고 있다.
 
자이언티의 꿈이 궁금하다
-좋은 도구로서 쓰임 받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게 꿈이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나 사람, 환경은 언제 어디에나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오직 한 사람, 한 곳일지라도 나답게,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을 꼭 찾으시길 기도하겠다. 이미 찾으셨다면 더 소중히 다뤄줬으면 한다. 저 역시 이 말을 하며 다시 다짐한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

 
자이언티와 사진 김호이 기자
자이언티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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