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파운데이션 모델 시대, 산업이 다시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

주현우 딥파인 연구원
주현우 딥파인 연구원

파운데이션 모델(FM)은 인공지능의 완성이 아닌 산업 혁신의 새로운 출발점이다. 19~20세기 에너지 체계가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바뀌었을 때, 공장 조직 전체를 재설계한 것처럼 지금의 AI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보유'보다 '내재화'로 전환해 산업 전반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산업 AI 전환이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는 구조에 있다. 데이터, 모델, 인프라가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기업은 AI를 부서 단기 프로젝트로 접근한다. 더 큰 문제는 '국산 기술 보호'라는 명분 아래 글로벌 기술과 교류가 제약된다는 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AI 기술이 산업 가치사슬 전체로 확산하지 않는다.

진짜 혁신은 '글로벌 경쟁 속 성장'이라는 방향에서 시작된다. 미국과 중국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오픈소스를 산업 촉진 장치로 활용했다. 기업과 학계, 스타트업이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기술의 진보 속도, 산업 전체 효율이 비약적으로 향상했다.

국내 기업이 개방형 API 구조를 제공하고 파인튜닝을 위한 라이선스를 유연하게 설계한다면 산업 전체 적응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동시에 국산 클라우드와 글로벌 인프라를 병렬로 사용할 수 있는 'AI 인프라 중립성'이 제도로 보장돼야 한다. 종속되지 않는 상호운용성이 곧 산업 혁신의 기반이다.

국가 AI 전략은 범용과 특화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이 둘을 연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와 대형 연구기관이 공공 범용 플랫폼을 만들고, 민간이 각 산업 도메인에 특화된 모델을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범용 → 특화 적응 → 피드백 루프' 순환이 완성되면 한국은 AI 응용 생태계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다.

AI 생태계 또 다른 축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 구조다. 대기업은 자본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실험의 용기가 부족하다. 스타트업은 민첩하지만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기회가 적다.

대기업은 외주 중심 납품 구조에서 벗어나, 내부적으로 모델을 학습·배포·운영하며 AI 내재화를 경험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대기업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 자생적인 기술 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역할은 자율적 실험을 허용하는 유연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AI 전환의 지속가능성은 데이터, 인재, 투자가 얼마나 잘 순환하는지에 달려 있다. 데이터는 AI 시대 원유이자 학문이다. 산업별 문제를 기업이 정의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개 데이터셋을 구축해 공공재로서 데이터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인재는 기업에서 성장한다. 좋은 기업이 곧 최고의 학교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많을수록 인재는 몰리고 그 인재가 다시 산업 수준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을 만든다. 해외 인재 유입을 위해서는 비자 정책, 연구 자율성, 보상 체계 등 종합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투자는 데이터와 인재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다. 정부는 초기단계(데이터 구축, 인프라 연구 등)의 리스크를 흡수하고, 민간은 응용과 상용화 단계에서 주도권을 가지는 구조가 필요하다. 데이터 구축은 장기적인 산업 기반 형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

파운데이션 모델 이후 진짜 혁신은 구조에서 비롯된다. 기술·조직·데이터·사람을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이것이 산업 AI 전환의 본질이다. AI는 협력·실험 시스템을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더 열린 생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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