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5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김수정 작가에게 이 시간은 단지 연차로만 계산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품었던 순수한 꿈 하나, 만화가가 되겠다는 그 꿈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삶의 방향이 되었고, 결국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웃음과 공감, 그리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준 작품들로 이어졌다.
그 길은 마냥 평탄하지 않았다. 만화가로서 정체성에 흔들리던 시기, 창작의 이유를 잃어버릴 뻔한 순간들, 그리고 만화가로 먹고 살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던 불확실의 시절. 그 모든 순간을 지탱한 건 “6~7살에 가졌던 꿈을 놓는 게 더 힘들었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확신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김수정 작가 [사진= 김호이 기자]
어느덧 데뷔 50주년이 됐다. 처음 만화가가 됐을 때의 꿈을 얼마나 이뤘나. 그동안 무엇을 향해 달려왔고 지금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작가가 된 건 꿈을 이룬 것 같다. 제가 시골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꿈이 만화가였다.
만화가가 된 건 잘한 것 같다. 만화가로서 뭘 이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들이 봤을 때는 ‘둘리‘와 ‘날자 고도리‘ 등 여러 작품들을 그렸기 때문에 작가로서 나름 만족하지 않겠느냐 말씀하는 분들도 있다. 만족할 수도 있고 불만족일수도 있다. 작가의 길이라는 건 죽을 때까지 창작해야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동안 해왔던 것과 사랑받았던 것에 대해서 분에 넘치게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제가 능력이 될 때까지는 계속 작가의 길을 가야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만화를 시작하시던 50년 전, 지금의 이 순간을 어떻게 상상했나
- 50년 전에 50년 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창작의 세계에 몰입만 했다.
작가님의 책상 위엔 어떤 물건이 항상 놓여 있나요? 혹시 둘리와도 관련이 있는 물건들이 있나
- 제 책상에는 늘 필기구와 노트가 있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여졌다. 저는 컴퓨터는 배운 세대는 아니고 작가 생활을 하면서 필요에 의해서 느지막하게 배우면서 애로사항도 많았다. 곧 둘리 장편 책이 나오는데 디지털로 편집을 하고 있다. 이정도면 많이 발전한 게 아닐까 싶다(하하). 인디자인으로 작업을 하고 있고 클립스튜디오로 작업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작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는 언제였나
- 작가로만 볼 때 매번 다 중요하다. 작가로서 계속 창작하는 것에 있어서 쉴 틈 없이 살았다. 만화가로 출발을 해서 애니메이션을 했는데 애니메이션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적자다. 그것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게 어려웠는데 그 시기에 10년 동안 만화 작업을 중단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 몰두할 시간에 만화를 해야 되는데 라는 생각에 갈등의 시간이 있었다. 94년부터 10년 이상을 애니메이션에 몰두하느라 만화를 못 그렸다. 2009년에 TV 프로그램 ’NEW 둘리 시리즈‘를 끝내고 다시 만화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어린이 소설을 집필하고 손을 풀기 위해서 ’사망유희‘를 집필하다 보니까 작업이 가능해지더라. 그래서 둘리 장편을 그리게 된 거다.

김수정 작가의 책상 [사진= 김호이 기자]
둘리에게 나이를 설정한다면, 실제 몇 살 정도로 보나. 그리고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은 뭐라고 생각하나
- 둘리는 영원한 7살이다. 7살 때의 고민이라는 게 단순한 아이의 고민이 아니라 그 나이에서 굉장히 진지하고 태산 같은 걱정이다.

[사진= (주) 둘리나라 제공/ (왼쪽부터)둘리/도우너/또치/희동이/마이콜/고길동]
50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와의 순간은 언제였나
-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단순히 그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을 소통하는 거다. 작가로서의 상황과 달리 개인적으로 요동치고 방황하던 시기에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게 독자들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팬들이 김수정 작가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진= 김호이 기자]
50년 전과 지금, ‘만화를 그리는 이유’는 어떻게 달라졌나
-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모습, 삶의 모습 자체가 드라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사람의 이야기가 잘 짜여진 각본 같은 이야기더라. 스쳐지나 가는 상황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우리가 부딪히면서 일어나는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그려나가고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서 어디까지 할 수 있겠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인터뷰 장면 [사진= 김호이 기자]
만화 작업을 통해서 또래의 나이보다 젊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나
- 아동틱한 가족이야기를 쓰다보면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해야 되는데 그런 면에서 어려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다시 한 번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하신다면,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고 싶은가
- 그리고 싶은 이야기들은 굉장히 많다. 둘리를 다 마무리 하고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면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화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그 작업이 만만치 않다. 장편이라서 그것을 다 소화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빠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클립스튜디오 애니메이션 기능을 통해서 짧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볼까 라는 생각이 든다.

김수정 작가의 작품들 [사진= 김호이 기자]

김수정 작가의 50년간의 작품 표지들 [사진= 김호이 기자]
가장 힘들었던 시기, 만화를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있었다면 그때 어떤 마음으로 이겨냈나.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한 김수정 작가만의 방법이 궁금하다
- 작가로 데뷔를 해서 7~8년 정도 굉장히 힘들었다. 그 당시에는 만화를 그려서 먹고 사는 문제가 걱정돼서 이 직업을 계속 해도 되나 라는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세일즈를 비롯해서 다른 직업을 몇 개월 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6~7살 때 가졌던 만화가라는 꿈을 놓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는 것보다 놓는게 더 힘들더라(웃음). 이 직업이 내 천직인 것 같더라.
과거 심의에도 많이 걸리고 둘리가 비교육적이라는 이유로 부모 모니터링단에게도 여러번 불려갔다고 들었다. 부모이자 만화가 입장에서 자녀에게 만화를 보라고 했나. 보지 말라고 했나
- 못 보게 한 적은 없다. 항의를 받았던 이유가 둘리 캐릭터들이 어른들한테 반말을 쓰고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안다는 이유로 비교육적이라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였다. 아이는 아이답게 봐야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성인군자처럼 하도록 하는게 더욱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고 아이들이 갖고 있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통해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분위기가 그렇다면 만화에서는 그걸 풀어줘야되는 거다. 만화에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대리 체험도 해주고 판타지 속에 빠져들기도 하면서 꿈이 키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는 결코 잘못했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시간이 지나니까 부모님들도 이해를 하더라.

김수정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오늘날의 신인 작가들에게, 50년을 살아남은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것만큼 절망적인 건 없다. 그렇지만 불확실함 속에서 희망도 있다. 저 역시 작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함과 작가로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함이 컸다. 그것 때문에 방황하고 힘든 것이다. 스스로를 믿지 않으면 힘들다. 나를 믿다보면 문제에 답이 보인다. 나를 믿으면 신념이 생기고 덜 흔들린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꿋꿋이 걸어갈 수 있다.

김수정 작가와 [사진= 김호이 기자]

김수정 작가, 양지원(촬영)과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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