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되찾으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와 대중국 규제, 대미 투자 유치 정책이 의회의 감시 아래 놓이게 됐다. 특히 여야가 대중국 견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미·중 사이에 낀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DC)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AI 산업 전반에도 지각변동이 예고된다.
4일 미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중간선거 승리 후 트럼프 관세의 근거가 된 무역법을 무효화하는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한국과 일본이 수천억 달러 규모로 약속한 대미 투자금의 배분 과정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의 무게중심은 입법보다 감시로 옮겨간다. 관세와 수출통제는 대통령의 행정 권한으로 추진된다.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면 상·하원 각각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다. 이에 민주당은 청문회와 조사, 예산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중국 규제는 더 강하게 움직이는 분야다. 여야 모두 반도체와 AI를 국가안보 사안으로 보고 있어서다. 르네 벅 BCI글로벌 대표는 지난달 30일 기고문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가져가면 미·중 관계가 나빠지고 칩 수출통제가 더 조여질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쪽 압박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희토류 수출통제 확대 조치를 미·중 정상회담 이후 1년간 유예했고, 그 시한이 오는 10일 돌아온다. 미 의회가 대중 강경론으로 기울면 중국이 유예 연장 대신 통제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내 업계로서는 중국 공장은 키우지 못하고 소재 조달은 걱정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되는 셈이다.
압박은 AI 산업으로도 이어진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곳은 AI 데이터센터(AIDC)다. 아마존, 알파벳,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8000억 달러 규모 AIDC투자는 전기요금 부담이라는 정치 쟁점과 정면으로 맞붙는다. 민주당이 발의한 그리드 세이빙법(GRID Savings Act)은 대형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증설 비용을 전액 부담하도록 한다.
데이터센터는 전력 확보와 인허가가 건설 속도를 좌우하는 만큼 비용 규제는 곧 투자 일정 지연으로 이어진다. 뉴욕주는 지난 7월 전력 소비량 50메가와트(MW) 이상 데이터센터의 신규 허가를 최대 1년간 중단했다. 버지니아와 조지아 등 12개 주도 제한 법안을 논의해 왔고,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면서 내년 주 의회마다 비슷한 규제가 오를 전망이다.
반도체 수출도 민주당의 손으로 넘어간다. 상원은 첨단 AI 칩 수출을 의회가 심사하는 AI 감독법과 수출 칩에 위치 확인 장치를 달게 하는 칩 시큐리티법,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장비 판매를 막는 ‘매치법’을 국방수권법에 넣는 수정안을 추진해 왔다. 엔비디아가 물밑 협상을 통해 ‘게인 AI 법’을 무산시켰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상원도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허용한 엔비디아 H200의 중국 수출 허가도 청문회와 자료 요구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모델 개발이 늦춰지거나 데이터센터 건설이 미뤄지면 AI 가속기 주문이 줄고, 가속기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도 함께 줄게 된다. H200에도 HBM이 탑재돼 대중국 수출이 막히면 같은 경로로 물량이 줄어든다. 이는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출하물량과 직결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 의회 감시가 강해진다고 HBM 수요가 당장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데이터센터 인허가와 전력 비용 문제가 길어지면 빅테크의 증설 시점이 뒤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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