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평범한 일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인간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가. 한 가지 일을 평생 계속하면 마침내 어떤 경지에 이르는가. 타고난 재능이 위대함을 만드는가, 아니면 평범한 하루를 수만 번 반복하는 성실함이 위대함을 완성하는가. 2026년 10월 26일, 한국 바둑의 전설 이창호 9단이 세계 프로기사 최초로 통산 2000승을 달성했다. 열한 살에 프로기사가 된 소년이 쉰한 살에 이르기까지 40년 2개월 동안 흑과 백의 돌을 놓으며 쌓아 올린 금자탑이다. 11월 3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그는 2000승을 자신에게 주는 상이라고 표현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성기에는 승리의 부담 때문에 바둑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고 만족스럽다는 고백도 했다.
우리는 이 말에서 2000승이라는 숫자보다 더 위대한 것을 발견한다. 한 인간이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평생 계속한다는 것, 수많은 승리와 패배, 영광과 좌절, 환호와 침묵을 지나면서도 처음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한 수를 놓는다는 것의 의미다. 세상에는 한순간 눈부시게 빛나는 천재가 많지만, 40년 동안 자신의 재능을 성실함으로 증명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장 평범한 일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가장 정성스럽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이며, 어쩌면 신의 경지에 가까워지는 길인지도 모른다.
돌부처를 키운 당대 최고의 승부사 조훈현
그 길의 출발점에는 어린 이창호를 품어준 한 가정의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 1984년, 전주에서 올라온 아홉 살 소년 이창호는 당대 최고의 승부사 조훈현 9단의 내제자가 되어 서울 연희동 스승의 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조훈현은 바둑의 스승이었지만, 그의 아내 정미화 여사는 어린 제자에게 또 하나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당시 정 여사는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자녀들을 돌보면서도 낯선 서울에서 생활하는 소년의 먹고 자는 일까지 보살폈다. 훗날 이창호가 정 여사를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는 기록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스승의 가족과 제자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천재의 탄생을 다시 생각한다. 위대한 인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타고난 재능과 엄격한 훈련, 치열한 경쟁을 강조하지만, 그 재능이 자라날 수 있도록 밥을 지어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주며 어린 마음을 보듬어준 사람들의 사랑은 쉽게 잊는다.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바둑의 길을 가르쳤다면, 정미화 여사와 그 가족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스승의 가르침이 하늘의 굳센 기운이었다면, 사모님의 보살핌은 땅의 두터운 품이었다. 이창호의 2000승에는 바둑판 위에서 흘린 땀뿐 아니라 그를 키워준 가족과 스승,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사람들의 사랑도 함께 담겨 있다.
2000승을 더 빛나게 하는 800패
동양 고전 《주역》의 건괘에는 '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天行健 君子以自強不息)'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의 운행은 굳세고 쉼이 없으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힘쓰기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곤괘에는 '지세곤 군자이후덕재물(地勢坤 君子以厚德載物)'이라는 가르침이 이어진다. 땅의 형세는 넓고 두터우니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늘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힘이라면 땅은 모든 생명을 받아들이는 포용이다. 자강불식이 자신을 단련하는 정신이라면 후덕재물은 자신을 넘어 타인을 품는 정신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생성과 인간의 성숙을 함께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이창호의 2000승은 바로 이 두 정신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는 40년 넘게 바둑을 두면서 800번이 넘는 패배를 경험했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승부를 수없이 견뎌야 했다. 그러나 패배가 그의 바둑을 끝내지 못했고, 세월의 무게도 그가 다시 바둑판 앞에 앉는 일을 막지 못했다. 그는 기념식에서 꾸준히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고백했다. 잘될 때 계속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잘되지 않을 때에도 계속하는 것은 어렵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천재란 한 번의 번뜩임으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평생의 성실함으로 증명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창호의 위대함은 강인한 승부욕에만 있지 않다. 그는 오랫동안 세계 정상에 군림했지만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기보다 바둑 자체를 앞세웠고, 후배 신진서 9단에 대해서는 이미 자신을 한참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의 기록을 넘어서는 후배를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진정한 대가는 자신의 시대가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음 세대가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란다. 강함이 겸손을 만나면 품격이 되고, 자강불식이 후덕재물을 만나면 비로소 인간의 완성이 시작된다.
유교는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 덕목으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가르친다. 어질고 의로우며 예를 지키고 지혜롭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삶이다. 그러나 덕목을 아는 것과 덕목대로 사는 것은 다르며, 덕목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과 덕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 또한 다르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라고 했다. 일흔에 이르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젊어서는 규범을 배우고 중년에는 규범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마침내는 규범을 의식하지 않아도 삶 자체가 도리와 조화를 이루는 경지다.
비어 있음은 무능이 아니라 새로운 힘을 낳는 가능성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정신적 성숙을 생각해본다. 칠십의 종심소욕 불유구를 지나 팔십에는 본래의 참됨으로 돌아가는 귀진(歸眞), 구십에는 자아에 대한 집착마저 내려놓는 무아(無我), 그리고 마침내 하늘과 하나 되는 합천(合天)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팔십의 귀진과 구십의 무아, 합천은 공자가 직접 제시한 연령별 가르침이 아니라 공자의 칠십 이후를 도가와 불가의 사유까지 확장해 그려보는 나 자신의 철학적 해석이다. 인간의 성숙이 단순히 지식과 경험의 축적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을 비우며 우주의 근본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이창호는 아직 쉰한 살이지만 바둑과 함께한 40년의 세월 속에서 이미 그러한 정신적 자유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전성기에는 승리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바둑을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게 받아들인다. 승리를 위해 바둑을 두던 사람이 바둑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바둑을 두는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승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승부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기술의 완성보다 어려운 것이 마음의 완성이며, 진정한 자유는 욕망이 사라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끌려다니지 않는 데 있다.
노자는 《도덕경》 제5장에서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 사이가 마치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면서도 다함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욱 많은 것을 내놓는다는 뜻이다. 풀무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바람을 만들어낸다. 그 비어 있음은 무능이나 결핍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낳는 가능성이다.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마음을 비울 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배울 수 있다.
바둑과 골프 그리고 인간의 삶
바둑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수를 절대적으로 믿는 순간 상대의 묘수를 놓치기 쉽고,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면 방심하며, 졌다고 생각하면 조급해진다. 한 수에 집착하면 전체 판세를 잃는다. 이창호의 전성기 바둑을 상징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반집 승부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이기는 바둑, 당장의 이익보다 전체의 균형을 살피는 바둑, 화려한 공격보다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 바둑이다. 많이 차지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필요한 곳에 정확히 놓는 한 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의 바둑은 가르쳐준다.
우리는 바둑과 골프가 인간의 삶을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고 생각한다. 바둑판은 가로세로 열아홉 줄, 361개의 교차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흑과 백의 돌이 놓이면서 무수한 변화가 생겨난다. 골프장은 자연의 지형 위에 펼쳐진 또 하나의 인생이다. 산과 물이 있고 바람과 비가 있으며 평탄한 페어웨이와 깊은 벙커가 있다. 바둑에서는 내가 한 수를 놓으면 상대가 응수하고, 골프에서는 내가 공을 치면 바람과 지형과 중력이 그 결과에 관여한다. 어느 쪽도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인생 또한 그렇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만 세상은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만나기도 하며 예상하지 못한 실패를 겪기도 한다. 바둑에서 이미 놓은 돌을 되돌릴 수 없듯 골프에서 이미 친 공도 없던 일로 만들 수 없으며, 인생에서 지나간 하루 역시 다시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지나간 수를 후회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다음 수를 어떻게 둘 것인가를 생각하는 일이다. 바둑에서 욕심을 부리면 대마가 죽고, 골프에서 무리하게 거리를 내려고 하면 공이 숲으로 들어가듯 인생에서도 지나친 욕망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두려워하면 기회를 놓친다. 공격할 때 공격하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아야 하며, 한순간의 승리보다 전체의 균형을 살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바둑판은 하나의 작은 우주다. 별들이 중력의 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지구의 생명이 태양과 물과 공기, 수많은 생명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유지되듯 바둑판 위의 돌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 물론 바둑의 규칙과 우주의 물리법칙이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부분과 전체가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변화가 다른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깊은 철학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 점의 돌이 전체 판세를 바꾸듯 한 인간의 선택이 한 가정의 운명을 바꾸고, 한 기업의 결정이 산업의 흐름을 바꾸며, 한 나라의 선택이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AI 시대에 밥·일·꿈을 실현하려면
이창호에게 붙은 '돌부처'라는 별명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승리해도 크게 웃지 않고 패배해도 쉽게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지만, 나는 그의 침묵을 단순한 무표정으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침묵은 때로 가장 깊은 언어다. 자신의 업적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사람들과 달리 진정한 대가는 자신의 성취를 떠들썩하게 과시할 필요가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이 그를 대신해 말하기 때문이다. 스승 조훈현의 기록을 넘어선 이창호가 다시 자신을 넘어서는 신진서의 성취를 인정하는 모습은 인간의 위대함이 정상에 영원히 머무르는 데 있지 않고 다음 세대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지능 시대에 이창호의 2000승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인간이 오랫동안 정석이라고 믿었던 수들이 재검토되었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는 바둑 실력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바둑이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최선의 수를 탐구한다면 인간은 바둑을 통해 최선의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 스승에 대한 존경과 후배에 대한 사랑, 평생 한길을 걸어온 사람의 기억과 책임은 단순한 승률만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간의 세계다.
앞으로 에이전틱 AI가 인간의 지적 업무를 분담하고 피지컬 AI가 육체적 노동까지 대신하는 시대가 본격화할수록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며 어떤 가치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를 더욱 깊이 물어야 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뛰어난 계산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철학이다. 바둑의 기보에는 승패가 남지만 한 인간의 삶에는 그가 어떻게 승리하고 어떻게 패배했는지가 남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에서 밥과 일과 꿈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밥은 생존이고 일은 자기실현이며 꿈은 삶을 넘어서는 지향이다. 밥만 있으면 생존은 가능하지만 삶이 메마르기 쉽고, 일만 있으면 성취는 있을지 몰라도 자신을 소진할 수 있으며, 꿈만 있으면 아름다운 상상은 가능하지만 현실의 뿌리를 잃기 쉽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의 삶은 비로소 온전해진다.
이창호에게 바둑은 밥이었고 일이었으며 꿈이었다. 소년 시절에는 미래를 향한 꿈이었고 프로기사가 된 뒤에는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일이 되었으며, 세계 정상에 오른 뒤에는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는 무대가 되었다. 이제 바둑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하나의 일이 세월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로 깊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은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공한 뒤에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정상에서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평온을 찾는 사람도 있다. 이창호가 전성기보다 지금이 마음 편하다고 말한 것은 성공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확인되는 반면 행복은 자기 삶과의 화해 속에서 찾아온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노자가 말한 허이불굴과 동이유출의 정신
그런 의미에서 어린 이창호가 조훈현의 집에서 보낸 세월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전주에서 올라온 아홉 살 소년에게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거대한 꿈보다 낯선 밤을 견딜 수 있는 따뜻한 잠자리와 밥 한 끼가 먼저 필요했을 것이다.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이 소년의 재능을 단련했다면 사모님의 보살핌은 그 재능이 뿌리내릴 수 있는 흙과 물이 되어주었다. 훗날 세계 정상에 오른 제자가 스승의 기록을 넘어서는 것은 바둑의 역사이지만, 그 제자가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준 사람을 오래도록 작은 엄마로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역사다. 위대한 성취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있으며, 인간은 홀로 위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 안에서 자라나 마침내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한다.
이창호는 이제 2500승까지 욕심을 내볼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0승을 이룬 사람에게도 아직 500승의 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반드시 2500승을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내일도 바둑판 앞에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며, 새로운 한 수를 발견하고 후배와 대국하며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의 욕심이 정상에 오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계속하고 싶은 마음에 가까워 보인다. 비우면서도 고갈되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소진되지 않으며 늙어가면서도 새로워지는 삶, 그것이 노자가 말한 허이불굴과 동이유출의 정신을 인간의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한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신의 경지를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세계로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신의 경지란 반드시 인간이기를 그만두는 상태가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삶을 가장 충실하게 살아냄으로써 우주의 근본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상태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땅은 말없이 만물을 품으며 풀무는 비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바람을 만들어낸다. 인간도 자강불식으로 자신을 단련하고 후덕재물로 타인을 품으며 허이불굴로 마음을 비우고 동이유출로 새로운 생명력을 창조할 수 있다. 그렇게 인의예지신을 하루하루 실천하다 보면 언젠가는 덕을 의식하지 않아도 덕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경지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은 단번에 얻는 깨달음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내고 다시 하루를 살아내며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가운데 조금씩 다가가는 길이다. 이창호는 하늘을 향해 거창한 선언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위대함을 설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바둑판 앞에 앉아 한 수를 놓고 다음 수를 생각하며 다시 한 수를 놓았다. 그렇게 40년이 흘렀고 2000번의 승리가 쌓였다. 그 긴 세월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승리의 숫자보다 더 위대한 한 인간의 성실함이며, 어린 시절 자신을 품어준 사랑을 바탕으로 세상과 겨루고 마침내 세상을 품어가는 한 승부사의 삶이다.
하늘은 오늘도 움직이고 땅은 오늘도 만물을 품는다. 우주는 쉼 없이 운행하지만 조급하지 않고, 자연은 계절마다 새로운 생명을 낳지만 자신의 성취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창호의 바둑도 점차 그런 자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0승은 끝이 아니며 2500승도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니다. 한 인간이 평생 사랑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놀라운 축복이다.
승리의 기술이 아니라 이기는 법을 넘어 살아가는 법
가장 평범한 일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가장 성실하게 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며 인간이 신의 경지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이창호는 2000번을 이겼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승리의 기술이 아니라 이기는 법을 넘어 살아가는 법, 정상에 오르는 법을 넘어 한길을 끝까지 걷는 법이다.
바둑판의 흑백은 언젠가 거두어지고 승리와 패배의 기록도 세월 속에서 새로운 기록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평생 한길을 걸으며 보여준 성실함과 겸손,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은 오래도록 남는다. 어린 시절 스승의 집 이층에서 불을 켜고 잠들던 소년은 이제 세계 바둑사의 전설이 되었다. 그 소년을 품었던 한 가정의 따뜻한 사랑은 40년의 세월을 지나 2000승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 살아 있다.
하늘은 오늘도 움직이고, 땅은 오늘도 만물을 품으며, 이창호는 내일도 바둑판 앞에 앉아 새로운 한 수를 생각할 것이다. 그 평범한 한 수에 우주가 있고, 그 한 수를 평생 놓아가는 데 인간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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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 2026-11-04 20:50:21가을의 하느님이신 소호(少皥) 께서 다스리시는 절기입니다.유교 경전인 예기에서는 是月也 霜始降(이 달에 비로소 서리가 내리고)라 하여, 상강(霜降)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macmaca/2244507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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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 2026-11-04 20:49:44유교문화권의 24절기중 하나인 상강(霜降). 서리가 내리며 전국적으로 단풍놀이가 오랫동안 행해지며,낙엽의 시기입니다. 2026년 10월 23일(음력 9월 13일)부터 15일간은 상강(霜降)절기입니다. 이즈음 절기식으로는 추어탕, 국화전, 국화주등이 있습니다.중양절즈음의 국화철도 오래 갑니다.상강절기 15일동안은 최고 하느님이신 천(天, 인간을 낳으신 하느님이심.시경:天生蒸民,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최고 하느님)다음의 하위신으로, 하늘로 승천하시어 계절을 다시리시는 오제[五帝, 天(최고 하느님) 다음의 하위 하느님들]중의 한분 神이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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