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의 역사 강사 초청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일부 교원단체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도초중등역사교육연구회가 역사교육을 정치적 공방의 대상으로 삼는 일을 자제하고, 교사의 전문성과 교육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초중등역사교육연구회는 지난 23일 '역사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법은 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영역"이라며 "역사교육을 정쟁의 소재로 삼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국회와 정치권에 촉구했다.
이번 성명은 경기도교육청이 오는 28일 개최하는 '경기교육 대전환 명사 초청 강연회'에 역사 유튜버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을 강사로 초청한 것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나왔다.
앞서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은 황 소장의 과거 발언과 역사관 등을 문제 삼으며 강연 취소를 요구했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대한민국교원조합 역시 강연을 취소하거나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도교육청은 이번 강연이 특정 역사관을 강요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살펴보고 역사교육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연구회는 "교사의 수업에 대한 부당한 간섭을 삼가 주십시오"라고 강조하면서 역사교육에 대한 문제 제기와 검증이 필요할 경우에도 정치적 압박이나 일방적인 비난보다는 정해진 절차와 교육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9월 1일부터 11일까지 초등학교 5·6학년 담임교사 785명과 중등 역사교사 877명 등 모두 166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역사교육 실태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조사에서 학생들의 역사 문해력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중등 역사교사 94.5%, 초등학교 교사 76.0%로 나타났으며, 이전보다 역사 수업이 어려워졌다는 응답 역시 중등 71.8%, 초등 55.0%에 달했다.
또 역사 부정·왜곡 콘텐츠로 인해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은 중등 61.1%, 초등 50.5%로 집계돼,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양한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도록 돕는 교육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현장의 인식을 보여줬다.
초·중등교사들은 역사교육이 지향해야 할 가치로 '민주시민·평화·인권·공존'을 첫째로, '비판적 사고·역사적 탐구'를 둘째로 꼽았다. 연구회는 이를 토대로 역사교육이 특정한 해석이나 정답을 암기시키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사료를 읽고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며 서로 다른 주장의 근거를 비교하도록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회는 이러한 교육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제안했다. 이 합의는 교육 과정에서 특정 견해를 학생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원칙,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사회적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핵심으로 한다.
연구회는 이러한 원칙이 역사교육에 적용된다면 교사는 학생들에게 하나의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다양한 사료와 해석을 제공하고, 학생들은 역사적 쟁점에 대해 근거를 바탕으로 토론하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아울러 교육 당국에는 역사 문해력 향상을 위한 수업 자료 개발과 교사 연수 확대, 박물관과 유적지 등을 활용한 체험학습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며, 중등 역사교사 정원 확충과 수업 시수 조정 등 학교 현장의 교육 여건 개선도 함께 요구했다.
국회와 정치권을 향해서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관련 논의를 진행할 때 역사학계와 교육 전문가, 현장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정치적 공방을 확대하기보다 입법과 예산 지원을 통해 역사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촉구했다.
연구회는 앞으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사료 읽기 자료를 비롯해 지역사와 연계한 토론 수업 모델, 박물관·유적지 체험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학교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끝으로 연구회는 "교실이 특정 입장을 관철하는 장이 될 때, 가장 먼저 잃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학생들의 권리"라며 "우리는 이번 설문에 담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온전히 반영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성명은 황현필 소장 초청 강연의 적절성을 둘러싼 찬반 논쟁과 별개로, 역사교육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와 역사적 판단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현장 교사들의 요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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