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 지피지기] 패권國 리셋 게임…한국패싱 경고음

  • 2026 11월 선전(深圳) 미·중·러 수뇌 회동…제2의 얄타 회담?

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김정은이 신압록강 대교를 넘어 단둥(丹東)을 찾아간 날은 10월 24일이었다. 김정은은 서울에 나돌던 사망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러시아 최고급 자동차 '아우루스'를 타고 단둥에 나타났다. 김정은은 압록강변에 있는 ‘항미원조(抗美援朝) 기념관에 도착해서 왕후닝(王滬寧)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의 영접을 받았다. 김정은은 압록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는 항미원조 기념탑 앞에 세워진 화환에 걸린 빨간 리본을 두 손으로 쓰다듬은 뒤 고개 숙이고 묵념했다. 리본에는 “인민지원군 렬사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중국인민지원군이 배낭을 메고 압록강 부교를 넘어 한반도로 들어온 것은 1950년 10월 19일 해질 무렵이었다. 중국군은 평안북도 온정리 부근에 매복해있다가 10월 25일 오전 국군 제6사단 제2연대 제3대대를 공격한 것이 첫 전투였다. 국군 대대는 부대를 해체해야 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승리를 거둔 중국공산당은 이날을 참전 기념일로 지정했다. 김정은은 바로 76년 뒤 이날 하루 전에 단둥을 방문해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구해준 중국공산당에 감사를 표했다. “내가 오늘 단둥에 온 것은 역사의 고비에서 생명과 선혈을 바쳐 조선을 지원해준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들에게 충심의 감사와 영원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단둥의 항미원조 기념탑은 김정은의 북한이 중국에 진 빚의 증거물이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압록강에 도착해서 승전을 선포하려던 국군과 유엔군은 후퇴를 해야 했고, 전쟁은 2년여가 더 흐른 1953년 7월 27일 휴전되고 한반도는 분단됐다.

휴전 후 73년이 흐른 2026년 가을, 미 브루킹스 연구소 손턴 차이나 센터 소장 라이언 하스(Haas)는 스탠퍼드 대학이 발행하는 계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 가을호에 “중국의 강대국 비전(China’s Great Power Vision into Focus)”이라는 기고를 했다. “역사는 2020년대를 국제정치 질서를 업데이트하려는 중국의 비전이 제시된 시기로 기록할 것이다…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정치가 새로운 질서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질서’란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 힘을 떼어내 보다 평등한 국가 간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주권국가들이 자신들의 국민을 뜻대로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했다. 하스는 그러면서 “베이징은 미국의 힘이 이제는 기울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위험한 국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국력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중국 지도층의 판단은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상층부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시대착오적 교육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지도층이 받는 교육 내용 가운데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과 역사적 유물론 때문에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스는 분석했다. 마르크스의 유물 변증법에 관한 교육을 받은 중국공산당 지도층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멸적(自滅的) 요소를 갖고 있다”는 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 하스의 설명이다. 중국공산당 지도층의 관념대로, 실제로 미국의 힘이 줄어들고 있는지는 아직 논쟁거리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하스의 생각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대외 원조액이 미국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엄청난 차이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대해 확보하려는 영향력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스는 평가했다.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는 2011년부터 3년간 미 특수전사령부(SOCOM) 사령관으로 빈 라덴 제거 작전을 지휘했던 예비역 4성 장군 윌리엄 맥레이븐이 기고한 '미국의 힘의 한계(The Limits of American Power)'를 게재했다. 맥레이븐은 미군 내부의 시각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기울어지고 있는지를 진단했다.

맥레이븐은 트럼프가 벌인 이란 전쟁은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세우겠다는 아무런 시도도 없이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 합동작전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은 전쟁 초기에 이란 초등학교에 폭탄을 퍼부어 120명의 학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고, 이 실수로 미국은 마땅히 확보해야 할 높은 도덕적 기준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동맹국에게도 사전에 이란을 폭격하겠다는 계획을 알려주지 않았고, 이란을 둘러싼 이웃 아랍국가들에게도 통보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지역적 신뢰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적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중에 호르무즈 해협을 여는 작전에 도와달라고 동맹국들에게 요청했다가 국제적으로 찬바람(cold shoulder)만 맞았다고 맥레이븐은 쓴소리를 했다.

트럼프가 벌인 이란 전쟁은 거기에다가 더해 “전쟁의 분명한 목표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에는 “이란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가 목표”라고 했다가, “이란의 핵무기에 대한 사전공격”이라고 목표를 바꿨다. 그랬다가 이란군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항로를 다시 여는 것이 군사작전과 외교의 최우선 목표”라고 뒤집었다. 나중에는 전 세계를 향해 “미국은 이란의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을 여는 작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까지 했다.

맥레이븐은 미국이 이란 전쟁 이전에 벌인 전쟁들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는 승리했고, 한국 전쟁에서는 북한군과 중국군을 한반도에 묶어두어 결과적으로 비겼고, 베트남 전쟁에서는 어떻게든 이기려고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1981년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 전쟁 이후 처음으로 8년 동안 평시 군 장비 강화작전에 성공해서 육해공군에 새로운 무기를 공급한 결과, 1990년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원인 가운데 중요한 요소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중국 주재 CIA 국장과 유엔 대사 등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 딕 체니 국방장관, 콜린 파월 합참의장 등 전쟁을 이해하는 인재들을 기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미국은 1991년 1월에 시작된 ‘사막의 폭풍(Dessert Storm)’ 작전 때는 43일의 전투 끝에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데 성공해서 이라크군을 쿠웨이트 바깥으로 퇴각시키는 승리도 거두었다.

그러나 사막의 폭풍 작전의 성공에 취해서 미국은 “세계를 우리 마음대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됐다고 맥레이븐은 지적했다. “군사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미국의 힘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 실패해서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함 있는 정보시스템과 국제사회의 지지가 낮은 가운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등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크림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루스벨트 미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 소련 최고지도자 스탈린이 마주 앉았다. 세 사람은 2차 대전 후 유럽의 국경과 세력권을 결정했고, 그 자리에서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도 오갔다. 정작 운명이 걸린 당사자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얄타 회담의 결과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의 영향권으로 양분되어 분단을 맞았다는 평가도 있다. 다음 달 18~19일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제2의 얄타'라는 말이 다시 나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선전에서의 3자 회담을 제안했다고 보도했고, 크렘린은 이를 사실상 확인했다. 루비오 국무장관도 논의가 오가고 있다고 인정했다. 중국 외교부는 "제공할 정보가 없다"며 말을 아끼지만, 시진핑 주석이 올해 5월 베이징에서 트럼프와 푸틴을 연달아 만났던 사실을 떠올리면 트럼프, 시진핑, 푸틴 3자회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회담이 열린다면 의제의 중심은 우크라이나 종전(終戰)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강대국들이 한 나라의 운명을 그 나라 없이 정하는 것을 얄타 회담에 비유하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크라이나와 함께 한반도의 운명도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정해질지도 알 수 없는 국면이다. 지난 9월 24일의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와 시진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된 데 이어 중국 선전(深圳)에서 또 어떤 논의가 진행될지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내부의 적들과 싸우는 데는 귀신들이지만, 외부의 적과 싸우는 데는 등신들”이라는 요즘 시정(市井)의 비아냥을 귀 흘려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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