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영 칼럼]  'OCIO 제도'의 새로운 도약, 퇴직연금서 길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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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얼마 전 OCIO(Outsourced Chief Investment Officer)라 불리는 외부위탁 최고투자책임자 제도와 관련된 운용업계·학계 인사들과 모임을 했다. 필자는 이 제도 도입 초기부터 인연을 맺어왔기에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자리였다. OCIO는 자산 일부를 외부 운용사에 맡기는 전통적인 위탁운용과 다르다. 자산을 맡기는 위탁기관이 장기 투자목표와 위험허용도를 정하면 OCIO 기관이 이에 맞춰 자산 배분, 운용사 선정, 포트폴리오 관리와 위험관리 등 자산운용 전반을 수행한다. 연기금이나 재단이 모두 전문 운용인력을 갖추고 독자적으로 자산을 운용하기는 어렵다. 특히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기관은 전략적 자산 배분이나 위험관리 같은 복잡한 투자 의사결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OCIO다. OCIO가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운용의 연속성과 책임성을 높여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연기금과 퇴직연금 같은 장기 투자자에게 적합하다.
 
우리나라 OCIO의 출발점은 2001년 도입된 연기금투자풀이다. 개별 공공기금의 여유자금을 모아 전문 운용기관에 맡김으로써 기금 운용의 효율성과 안정성, 수익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현재 규모는 86조원을 넘는다. 당시에는 OCIO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여러 기금의 자산을 통합 관리하고 전문 운용기관에 맡긴다는 점에서 국내 OCIO의 효시라 할 수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주택도시기금, 고용보험기금, 산재보험기금 등 개별 공적기금으로 확대되었고, 최근에는 공기업·공공기관의 여유자금과 일부 민간기업의 퇴직연금으로까지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지난 20여 년간 OCIO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 발전은 아직 미흡하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26년 분석에 따르면 국내 OCIO 시장 규모는 2025년 하반기 기준 약 156조원으로 2022년 약 132조원에서 연평균 5.7% 성장했다. 곧 출범할 미래대응기금 역시 OCIO 방식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높고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적기금 비중은 84.9%에서 66.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시장의 중심이고, 공공기관 비중은 5.1%에서 20.6%로, 퇴직연금은 1.5%에서 5.1%로 늘었다. 그러나 전체 수탁액 중 절반가량이 연기금투자풀에 집중되어 있고, 상위 두 OCIO 기관의 점유율이 77.4%에 이르는 등 경쟁은 제한적이다.
 
공적기금 중심인 현 시장구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위탁기관이 세부 운용에까지 관여해 투자 의사결정 권한이 충분히 위임되지 않고, OCIO 기관은 제한된 범위에서 운용 집행만 맡는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OCIO가 통합적인 투자책임자 역할을 할 수 없고, 전문성과 책임을 함께 위임한다는 제도 본래의 취지도 약해진다. 또한 일부 계약은 OCIO 기관에 전담 운용조직까지 요구하면서도 보수는 이에 걸맞지 않게 현저히 낮다. 이와 같이 OCIO 기관에 부과되는 과도한 부담은 이는 전문인력 확보와 장기적 역량 투자를 어렵게 해 제도의 질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OCIO가 기관투자자의 주요 자산 운용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erulli Associates에 따르면 미국 OCIO 시장은 2024년 3조3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29년에는 약 5조60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대학기금, 공익재단, 기업연금 등이 주요 고객이며, 내부 운용 역량이 부족한 중소형 기관뿐 아니라 대형 기관의 수요도 늘고 있다. OCIO 기관이 위탁기관의 투자 목표에 맞춰 자산 배분과 위험관리를 수행하고 다양한 운용사와 대체투자 전략을 활용하게 해 투자 의사결정의 전문성과 실행 속도를 높이는 한편 위탁기관은 장기 투자정책 수립과 OCIO 기관 감독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유사한 제도가 Fiduciary Management라는 이름으로, 특히 확정급여형 기업연금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영국은 OCIO 기관이 투자자문과 운용을 동시에 수행할 때 생기는 이해상충을 관리하고, 위탁기관이 OCIO 기관을 실질적으로 감독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 왔다. 퇴직연금에 OCIO가 폭넓게 활용될 우리에게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이러한 해외 경험은 국내 OCIO 시장의 다음 성장동력이 퇴직연금에 있음을 시사한다. 퇴직연금은 그동안 근로자의 노후소득을 뒷받침할 만한 수익률을 내지 못했다. 원리금보장상품 위주의 보수적 운용, 그리고 전문적인 장기 자산 배분보다 개별 금융상품 선택에 의존하는 구조 때문이다. 퇴직연금이 본연의 역할을 하려면 운용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하며 그 수단으로 OCIO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에서도 OCIO는 활용 가능하며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OCIO가 퇴직연금 성과를 높이려면 관련 규제 개선과 함께 OCIO 기관의 역량도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확정급여형(DB)에서는 우선 운용수단으로 투자일임이 허용되지 않아 사모펀드나 투자자문 형태에 의존해야 하는 제약부터 해소해야 한다. DB형에서 기업의 퇴직급여채무는 임금상승률과 근로자의 퇴직 시점 등에 따라 변동하므로 OCIO 기관은 연금부채의 특성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자산 배분과 위험관리 전략을 수행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는 가입자의 장기 목표에 맞춘 전문 운용체계가 필요하다. 근로자 개개인에게 복잡한 투자 결정을 맡기기보다 생애주기, 위험성향, 은퇴 시점 등을 고려한 포트폴리오를 OCIO 기관이 제공하고 운용해야 한다. 미국 401(k)의 일임계좌처럼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디폴트옵션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무엇보다 여러 기업의 퇴직연금 자산을 공동 운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전문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기금의 수탁법인이 투자정책과 위험관리를 책임지고 OCIO 기관을 경쟁적으로 선정·감독하는 지배구조는 기금형 퇴직연금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과 영국의 마스터 트러스트처럼 OCIO를 퇴직연금 운용에 성공적으로 접목한 사례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OCIO 제도의 발전이 자산운용업계의 새 시장을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문성이 부족한 기관에도 우수한 운용 서비스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국민의 노후자산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공적기금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OCIO가 이제 퇴직연금으로 영역을 넓힐 때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위탁운용 확대가 아니라 투자 권한과 책임, 경쟁과 감독이 조화를 이루는 제도적 혁신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전 기업지배구조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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