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8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2026년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조정하기로 의결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14%대였던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20% 이상으로 대폭 상향한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밝힌 이유는 상법 개정 등에 따른 국내 주식시장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과 국내주식 실제 비중의 확대를 고려해 기금의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는 한편, 리밸런싱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배경도 있었을 것이다. 국민연금 공식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주식 평가액은 543.2조원, 전체 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1%였다. 종전 목표비중 14.9%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기존 목표비중 안팎으로 되돌리려면 단순 계산으로 200조원이 넘는 국내주식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가가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이처럼 막대한 물량을 매도한다면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투자자들의 강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몇 달간 국내 주식시장의 급격한 등락은 국민연금 기금운용, 특히 자산배분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투자 성과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가운데 하나가 전략적 자산배분이라는 것은 투자의 기본 원칙이다. 전략적 자산배분이 결정되면 시장가격 상승으로 목표비중을 초과한 자산은 일부 매도하고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아진 자산은 매입하는 리밸런싱을 통해 목표비중을 유지한다. 물론 경제·금융시장 환경과 기금의 장기 운용목표가 구조적으로 변화하면 전략적 자산배분 자체도 주기적으로 수정한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면 국민연금의 규모는 빠르게 성장했다. 2021년 말 948.7조원이던 기금은 금융시장 급락의 영향으로 2022년 890.5조원으로 감소했다가 2023년 1035.8조원을 기록하며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이후 2024년 1212.9조원, 2025년에는 1458조원으로 증가했다. 수익률 측면에서도 2022년 -8.22%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최근 수년간 높은 수익률을 거두었으며, 특히 2025년에는 18.82%를 기록했다. 이 기간 국내주식 비중은 2021년 17.5%에서 점차 낮아져 2024년 11.5%에 이른 반면 해외주식 비중은 같은 기간 27.0%에서 35.5%로 꾸준히 높아졌다. 국내시장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분산투자를 확대해 온 전략적 자산배분이 양호한 장기 운용성과를 뒷받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제기되는 우려는 이러한 기본적인 자산배분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느냐는 것이다. 국내주식 가격이 급격히 상승해 실제 보유비중이 목표를 크게 넘어섰을 때 리밸런싱을 통해 비중을 낮추는 대신 전략적 자산배분의 목표비중 자체를 14.9%에서 20.8%로 높였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물론 국민연금과 같은 초대형 기금이 기존 목표를 맞추기 위해 수십조원의 주식을 단기간에 매도한다면 시장가격을 떨어뜨리고 결국 자신의 수익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시장 충격을 고려해 리밸런싱의 속도와 방식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장기 목표비중을 유지하는 것과 자산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전략적 자산배분의 목표비중 자체를 변경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결국 5월 기금위원회 결정에 대한 평가는 이후 주가가 올랐느냐 떨어졌느냐라는 사후적 결과만으로 내려서는 안 된다. 핵심은 국내주식의 장기 기대수익률과 위험, 다른 자산과의 상관관계 등 전략적 자산배분의 기초 여건에 과연 14.9%를 20.8%로 변경할 정도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에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자산가격 변화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 일관된 자산배분 원칙이다.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시장과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울수록 이러한 원칙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2000조원에 육박하는 초대형 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의 운용체계 역시 이제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주 이전에 따른 인력 확보의 어려움, 기금 규모에 비해 부족한 운용인력 등 여러 제약에 직면해 있다. 기금 규모가 계속 커지고 해외투자가 절반을 넘으며 대체투자의 절대금액과 비중까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번과 같은 자산배분과 리밸런싱의 문제가 앞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운용체계 개편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는 기금운용본부의 독립기관화, 자산운용 전문성을 갖춘 기금운용위원회가 운용본부를 실질적으로 견제·감독하고 전략적 조언을 제공하는 지배구조로의 전환, 우수한 국내외 운용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서울사무소 설치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 우려되는 것은 국민연금공단에 퇴직연금 사업자 지위를 부여하려는 방안이다. 400조원에 이르는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추진하면서 국민연금공단을 운용주체 가운데 하나로 참여시키자는 것이다. 찬성하는 측에서는 국민연금이 축적한 자산배분과 운용 역량을 퇴직연금에 접목하면 수익률을 높이고 수수료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운용기관의 문제로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적립금의 대부분이 원리금보장상품에 머물러 있고, 이른바 디폴트옵션인 사전지정운용제도 역시 위험자산을 통한 장기투자를 충분히 유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가입자의 권리, 부채구조, 투자기간과 유동성 수요 등 제도적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퇴직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국민연금에 운용을 맡기는 방식은 문제의 해법이 되기 어렵다. 오히려 국민연금의 조직과 운용역량에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민간 금융회사와 자본시장이 축적해 온 퇴직연금 운용역량을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참여는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이 2000조원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에 더 많은 정책적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자산을 가장 잘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지배구조를 먼저 갖추는 일이다. 자산배분은 시장 상황이나 정책적 필요에 따라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기금운용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연금에 새로운 역할을 하나씩 더 얹기 전에 현재의 거대한 기금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체제부터 만드는 것, 그것이 국민연금 2000조원 시대에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전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 전 기업지배구조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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