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턴' 한소희 "최민식, 넘을 수 없는 큰 산…자괴감도 느꼈죠"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할리우드 영화 '인턴'의 '줄스'(앤 해서웨이)가 한국의 치열한 스타트업 생태계로 자리를 옮겼다. 론칭 3년 만에 패션 브랜드 '우투투'를 업계 다크호스로 키워낸 CEO 선우(한소희 분)와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 분)의 세대 초월 오피스 라이프를 그린 영화 '인턴'을 통해서다.

극 중 한소희는 능력은 최상위권이지만 삶의 무게 앞에서는 한없이 흔들리는 3년 차 워커홀릭 대표의 얼굴을 현실감 있게 짚어냈다. 빈틈없이 완벽해 보이려는 겉모습 이면에 숨겨진 청춘의 고단함, 기호가 무심히 건넨 '오란다' 한 조각에 곤두선 마음을 푸는 한국적인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포착했다. 원작의 그림자를 걷어낸 한소희는 팍팍한 현실 속 위로가 필요한 우리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자신만의 톤으로 완성해 냈다.

"원작을 너무 재미있게 봤고요. 민식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됐다는 얘기를 듣고 감독님과 미팅을 했어요.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가 평생 살면서 언제 민식 선배님과 영화에서 단둘이 호흡을 맞출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또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저와 결이 잘 맞는다고 느꼈고, 디렉팅도 섬세하게 해주실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원작의 줄스가 한국의 선우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한소희가 주목한 것은 말투와 관계의 미묘한 차이였다. 특히 존댓말과 반말이 공존하는 한국의 직장 문화 안에서 젊은 CEO의 권위와 서툰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려 했다.

"우리나라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있잖아요. 똑같은 회사 구조 안에서도 그걸 어떻게 섞어야 CEO처럼 보이면서도 서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했어요. 3년 만에 회사를 일군 사람이 직원들과 어떻게 으쌰으쌰해 왔을지도 고민했고요. 오래 함께한 원년 멤버를 대할 때와 직원들을 대할 때의 말투와 태도도 다르게 가져가려고 했어요. 직원들을 혼낼 때도 '왜 이렇게 했어요?'보다 '왜 이렇게 했어?'가 더 무섭게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그런 차이를 많이 생각했어요."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완벽해 보이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선우에게서는 배우 한소희 자신의 모습도 발견했다.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성향에서 두 사람은 맞닿아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부분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선우도 기호가 나타나기 전까지 혼자 고군분투하면서 회사를 이끌어왔잖아요. 저도 남에게 조언을 구하기보다 혼자 해결하려는 성향이 있어요.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기호 같은 어른이 나한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우를 짓누르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역시 낯선 감정은 아니었다. 배우 한소희 또한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만큼, 선우가 느끼는 불안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과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불안함이 뒤엉키는 건 배우 한소희로서도 매일 하는 생각이에요. 잘하고 있나, 잘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현재와 미래, 과거를 다 걱정하고 있거든요. 선우도 그런 캐릭터라 그 부분에서는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감정은 선우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인 것 같아요."

최민식과의 첫 호흡을 앞두고는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있었다. 촬영 전 여러 차례 리딩을 거치며 두 사람뿐 아니라 우투투 직원들을 연기한 배우들과도 자연스럽게 관계를 쌓아갔다.

"저도 선배님이 저를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 그룹 리딩을 많이 했고, 저와 선배님도 많이 맞춰봤어요. 직원 역할 배우들과도 리딩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던 것 같아요."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현장에서 마주한 최민식은 연기에 대한 태도 자체로 후배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배우였다. 자신의 촬영이 없는 순간에도 현장을 지키는 모습은 한소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선배님은 현장에 늘 두 시간씩 일찍 오세요. 가장 먼저 출근하고 늦게까지 계시는 선배님 중 한 분이에요. 자기 신이 아닐 때도 모니터 뒤에 계시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에 정말 진심이구나 싶었어요. 그렇다고 현장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것도 아니고, 현장에 자연스럽게 동화돼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들이 자기 고유의 성격을 작품에 녹일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작업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끝낸 뒤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한소희에게 더욱 큰 존재가 됐다. 가까이서 그의 연기와 연륜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촬영이 다 끝났을 때 느낀 건 최민식 선배님은 저한테 정말 넘을 수 없는 큰 산 같은 존재라는 거였어요. 촬영하면서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았어요. 연륜과 경력에서 나오는 걸 제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한편으로는 죄송한 마음도 있었고요. 기회가 된다면 선배님과 또 다른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극 중 파티 장면에서는 예상 밖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선우가 에스파의 '위플래쉬'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계획된 안무가 아니라 한소희의 즉흥에서 시작됐다.

"그때 팬미팅을 한창 할 때였는데 춤은 춰야 하고 제가 아는 춤이 '위플래쉬'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즉흥으로 춘 거예요. 백루다 역의 (한)지은 언니가 받아서 똑같이 췄고요. 원래 완성본 전 음악은 '위플래쉬'가 아니었는데 나중에 그 노래를 사용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춤과 박자가 잘 맞아서 차라리 그 곡을 넣은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어요."

한국판 '인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선우의 마지막 선택이다. 한소희는 그 결말이 자신의 삶과 선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선우라는 인물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고 받아들였다.

"백 번 양보해서 바람난 남편을 용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선우는 자기 주체가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이고, 자기 꿈이나 지나간 인연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잖아요. 민욱과 헤어질 때도 '너 왜 그랬어'라고 하기보다 나는 너를 사랑한 것도 후회하지 않고 헤어지는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선우가 성숙해진 모습을 더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원작과 다른 '한국판'을 만들겠다는 의식으로 연기한 것은 아니었다. 원작과 달라진 설정은 있었지만 한소희가 집중한 것은 한국적인 차별화 자체가 아니라 대본 속 선우와 기호의 상황이었다.

"'원작과 다르게 한국적으로 풀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촬영하지는 않았어요. 각색된 부분에서 이혼을 하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을 잘라내는 변화는 있지만 '한국 정서는 이러니까'라고 만든 건 아니에요. 그냥 선우와 기호의 상황에 맞게 풀어낸 거예요. 원작과 다른 느낌을 일부러 주려고 했던 건 아니고 대본에 충실했어요."

한소희에게 따라붙는 '불안정함'이라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돌아봤다. 작품마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이 그런 인상을 만들었을 수 있지만, 이제는 그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저는 작품을 준비할 때 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완벽하지 않고 아직 미완성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자꾸 저를 몰아붙이는 성향이 있어요. 그런 부분이 불안정한 느낌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꿨어요. 언제까지 그런 성향만 가지고 연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와 캐릭터의 교집합이 많으면 좋겠지만 이제는 조금 더 안정된 상태에서 작품을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봐주시는 건 고맙지만 저는 거기서 더 발전하고 싶어요."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영화 '인턴' 주연 배우 한소희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최민식과 한소희가 중심에 서 있지만 한소희는 '인턴'을 두 배우만의 영화로 규정하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선우와 기호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이 함께 움직였기에 지금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었다고 봤다.

"이번에 찍으면서 느낀 건 이제는 주인공이라는 게 없어진 시대 같다는 거예요. 누구의 독무가 아니라 오케스트라라고 생각해요. 선우와 기호만 있었다면 '인턴'이라는 영화가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다른 모든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둘도 있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투톱물이라고 하면 조금 민망하기도 해요.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조화롭게 움직여야 보인다고 생각해요."

추석 극장가에서 여러 작품과 관객의 선택을 두고 만나게 됐지만, 한소희는 경쟁보다 모두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인턴'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매력 하나는 자신 있게 꼽았다.

"최민식 선배님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본 적 없었던, 가장 따뜻한 얼굴의 최민식 선배님을 보실 수 있어요. 사실 저는 그냥 다 잘됐으면 좋겠어요. 경쟁이라는 느낌보다는요. 그리고 저 춤이랑 노래 부르는 것도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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