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오는 14일부터 오후 8시까지 주식을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는 '애프터마켓'을 선보인다. 기존 시간외 단일가 매매를 접속매매 방식으로 바꾸고 거래시간을 연장하면서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가 선점한 '퇴근 후 주식거래' 시장에 본격적으로 합류한다.
11일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거래소는 이달 14일부터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대상으로 애프터마켓을 시행한다. 기존에는 정규장 종료 후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10분 단위 단일가 매매 방식으로 거래할 수 있었지만, 애프터마켓에서는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매수·매도 호가가 맞으면 실시간으로 체결되는 접속매매 방식으로 전환된다.
참여 예정 증권사는 38개사로 시장점유율 기준 95.2%에 이른다. 투자자가 특정 시장을 별도로 지정하지 않을 경우 증권사는 최선집행기준에 따라 체결 가능성과 총비용 등을 고려해 투자자에게 유리한 시장으로 해당 주문을 제출하게 된다.
개인투자자들이 체감할 가장 큰 변화는 거래 가능한 종목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NXT 애프터마켓은 일부 종목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반면 거래소 애프터마켓에서는 당일 정규장 미거래 종목과 투자경고·관리종목, 초저유동종목 등 시장 관리가 필요한 일부 종목을 제외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주식 대부분을 거래할 수 있다.
다만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은 거래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초 상장지수상품(ETP)의 애프터마켓 거래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가격 왜곡과 변동성 확대 등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이번에는 제외됐다. 거래소는 향후 시장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인하고 안정적인 관리체계가 마련되면 거래 허용 시기를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규장 마감 후 실시간 순자산가치(iNAV) 산출이 어렵고 유동성공급자(LP)의 호가 제시에도 한계가 있어 가격 왜곡 우려가 있다"며 "NXT와의 ETF 야간 거래 경쟁은 인프라 정비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마련됐다. 애프터마켓에서는 시장가 주문은 불가능하고 지정가 등 가격이 고정되는 호가 유형만 허용된다. 가격제한폭은 정규장과 동일하게 전일 종가 대비 ±30%가 적용되며 변동성완화장치(VI)도 가동된다.
해외 주요 증시에서도 거래시간 확대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나스닥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인 정규장 전후로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을 운영한다. 프리마켓은 오전 4시부터, 애프터마켓은 오후 8시까지로 하루 16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나스닥 등 미국 주요 거래소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하루 23시간 거래 체제도 추진하고 있다.
독일거래소의 전자거래 플랫폼 Xetra도 지난해 12월 개인투자자 대상 거래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확대했다. 특히 연장 거래시간에도 주식뿐 아니라 ETF·ETC·ETN을 거래할 수 있어 이번 애프터마켓에서 ETF와 ETN을 제외한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거래소는 이번 애프터마켓 운영을 시작으로 향후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린 마틴 뉴욕증권거래소(NYSE) 최고책임자와 만나 시장 운영 및 인프라 분야 협력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 거래소는 거래시간 연장과 결제주기 단축(T+1) 등 시장 운영·인프라 혁신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필요할 경우 공동협의회를 구성해 협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 이사장은 앞서 글로벌 주요 거래소의 거래시간 확대 추세를 언급하며 국내 시장 역시 거래시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거래소는 이번 애프터마켓을 시작으로 글로벌 거래소의 거래시간 연장 움직임을 살피면서 국내 증시의 거래시간을 단계적으로 추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거래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투자자 보호는 과제로 남는다. 정규장보다 거래 참여자가 적은 시간대에는 유동성이 줄면서 호가 간격이 벌어지거나 가격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KRX와 NXT가 동시에 애프터마켓을 운영하면서 종목별 유동성이 두 시장으로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주식 거래는 오후 8시까지 이어지지만 공시 접수시간은 기존과 동일하게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다. 오후 6시 이후 2시간 동안은 정규 공시 접수가 끝난 상태에서 주식 거래가 이어지는 셈이다.
거래소는 공시시간을 연장할 경우 악재성 공시를 늦게 내놓는 이른바 '올빼미 공시'가 늘어날 가능성 등을 고려해 현행 시간을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공시 마감 이후 부도나 은행거래정지, 감사의견 부적정·거절 등 거래정지 사유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애프터마켓에서도 해당 종목의 거래를 중단한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등 다음 거래일에 적용되는 시장운영 관련 조치는 애프터마켓이 끝나는 오후 8시에 공표된다. 거래시간 확대가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는 만큼 시간외 시장에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정보 비대칭을 최소화하는 것이 애프터마켓 안착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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