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명목 성장률이 20%를 웃돌면서 기업과 가계의 소득 여건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 같은 소득 증가가 설비투자와 소비 회복을 뒷받침하는 한편 수요 측 물가 압력을 높이고 주택 매입 수요와 차입을 자극해 금융 불균형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10일 공개한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올해 우리나라 명목 성장률이 이례적인 확장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17.1% 증가했다. 2분기는 26.4% 성장했다. 통상 실질 성장률과 명목 성장률의 괴리 크지 않지만 올 들어 급격히 확대됐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이번 명목 소득 증가를 두고 "1970년대 고도 성장기 이후 처음 겪는 명목 소득 증가율"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경제 환경,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고 우리 경제의 근본을 바꾸고 있어 전망이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교역조건 개선은 일차적으로 기업 부문 수익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시차를 두고 정부 및 가계로 파급된다. 올해 들어 정보기술(IT) 부문뿐 아니라 조선·기계 등 여타 제조업의 수익성이 동반 개선되면서 설비투자 증가율이 크게 확대됐다. 내년에도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서 설비투자의 높은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상반기 국세 수입이 지난해보다 상당 폭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도 세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정부의 재정 여력도 확충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계 역시 앞으로 소득 여건이 점차 개선되면서 소비 여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업과 지역에서 먼저 나타난 효과가 세수 증가와 소비 확대 등을 거쳐 시차를 두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은이 경기 용인·화성·평택시와 경기 이천, 충북 충주시 등 이른바 '반도체 벨트'를 대상으로 카드 소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누적 소비 증가액은 약 1조1000억원이었으며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올해 말까지 약 1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2025~2026년 연평균 증가액은 약 8000억원으로 지난해 전 민간소비 증가액 41조3000억원 대비 2%에 해당한다.
다만 명목 성장률 급등에 따른 소득 증가가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한은은 수요 측 압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물가 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늘어난 소득이 저축이나 자산 취득보다 민간소비로 얼마나 이어지는지가 물가 상승 압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주택시장과 가계부채를 둘러싼 금융 불균형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은 정부의 강도 높은 대출규제, 금융권 총량 관리에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 여건 개선에 따른 주택 매입 수요 증가 가능성 등 제기된다. 실제 성과급 지급 직후 동탄 지역의 월평균 매입 건수는 전년 대비 약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자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차입을 통한 레버리지 확대와 자산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 금융 불균형 위험은 확대된다.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업황이 지속될지 여부도 관건이다. 현재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수요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보이고 있지만 AI 투자 증가세는 올해를 정점으로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주요 해외 기관들은 글로벌 AI 투자 증가율이 2026년 정점(61~95%)을 찍은 뒤 2027년 38~40%, 2028년 13~21%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창호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주요 AI 기업의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에도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데다 빅테크의 외부 자금 의존도도 높아짐에 따라 향후 금융 여건이 악화되고 수익 창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 AI 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될 수 있다"며 "관련 리스크 요인을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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