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돈 없으면 지방 가란 뜻?"…지방국립대 '무상 등록금'이 부를 서글픈 역설

  • 서울대 연구팀 논문, 장학금 받아도 학비 남으면 상위권대 진학 포기 현상 실증

  • 내 성적보다 학비 싼 곳 좇는 '언더매칭'…"저소득층 수재일수록 두드러져"

  • 정부 '국립대 전액 무상' 정책과 겹쳐 우려…"고소득층만 인서울 상위권 독점할 것"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확정·발표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 4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을 확정·발표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정부가 2027년부터 30개 지방 국립대 신입생의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이러한 파격적인 학비 지원 구조가 오히려 가난한 수재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학업 성적이 뛰어나더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의 일부를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위권 대학 대신, 전액 무료인 대학으로 하향 지원하는 경향이 실증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지방국립대 무상' 정책이 자칫 "저소득층은 지방으로, 고소득층은 서울 상위권대로"라는 씁쓸한 교육 양극화를 굳힐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4일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 정동욱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교육행정학연구 제43권 5호에 ‘국가장학금 정책이 소득계층별 대학과 전공 선택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교육고용패널’ 종단 자료를 활용해, 국가장학금 정책이 본격 도입되기 전인 2008년 코호트(동일 집단)와 혜택이 확대된 2018년 코호트를 비교 분석해 저소득층 학생들의 실제 대학 진학 양상을 추적했다.
 
장학금 줬는데…가난한 수재들의 상위권대 진학은 왜 줄었을까
연구 결과, 국가장학금 제도는 저소득층의 전반적인 4년제 대학 진학률을 끌어올려 소득 간 격차를 줄이는 데는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신 2등급 이내의 이른바 '고성취 학생'들만 떼어놓고 보면 씁쓸한 이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정착된 이후, 중·고소득층 수재들의 상위권 대학 진학 확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정작 정책의 핵심 타깃이어야 할 하위소득층 고성취 학생들의 상위권대 진학 확률은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장학금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수재들은 왜 인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을 스스로 포기했을까.
 
내 실력 100보단 장학금 100%…눈높이 낮추는 '언더매칭' 현상

그 이유는 장학금의 '등록금 보조 비율'에 숨어 있었다. 현행 국가장학금은 소득 구간에 따라 일정한 '절대 금액'만을 지원한다. 따라서 등록금이 매우 비싼 상위권 사립대에 합격할 경우, 장학금을 십분 활용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빚을 지거나 감당해야 할 '잔여 등록금'이 크게 남는다. 여기에 값비싼 서울의 주거비와 생활비까지 더해지면 학생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결국 저소득층 수재들은 자신의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남은 학비와 재정적 두려움 때문에 장학금으로 학비가 100% 해결되는 하위권 대학이나 저렴한 국공립대로 눈을 낮추게 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자신의 학업 성취에 못 미치는 위세가 낮은 대학을 선택한다는 뜻의 '언더매칭(undermatching)'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쏠림은 전공 선택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등록금 보조 비율이 높아질수록 고소득층은 학비가 비싸더라도 취업에 유리한 공학이나 의약 계열로 진학하는 비율이 뚜렷하게 높아졌다. 반면, 저소득층 학생들은 학비 자체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문계열이나 자연계열로 진학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며 전공 선택의 폭마저 제한받고 있는 것으로 실증됐다.
 
국립대 무상 정책의 덫…"부의 크기가 대학 문패를 가른다“
연구팀의 이 같은 분석은 최근 정부가 대대적으로 발표한 '지방국립대 신입생 등록금 전액 지원' 정책과 맞물려 치명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정부는 지방 소멸을 막고 우수 인재를 지역에 단단히 붙잡아 두기 위해 오는 2027년부터 30개 지방 국립대를 '완벽한 공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언더매칭 이론을 대입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지방국립대가 100% 무료가 되면, 당장 학비 한 푼이 아쉬운 저소득층 수재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음에도 경제적 압박 때문에 무조건 전액 무료인 지방국립대를 1순위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환경이 조성된다.
 
반면, 상위권 사립대의 비싼 등록금이나 서울의 높은 주거비를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상위소득층 학생들은 굳이 무상 등록금 혜택에 얽매이지 않고 인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더욱 집중적으로 몰려가게 된다.
 
결국 '지방국립대 살리기'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무상 등록금 정책이, 얄궂게도 부모의 재력에 따라 진학하는 대학의 수준과 지역이 노골적으로 나뉘는 '현대판 신분제'를 고착화하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뼈아픈 우려다.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국가장학금이 저소득층의 전반적인 대학 진학을 이끌었지만, 실질적인 대학 및 전공 선택의 자율성을 보장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저소득층 학생이 재정적 부담 때문에 자신의 성취에 못 미치는 대학을 선택하는 언더매칭 현상이 존재함을 심각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단순히 특정 대학의 등록금을 '0원'으로 깎아주는 1차원적 유인책을 넘어, 저소득층 수재들이 경제적 두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상위권 대학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도록 생활비 보조 등 보다 정교한 핀셋 지원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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