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 이틀 새 5엔 급락…'엔 캐리' 청산 관측

  • 160엔서 개입 경계에 달러 매도…158엔선 깨지자 쇼트 스퀴즈

  • 日 금리 인상 가속·美 동결 전망…미·일 금리차 축소 기대

사진AFP연합뉴스
[사진=AFP·연합뉴스]



엔·달러 환율이 이틀 만에 달러당 160엔대 초반에서 155엔대까지 5엔 넘게 급락했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속 전망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이달 금리 동결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미·일 금리차가 좁혀질 것이라는 관측이 커졌다. 여기에 7월 말 미·일 공동 엔화 매수 개입으로 손실을 본 투기세력이 엔화 매도 포지션을 서둘러 청산하면서 환율 하락세가 증폭됐다. 이번에는 실제 개입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개입에 대한 경계가 엔화 매수를 부르고, 엔·달러 환율 하락이 추가적인 엔화 매도 포지션 청산을 촉발하는 '쇼트 스퀴즈'가 빚어졌다. 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

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5.30엔까지 하락해 약 한 달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4일 도쿄시장에서도 오전 한때 155.28엔까지 떨어졌지만, 수입기업 등 실수요자의 엔화 매도·달러 매수가 나오면서 정오에는 156.10~156.12엔으로 반등했다. 전날 오후 5시와 비교하면 여전히 0.93엔 낮은 수준이다.

닛케이는 이번 환율 급락의 출발점으로 일본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의식한 투자자들의 선제적 달러 매도를 꼽았다. 일본 은행권의 한 외환 딜러는 2일 뉴욕시장 오전에 일본 당국이 금융기관에 환율 수준을 묻는 '레이트 체크'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같은 관측이 퍼지자 엔·달러 환율은 짧은 시간에 1엔가량 하락해 158엔대에 들어섰다. 이후 환율은 한동안 보합권에 머물렀다.

세리티파트너스의 마이클 애슐리 슐먼 파트너는 "7월 말 미·일 공동 개입으로 많은 외환 트레이더가 손실을 봤다"며 "그 경험 때문에 이번에는 환율이 달러당 160엔까지 오르자 당국이 이미 개입했을 가능성에 베팅해 달러를 팔았다"고 설명했다. 선제적 달러 매도가 다시 매도를 부른 데다 뉴욕 시간으로 한밤중에 엔화 강세가 더 가팔라지면서 엔화 매수는 자기 증폭적으로 불어났다.

두 번째 분수령은 158엔대였다. 3일 도쿄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200일 이동평균선(MA)이 위치한 158.44엔 아래로 떨어지자 하락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200일 이동평균선은 투자자들이 중장기 시장 흐름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유럽계 대형 은행 관계자는 엔저를 예상해 엔화 매도 포지션을 쌓아온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200일선 붕괴를 계기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잇따라 포지션 청산에 나서는 '쇼트 스퀴즈'가 본격화한 것으로 봤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나 자산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얻는 거래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환차손이 이자 수익을 잠식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엔화를 되사들여 포지션을 청산한다. 대개 빚을 내 투자 규모를 키우는 만큼 환율이 크게 흔들리면 손실이 커지기 전에 먼저 손을 터는 움직임이 나온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레버리지 펀드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2020년 이후 평균의 두 배가 넘었다. 7월 말 미·일 공동 개입 직후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직전 2주 동안 다시 확대됐다. 뉴욕의 한 일본계 은행 딜러는 "포지션을 구축한 환율 수준을 감안하면 평가손을 안고 있던 투자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일 통화정책 전망 변화 


금융정책 전망의 변화도 엔·달러 환율 하락에 힘을 보탰다. 다카타 하지메 일본은행 심의위원은 2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들어 "국면이 바뀌었다"고 강조하며 반년에 한 번꼴이던 금리 인상 간격과 0.25%포인트였던 인상 폭에 얽매이지 않고 인상 시기와 폭을 탄력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두 차례 연속 인상도 일반론으로는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3개월마다 금리를 올리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3일 일본은행이 17~1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올릴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다.

반면 요미우리신문은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3일 강연에서 "최근 지표에서 물가 상승 둔화 조짐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월러 이사는 물가 둔화가 이어질 경우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동결을 지지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미 금리선물시장에 반영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전날 약 63%에서 4일 오전(한국 시간) 약 50%로 낮아졌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빨라지고 Fed의 인상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미·일 금리차가 좁혀질 것으로 본 투자자들의 엔화 매수로 이어졌다.

일본이 미국의 압박을 받아 금융·재정정책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엔화 매수를 자극했다. 미 재무부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지난달 30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만나 "엔화의 대폭적인 저평가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이 단호한 시장·금융정책상의 조치를 취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전했다고 1일(현지시간) 공개했다. 이후 우에다 총재와 일본은행 간부들에게서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랐다. 뉴욕타임스(NYT)는 베선트 장관이 지난 5월 도쿄에서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과 회동했을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적극재정 노선과 일본은행에 저금리 유지를 요구하는 태도에 2시간 동안 불만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엔·달러 환율 급락이 추세적인 엔고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우고 몬트루키오 슈로더 멀티에셋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의 개입이 엔저 흐름을 일시적으로 늦췄을 뿐이어서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엔화 매도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일본은행이나 정부가 엔화 강세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 추세적인 엔고로 돌아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킷 저크스 소시에테제네랄 수석 외환전략가는 "엔화가 오르는 국면에서 엔화를 팔아 이자수익을 챙기는 엔 캐리 전략은 지금까지는 통했지만 이제는 위험해지고 있다"며 수년에 걸쳐 달러당 140엔까지 엔화 가치가 오르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음 분수령은 4일 밤 발표되는 미국의 8월 비농업 고용지표다. 고용지표가 부진하면 미국의 9월 금리 인상 전망이 더욱 약해지면서 엔화 강세에 한층 힘이 실릴 수 있다. 반대로 예상보다 강하면 미국의 금리 인상 기대가 되살아나 환율 하락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닛케이는 일본 은행권의 한 외환 딜러를 인용해 올해 두 차례 개입으로도 뚫지 못한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55엔 선을 이번에는 밑돌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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