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의 교육&시선] '5극 3특'의 하위 수단으로 전락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서울대 정문 아주경제 DB
서울대 정문. [아주경제 DB]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대표적 고등교육 공약인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1차 패키지 지원 대상으로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 3곳이 최종 낙점됐다. 5년간 대학당 연 700억 원 안팎의 막대한 국가 재정이 집중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대학가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정부의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이 본격화하는 이면에 교육계 안팎의 우려와 함께 비판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고 지역 거점국립대를 세계적 수준의 연구·교육 허브로 키우겠다는 원초적 목적의 교육개혁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것. ‘5극 3특’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정치·행정 논리에 매몰되며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번 1차 평가에서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가 선정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은 탄탄한 지역 연계 협치 구조와 전략적 ‘특성화 선점’에 있었다. 부산대는 해양·조선·항공우주라는 동남권의 확고한 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지역 거점 리딩 대학의 상징성을 확실히 굳혔다. 전남대는 광주·전남 행정통합 및 SK 반도체 생태계 유치 구상과 결합했고, 충남대는 카이스트 및 지자체와의 공조를 통해 명확한 로드맵을 제출해 정책적 설득력을 확보했다. AI 전담 단과대 신설 등 과감한 학사 구조 개편을 서류상 명징하게 담아내며 평가위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점도 유효했다.

반면, 탈락한 나머지 6개 거점국립대들은 적지 않은 충격과 후유증을 받고 있다. 이들 대학들의 공통된 패착 중 하나는 ‘남 따라 하기’와 ‘안일한 계획서’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령, 전북대는 현대자동차와의 협약 등 미래 모빌리티와 AI 육성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구속력 없는 선언적 양해각서(MOU)에 머물렀고, 타 대학이 이미 선점한 반도체·AI 전선에 무리하게 뛰어들어 차별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강원대도 마찬가지다. ‘1도 1국립대’라는 기존 행정 성과만 답습한 채, 특색을 찾기 힘든 무난한 계획서로 일관했다는 후문이다. 경북대 역시 일찌감치 반도체 분야를 내걸었지만, 광주·전남의 대규모 기업 유치 명분과 지역 안배 싸움에서 주도권을 빼앗겼다.

향후 2차, 3차 도전에 나설 후발 거점국립대들이 새겨야 할 해법은 무엇일까. 차별화된 전략산업 카드를 찾는 데서 멈추지 말고, 지자체 산업에 단순히 맞추는 수준을 넘어, 대학 고유의 연구 경쟁력과 뼈를 깎는 학사 구조개혁이 담보된 특성화를 이뤄내야 한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나머지 6개 대학은 각자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고 철저한 ‘원점 회귀’를 해야 한다. 부산대의 해양·항공우주나 전남·충남대의 반도체처럼 이미 선점된 카드는 과감히 답안지에서 지워야 한다. 예컨대, 이번에 고배를 마신 전북대가 다시 준비를 할 경우 타 대학을 흉내 내기보다 농촌진흥청 등 국내 최고의 농생명 인프라를 지닌 지역 토양에 주목해, AI와 데이터를 결합한 ‘독보적 농생명 바이오’ 단과대처럼 대체 불가능한 비교우위를 발굴해야 승산이 있다.

그러나 탈락 대학의 자성 못지않게 더 본질적이고 엄중한 문제는 정부의 평가 행태와 정책 추진 방향에 있다. 선정 대학 한 곳당 5년간 최대 40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국가 재정이 투입된다. 그러나 선정된 대학들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것이 진정한 교육개혁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전남대는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 RIS 사업비 부정수급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은 데다 최근 종합감사에서 예산 사적 사용 등으로 기관경고를 받았고, 충남대는 글로컬대학30 이행 평가에서 낙제점인 D등급을 맞았다. 과거 사업의 실패와 비위에 대한 엄격한 징벌적 검증 없이 ‘서류상 청사진’과 광역 행정 구도에 맞춰 거액을 다시 쥐여주는 것은 관료주의적 도덕적 해이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학과 통폐합 등 체질 개선은 기피한 채 국가 지원금만 챙기려는 국립대 교수사회의 뿌리 깊은 보신주의와, ‘5극 3특’이라는 광역 발전 구도에 꿰맞춰 정무적 안배로 대학을 재단하는 관료주의가 결합하면서 우려는 극에 달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본래 취지는 수도권 대학 서열을 혁파하고 지방에서도 서울대 못지않은 교육·연구 경쟁력을 누릴 수 있도록 대학 자체의 학문적 수준을 상향 평준화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진정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학을 지자체 성장엔진의 단기 인력공급 하청 기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문·기초과학을 아우르는 학문적 수월성 강화와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이 빠진 채, ‘5극 3특’이라는 광역 발전 지도에 대학을 짜 맞추는 재정 나눠주기는 결국 ‘예산 먹튀’의 흑역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또한 3개 대학에만 수천억 원이 집중 배분되면서 발생한 거점국립대 간의 새로운 서열화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뒤에 방치된 지역 사립대의 연쇄 소멸 위기는 거시적 맥락에서 고등교육 생태계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교육적 본령을 잃고 산업 정책의 하위 수단으로 전락한 지금의 정책 기조를 전면 쇄신하지 않는다면, 10개의 서울대가 아니라 10개의 재정 낭비 상징물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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