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자화상, 빈방, 가정, 우주…서도호가 말하는 '집'

  • 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 개인전 개최

  • 드로잉·조각·영상·설치 등 500여점…어린시절 작품 등 씨앗도

  • "빈방에 사람 들어와…모든 이야기 포함"

  • "회향 자꾸 맴돌아…우린 연결돼 있다"

〈러빙러빙_서울 집〉 20132022 닥지에 흑연 스테인리스 철사 LED 조명 534x866x8025cm 시드니 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22© 서도호
〈러빙러빙_서울 집〉 2013~2022, 닥지에 흑연, 스테인리스 철사, LED 조명, 534x866x802.5cm. 시드니 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2022.© 서도호


'서도호의 집을 보면서 왜 나의 집이 생각나지, 왜 나의 인생이 생각나지.'

작가 서도호(64)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작품을 본 이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그는 2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개인전 '서도호' 기자간담회에서 "제 작품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그런 긍정적인 부분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30여 년간 국제 무대에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서도호가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대학 시절의 미공개 초기작부터 대표작,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드로잉, 조각, 영상, 설치 등 500여점을 볼 수 있다.
 
〈둥지_들〉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101×21487×3754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 서도호  사진_ 전택수
〈둥지_들〉,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10.1×2,148.7×375.4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 서도호 사진_ 전택수


서울에서 성장한 서도호는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해외 여러 지역을 오가며 살았다. 낯선 도시에서 거듭 집을 옮긴 경험은 ‘집’과 ‘기억’, ‘이동’,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천으로 만든 집'을 여럿 볼 수 있다.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성장한 그에게 '한옥'은 '아버지·어머니와의 연결 고리'다. 그의 부모인 서세옥과 정민자는 서양식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던 1960년대 말, 조선시대 마지막 대목장 배희한에게 한옥 건축을 맡겼다. 그렇게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집을 지었다.

“누구도 한옥을 짓지 않던 때였어요. 서양식 여의도 아파트에 살면 부러워하던 시절인데 부모님은 거꾸로 한옥을 지으셨죠.”
 
〈완벽한 집_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55×1237×575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 서도호
〈완벽한 집_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2024, 폴리에스터 천, 스테인리스 스틸, 455×1,237×575cm. 작가,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제네시스 제작 후원. © 서도호


그 한옥을 짓는 데는 6년이 걸렸다. 서도호의 가족은 바로 그 옆에서 살았다. 덕분에 어린 서도호는 한옥을 짓는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부모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한국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공간적으로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죠."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 말하는 '러빙/러빙: 서울집'을 비롯해 서도호가 여러 도시에서 살아온 집의 기억과 흔적을 하나의 공간으로 재구성한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 여러 도시에서 거주했던 집의 복도와 문, 방 등을 하나의 연속된 건축으로 재구성한 '둥지/들'을 볼 수 있다.

그가 매일 잡은 문 손잡이, 스위치는 에너지가 응축된 오브제다.

“'바윗덩어리도 3년을 끌어안으면 따뜻해진다'는 문구가 있더군요. 25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잡은 문손잡이에는 제 에너지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집은 그의 삶과 함께 변화한다. "사실 천으로 집을 만든 작품 대부분은 독신일 때 만든 것이죠. 빈방에 혼자 앉아서 방과의 대화로 나온 작품이에요. 그래서 빈방들을 천으로 만들었죠. 방과 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었죠."
 
〈쫓아오는 집〉 2019 STPI 수제 종이에 실 1315 × 167 cm 작가 STPI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 서도호
〈쫓아오는 집〉, 2019, STPI 수제 종이에 실, 131.5 × 167 cm, 작가, STPI, 리만머핀, 빅토리아 미로 제공. © 서도호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빈방에 사람이 들어왔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가족이 생기면서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가정'이 됐어요. 저와 방 사이에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면서 생기는 모든 이야기들이 집에 포함되는 거죠. 그 개념을 확대하면 학교가 되고, 사회가 되고, 나라가 되고, 또 우주가 돼요."

아들에서 남성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삶의 변화는 작품의 변화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의 최신작에서는 ‘부성’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아이들의 옷과 물건을 버리지 않고 10년 동안 모아 작품으로 만들었다.

'전통'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젊은 시절에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모직 나일론 의류 93 x 45 x 30 cm 작가 제공  © 서도호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모직, 나일론 의류, 93 x 45 x 30 cm. 작가 제공 © 서도호


이번 전시가 그의 ‘뿌리’를 유독 깊숙이 들여다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도호는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났지만 한국 관객들에게 제가 가진 한국적인 맥락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유치원 등 어린시절 작품을 모은 씨드뱅크가 있다. 서도호의 작품 세계를 이룬 씨앗들이다. 

요즘 그의 머릿속에는 불교의 '중생회향(衆生廻向)’이 맴돈다. 공덕을 혼자 쌓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이를 돌려 함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이타성이다. "그 생각이 왜 자꾸 떠오르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자기가 가진 것을 대중과 나눈다는 뜻이죠."

뉴욕현대미술관, 휘트니미술관, 구겐하임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여온 그는 한국에서도 전시를 열어 달라는 요청 속에서 미안함이 계속해서 쌓였다. 그러던 중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제안을 받아 이에 흔쾌히 응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말한 '회향'을 실천하는 자리인 셈이다. 
 

MMCA 서울_서도호_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MMCA 서울_서도호_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회향'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해온 화두인 '연결'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정신문화의 기반에는 유불선(儒佛仙)과 무속이 있죠. 그 사상 체계에서 우리는 연결돼 있다는 것을 서구 사람보다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 생각이 자연스레 작품에 나오게 됐고, 이제는 신념이 됐죠.”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9일까지. 

 

MMCA 서울_서도호_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MMCA 서울_서도호_전시 전경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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