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기술도 정부도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경제사(史)에는 되풀이되는 장면이 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자가 시장을 꺾어보겠다고 달려들다가 시장이 유유히 그 옆을 지나쳐 가는 장면이다. 2018년 이후 미국의 대중(對中) 기술 봉쇄, 2021년 중국의 부동산 강제 진압, 그리고 역대 한국 정부의 집값 잡기 전쟁이 모두 같은 결말로 끝났다. 시장의 승리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언제나 국민에게 날아온다.

기술 봉쇄도, 관세 폭탄도 시장을 막지 못했다

미국은 7년 동안 중국에 가장 정교한 무기를 들이댔다. EUV 장비 수출 금지, 엔비디아 AI칩 차단, 최고 145%의 관세 폭탄까지. 시나리오는 명확했다. 기술을 막으면 중국 경제가 흔들리고, 흔들리면 굴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25년 중국의 무역흑자는 1조1889억 달러를 기록했다. 사상 최초로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이다. 수출은 전년 대비 5.5%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이 정문을 봉쇄하자 중국은 동남아와 중동, 유럽으로 우회로를 열었다. 물은 막으면 돌아간다. 수요가 살아 있는 한 공급은 반드시 길을 찾는다. 이것이 시장의 법칙이다. 결국 2025년 10월 부산 APEC 회담에서 미국은 먼저 무역휴전을 선언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가 졌다"고 단언했다.

중국이 버텨낸 힘의 원천은 14억명이라는 내수시장이었다. 기술 봉쇄는 날카로운 칼이었지만 내수라는 갑옷을 뚫지 못했다. 아울러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역봉쇄 카드로 미국 항공우주·방산 산업의 목을 쥐었다. 봉쇄로 시장을 죽이려 했지만 시장은 죽지 않았다. 다만 미국이 모르는 길로 돌아갔을 뿐이다.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

빗장을 걸어 잠근 문 앞에서 세상이 멈출 것이라 믿는 자, 그가 바로 시장에서 가장 먼저 퇴장하는 자다.

집값은 이념으로 잡을 수 없다  

2016년 중국의 시진핑이 이렇게 선언했다. "집은 사는(住) 곳이지, 사는(買)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선포했다. 그리고 2021년 '세 개의 레드라인' 정책으로 헝다(恒大)의 자금줄을 끊었다.

결과는 통제 불능이었다. 신규 주택 판매는 5년 만에 54% 급감했고, 실질 주택가격지수는 고점 대비 25% 하락해 20년 치 상승분을 4년 만에 반납했다. 지방정부 재정의 40%를 받쳐주던 토지 매각 수입은 65% 급감했다. 도시 가구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집중된 나라에서 집값 하락은 소비 심리를 동결시켰고, 디플레이션 스파이럴이 시작됐다. 시진핑의 슬로건은 옳았지만 방법이 틀렸다. 공급과잉을 만들어 놓고 수요를 틀어막은 것이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중국 공산당도 시장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한국은 그 반대편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집권 1년 만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보유세 강화, 대출 제한이 쏟아졌다. 국토교통부 공식 자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집권 첫해 서울 아파트 값은 11% 상승해 역대 정부 집권 첫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KB부동산 기준으로는 14.73%에 달했다. 전세가격은 6.81%, 월세는 8.99% 올라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집권 첫해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양도세를 올리면 매물이 잠긴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 세금은 집값으로 전가된다. 이 단순한 경제 원리를 노무현 정부가 먼저 검증했고, 문재인 정부가 재확인했다. 이재명 정부는 그 실험을 세 번째 반복 중이다.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을 늘려야 한다. 세금을 올리면 집값만 올라간다. 이 진리를 세 정부가 확인했는데도 모른다면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의지다.

증시도 반도체도 정치 논리가 시장 논리를 이길 수 없다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폭발로 한국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자 코스피는 주요국 증시 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정부가 한 일은 없었다. 어부지리였다. 그런데 개인투자자들이 미국 주식으로 몰리자 정부는 이를 막겠다며 2026년 5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급조해 상장시켰다. 결과는 참혹했다. 한 달 반 만에 개인투자자들은 약 56조원의 손실을 입었다. 강제 청산된 계좌의 62%가 20·30대였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를 '카지노'라고 불렀다. 개미들의 미국 이탈을 막으려다 개미들을 도박판에 밀어 넣었다.

반도체 정책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칩스법(CHIPS Act)으로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전 세계 기업을 자국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중국은 국가 대펀드(빅펀드) 총 69조원으로 반도체 생태계 전체를 직접 지원한다. 일본은 구마모토 TSMC 공장을 유치하며 공사 기간을 5년에서 20개월로 단축했다. 반도체는 지금 국가대항전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꺼내 들었다. 업계에서는 "경제성이 아니라 정치성"이라는 말이 나왔다.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자국에 지으라고 압박하는 마당에 기업들은 국내에서 정치 논리의 클러스터와 마주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은 없고, 세금은 걷고, 초과 세수에 젓가락만 얹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알을 꺼내 먹는 전략이다.

경제는 이념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으로 작동한다. 집값은 공급으로 잡아야 하고, 증시는 기업 실적으로 키워야 하며, 반도체는 실질 지원으로 육성해야 한다. 정부가 시장보다 더 잘 안다는 오만이 반복될 때마다 그 청구서는 언제나 국민에게 날아온다. 단기에는 정부에 맞서지 말라. 그러나 중장기로는 시장에 맞서지 말라. 경제는 순리대로 풀어야지 인위적으로 조작하면 반드시 뒤탈 난다.

여기서 한국 정부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미국도 중국도 정책 실패를 겪으면서 결국 시장 논리로 돌아왔다. 미국은 무역전쟁의 한계를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중국은 부동산 규제 완화로 방향을 틀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두 번째 오만이라면 그 오만을 덮기 위해 새 정책을 쌓는 것은 세 번째 재앙이다.

한국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을 읽는 통찰이다. 부동산은 공급으로, 증시는 제도 개혁으로, 반도체는 실질 지원책으로 답해야 한다. 정책의 목표가 국민 편익이 아니라 정치적 명분이 되는 순간 시장은 어김없이 그 빈틈을 파고든다. 경제정책에 이념과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시장은 정부의 의도를 비틀어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결국 시장을 읽는 눈, 통찰력이 실력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려 하지 않는 자에게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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