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달 말 실시한 미·일 공동 엔화 매수 개입의 조건으로 일본은행(BOJ)에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화 약세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6개월에 한 번꼴이던 BOJ의 금리 인상 간격도 짧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에서는 오는 9월 추가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24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복수의 BOJ 관계자는 최근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물가가 예상보다 크게 올라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6개월에 한 번이던 인상 간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정책위원의 공통된 인식"이라며 시장에서 확산하는 조기 인상론에 힘을 실었다.
BOJ의 다음 금융정책결정회의는 9월 17~18일 열린다. 금융시장 조사기관인 도탄리서치 등에 따르면 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지난 21일 오후 기준 80%를 넘어섰다. 한 금융기관의 채권 운용 담당자는 "이미 9월 금리 인상을 확정적인 것으로 보고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이런 조건을 내건 배경에는 미 국채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있다. 닛케이는 이번 미·일 공동개입에 대해 엔화 약세와 일본의 금리 상승이 미 국채 매도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 19일 국채 매입·소각 규모를 두 배로 늘리는 조치까지 내놨지만 금리를 끌어내리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BOJ가 시장의 예상만큼 적극적으로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엔화 약세와 일본 장기금리 상승이 다시 심해지고, 그 충격이 미 국채 시장으로 번질 수 있다. 닛케이는 BOJ가 자국 물가와 시장 안정을 넘어 세계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아야 할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고 짚었다.
이런 미국의 요구는 최근 일본의 정책 운용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BOJ는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한 뒤 같은 해 7월, 지난해 1월과 12월, 올해 6월 금리를 인상했다. 재무성과 BOJ는 이 기간 2024년 7월과 올해 4~5월 엔화 매수 개입에도 나섰다. 닛케이는 이처럼 환율 개입 뒤 비교적 짧은 시차를 두고 금리를 올리는 패턴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낮은 일본의 정책금리가 엔화 약세의 한 요인으로 지목돼 온 만큼, 개입과 인상을 병행해 이를 바로잡아 왔다는 것이다.
BOJ가 엔화 약세를 경계하는 것은 기업들이 원가 상승분을 과거보다 빠르게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BOJ는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물가를 예상보다 끌어올릴 위험 요인으로 국제유가 상승,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증가와 함께 엔화 약세를 지목했다. 실제 7월 일본 기업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2% 올랐다. 변동성이 큰 신선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9%로 9개월 만에 상승 폭이 확대됐다. 엔화 약세발 물가 재상승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9월 인상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BOJ 내부에서도 "아직 9월 인상으로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는 신중론이 남아 있다. 9월에 인상하면 직전 인상 이후 3개월, 10월이라면 4개월 만으로, 어느 쪽이든 기존의 약 6개월 간격보다 빨라진다. BOJ는 앞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와 해외 동향 등을 지켜보면서 추가 금리 인상의 시기를 저울질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특히 주목하는 두 가지 일정이 있다. 먼저 오는 27일 히미노 료조 BOJ 부총재의 강연과 기자회견이다. 히미노 부총재는 지난해 1월 금리 인상을 앞두고 열린 강연에서도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시장이 9월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서 이번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신호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또 하나는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X(옛 트위터)에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를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적었다. 그는 우에다 총재가 "필요한 일을 실행할 것으로 믿는다"고도 밝혀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G20 종료 후에는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과 우에다 총재의 기자회견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관심은 벌써 9월 이후의 추가 인상으로 옮겨가고 있다. 6월에 이어 9월에도 금리를 올릴 경우 다음 인상 시점은 12월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이 예상하는 금리 인상의 최종 도달점도 2% 이상으로 높아졌다. BOJ 내 대표적 매파인 다무라 나오키 심의위원은 경기와 물가를 과열시키지도 냉각시키지도 않는 중립금리를 2% 안팎으로 보고, 그 수준을 향해 인상을 이어가는 시나리오를 그린다. 반면 BOJ 집행부의 한 인사는 중립금리의 명확한 수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닛케이는 BOJ가 목표로 삼는 인상의 종착점이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이 실상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일수록 부작용도 커진다는 점이다. 장기금리가 더 오르면 지방은행이 보유한 채권의 평가손실이 확대되는 등 금융시스템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닛케이는 내수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가운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과 BOJ가 금리 인상 속도를 놓고 어디까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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