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삼성전자 2분기 영업이익 89조4000억원, 숫자만 보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황금기 한가운데 있다. 그런데 그 발표가 나온 날, 코스피는 6.4% 급락해 6820선으로 밀렸다. 삼성전자는 사상 최고가 대비 30.7%, SK하이닉스는 41.1% 폭락했다.
이익은 사상 최고인데 주가는 폭락한다. 이 기묘한 현상을 두고 여의도는 "기술적 조정"이라 했고, 언론은 "외국인 매도"를 탓했다. 그러나 시장이 보내는 진짜 메시지는 단 하나다. "이익은 알겠다. 그 다음은 있는가?" 주가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산다.
이번 폭락은 삼전닉스의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만들어낸 황금기의 과실이 주식 쏠림, 부동산 과열, 물가 상승, 금리 인상이라는 역설적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황금기가 스스로 황금기의 적이 된 구조, 그것이 지금 한국 경제가 마주한 민낯이다.
9000P 파티, 쏠림과 레버리지가 만든 시한폭탄
코스피 9000P 파티는 화려했다. 그러나 파티의 기둥은 단 두 개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 두 종목이 MSCI EM 지수에서 각각 9.5%와 8.3%까지 팽창했고, 한국 주식 기초자산 레버리지 운용 규모는 500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집은 높이 올라갔는데 기둥은 단 두 개뿐이었다.
충격은 세 단계로 왔다. 1단계는 UCITS(유럽 집합투자기구 지침) 10% 상한 규정에 따른 기계적 강제 매도로, 상반기에만 외국인이 삼성전자 72.6조, SK하이닉스 57.1조원을 순매도했다. 2단계는 레버리지 연쇄 청산으로 하락이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이 작동했다. 3단계는 액티브 펀드의 비중 축소였다.
이 구조를 키운 것은 시장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반도체 전문가가 된 FOMO(Fear Of Missing Out)의 시대가 쏠림을 만들었고, 과열을 막아야 할 정부가 어설픈 금융상품 허용으로 오히려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전 국민 반도체 전문가 시대는 황금기의 증거가 아니라 과열의 신호였다.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노력 없이 돈벼락을 갈라먹기만 하면 다음 황금기는 없다.
금리 인상·부동산 세제 개편: 황금기가 부른 역설의 삼중 충격
2026년 7월 16일 한국은행이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올렸다. 금통위원 7명 전원 만장일치였다. 한은은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못 박아 8월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왜 지금 금리를 올렸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만든 성장의 열기가 물가를 달궜기 때문이다. 6월 소비자물가 3.2%, 근원물가 2.5%. 반도체가 벌어다 준 소득이 부동산과 소비에 쏟아지며 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황금기가 스스로 긴축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여기에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 예고가 겹치며 주가 폭락, 금리 인상, 세제 강화라는 3중 충격이 동시에 가계를 짓누르고 있다.
반도체는 이제 국가 대항전이고 AI 전쟁 시대의 전략물자다. 미국, 중국, 일본이 목숨 걸고 반도체에 투자하는 환경에서, 이 전략물자를 정권의 쇼나 정당의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은 패착이다. 한국이 선동성 구호로 낭비할 시간은 없다. 구호성 이벤트와 황당한 숫자 목표로 반도체 정책을 대신할 수 없다.
정책의 최고 심판자는 금융이다. 박사 중에서 예측력이 가장 높은 박사는 돈(錢)박사, Dr. Money다. 이익이 사상 최고인데 주가가 폭락한다는 사실을 정부와 여의도가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FOMO·JOMO·MOMO: 사이클을 지나는 세 가지 태도
9000P 파티 때 시장을 지배한 것은 FOMO(Fear Of Missing Out)였다. 놓칠까봐 두려운 마음에 고점을 추격했고, 그 결과가 30~40% 손실이다. 폭락 이후엔 JOMO(Joy Of Missing Out)가 퍼졌다. 안 샀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체념이다. 그러나 JOMO도 감정이다. 시장을 외면하는 것은 다음 기회도 함께 외면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MOMO(Monitor and Move On)다. 지켜보고, 판단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이성의 전략이다. 세 지표를 동시에 보면 된다. DRAM·NAND 현 물가의 방향, 빅테크 캐펙스 가이던스, 삼성·하이닉스의 재고 일수. 이 셋이 동시에 꺾이면 사이클 전환의 트리플 신호다.
외국인의 소나기 매도는 잦아들고 있다. UCITS 강제 매도는 95% 소화됐고 레버리지 청산도 상당 부분 소진됐다. 지금은 시장을 외면할 때도, 감정적으로 뛰어들 때도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의 9500억 달러 협력이 실계약으로 전환되는지, 빅테크 캐펙스가 유지되는지, 이 두 신호를 보면서 다음을 이성적으로 준비해야 할 때다.
FOMO는 감정이 시장을 따라가고, JOMO는 감정이 시장을 외면하지만, MOMO는 이성이 시장을 앞서간다. 감정으로 투자하면 언제나 진다. 사이클을 읽고 신호를 보는 MOMO만이 다음 황금기에도 살아남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선언이 아니라 제도다
반도체 황금기를 길게 가져가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언이 아니라 제도다. 첫째, 증시 소프트 랜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레버리지 ETF 한도 관리, 종목 집중도 규제,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진입 요건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 파티가 끝난 뒤 청구서를 나눠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아니라, 파티가 통제 불능으로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둘째, 반도체 구독경제(LTA)와 메모리 상품 선물시장 개설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SK하이닉스-엔비디아의 7500억 달러 장기 공급 계약이 보여주듯, 반도체를 일회성 거래가 아닌 장기 구독 상품으로 전환하면 이익의 가시성이 높아지고 주가의 사이클 진폭도 줄어든다. 메모리 현물가 변동성을 헤지할 선물시장은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새로운 안전장치가 된다.
셋째, 반도체를 정쟁에서 분리해야 한다. 중국은 국가가 CXMT를 키웠고, 일본은 라피더스를 지원하며, 미국은 CHIPS Act로 직접 보조금을 쏟아붓는다. 한국만 기업이 혼자 싸우고 있다. 4700조 메가프로젝트 발표, 샌프란시스코 AI 선언. 90일 후에도 실행 로드맵이 없다면 선언이 아니라 이벤트다.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다. “슈퍼사이클”이라는 이름 속에 “사이클”이 있다. 황금기를 가장 시끄럽게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릴 때, 조용히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는 자가 다음 황금기에도 살아남는다. 정부는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것이 반도체 황금기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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