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를 AI 모빌리티 인프라와 서비스 융합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겠다."
유정훈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취임과 함께 던진 선언이다. 유사장에게 고속도로는 더 이상 자동차만 달리는 길이 아니다.
전국 고속도로망에 전력과 데이터를 연결하고 자율주행과 미래 모빌리티를 얹는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의 대동맥이었던 고속도로를 AI 시대의 국가 인프라로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동차의 길에서 AI의 길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고속도로를 빼놓을 수 없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단순히 서울과 부산을 연결한 사건이 아니었다. 사람과 상품이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였고 고속도로를 따라 산업단지와 도시가 성장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다. 산업화 시대의 핵심 자원이 석유와 철강이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와 전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AI 데이터센터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데이터가 빠르게 이동할 초고속 통신망도 필요하다.
유정훈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여기에서 고속도로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다. 전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자동차가 달리는 물리적 도로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전력과 데이터가 함께 흐르는 AI 시대의 국가 인프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도로공사를 'AI 모빌리티 인프라와 서비스 융합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전국 고속도로가 AI 인프라가 된다
유 사장의 AI 구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국 고속도로망을 전력 송전망과 대용량 데이터 케이블망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AI 시대의 핵심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력 확보와 데이터 전송 능력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지 못하거나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이동시키지 못한다면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유 사장은 전국에 이미 구축돼 있는 고속도로의 선형 인프라에 주목한다. 고속도로망을 활용해 전력과 데이터 이동 기반을 구축하고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급과 초고속 통신망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초격차 인프라'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도로공사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발상이다.
과거 도로공사의 핵심 임무가 도로를 건설하고 유지하며 자동차의 안전한 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자동차와 에너지, 데이터와 통신이 동시에 이동하는 국가 플랫폼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확장될 수 있다.
고속도로가 AI 문명의 혈관이 되는 셈이다.
AI 시대에도 결국 전력이 필요하다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AI 경쟁의 본질도 달라지고 있다. 좋은 알고리즘과 반도체만으로 AI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AI를 작동시키는 데이터센터와 이를 뒷받침하는 막대한 전력,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통신 인프라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시설물을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사업 확대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도로부지와 휴게소, 방음시설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이러한 공간을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 수익을 지역 주민과 나누는 상생 모델까지 구축하겠다는 것이 유 사장의 계획이다.
도로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인프라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동시키는 인프라로 진화한다.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데이터망을 하나의 국가 인프라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국도로공사의 역할도 지금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자율주행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린다
AI는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도 바꾼다.
유 사장이 제시한 대표적인 사업 가운데 하나가 '심야 시간대 자율주행 트럭 전용차로 시범사업'이다. 자율주행 기술과 고속도로 인프라를 결합해 물류의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자율주행은 단순히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지 않는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차량과 도로, 교통정보와 통신망이 실시간으로 연결돼야 제대로 작동한다.
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량과 사고, 기상과 시설물 정보를 AI가 분석하고 차량과 도로가 정보를 주고받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고속도로는 단순한 아스팔트가 아니라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변한다.
특히 물류는 AI와 자율주행의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는 분야다. 심야시간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트럭 운행이 현실화된다면 물류비와 운송 효율, 운전자 부족과 안전 문제까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열린다.
도로공사가 도로관리 기관에서 AI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변해야 하는 이유다.
휴게소도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유정훈 사장이 취임 후 첫 행선지로 선택한 곳은 본사가 아니라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였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유 사장은 휴게소를 단순히 밥을 먹고 쉬는 공간에서 대중교통 환승, 미래 모빌리티, 지역사회 상생, 문화와 여가가 결합된 '다목적 복합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는 휴게소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기차 충전과 새로운 교통수단의 환승, 지역 관광과 상업시설 등이 연결되는 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도 있다. 유 사장은 휴게소 입점업체의 높은 수수료를 유발하는 다단계 운영구조와 퇴직자 단체의 휴게소 운영 문제 등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을 통한 국민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AI 전환과 경영 혁신이 따로 갈 수 없다는 의미다. 미래 기술을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불합리한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AI의 출발점도 결국 안전이다
한국도로공사의 AI 전환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안전이다. 고속도로는 하루에도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이 이동하는 국가 핵심 시설이다.
AI가 교통량과 사고 위험, 기상과 도로 상태를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면 사고 예방과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자율주행 역시 기술 자체보다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는 도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 사장은 안전순찰원에게 현장 통제 권한을 부여하는 등 스마트하고 안전한 교통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취임 이틀 만에 시설관리 자회사를 찾아 현장 노동자들의 냉·난방시설과 환기장치, 휴게시설을 직접 점검한 것도 안전과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 방향을 보여준다.
첨단 AI 기술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AI 전환의 최종 목적 역시 사람에게 더 안전하고 편리한 도로를 제공하는 데 있어야 한다.
고속도로가 지역을 다시 연결한다
유 사장은 국토 균형발전도 한국도로공사의 주요 역할로 제시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국 '5극 3특' 초광역권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AI 시대에 이러한 연결은 더욱 중요하다.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시설, 첨단산업이 수도권에만 집중된다면 AI가 오히려 수도권 집중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전국 고속도로망을 따라 전력과 데이터 인프라가 구축되고 지역의 산업단지와 물류망이 연결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AI 인프라의 지역 확산을 지원하는 국가 네트워크로 고속도로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대 고속도로가 전국의 공장과 도시를 연결했다면 AI 시대의 고속도로는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 에너지와 물류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산업화의 대동맥에서 AI 문명의 대동맥으로
유정훈 사장이 그리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의 미래는 결국 '도로의 재정의'로 압축된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전력과 데이터가 함께 흐르는 도로로, 도로를 관리하는 공기업에서 AI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사람이 운전하는 물류에서 AI와 자율주행이 지원하는 물류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대동맥이었던 고속도로에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고 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반도체와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AI를 작동시킬 전력과 데이터를 전달할 통신망, 데이터센터와 물류를 전국적으로 연결하는 물리적 인프라가 함께 필요하다.
한국에는 이미 전국을 연결하는 거대한 고속도로망이 있다. 문제는 이 자산을 AI 시대에 어떻게 다시 활용하느냐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 경제를 연결했던 고속도로가 AI 시대에는 전력과 데이터, 자율주행과 물류를 연결하는 새로운 국가 대동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유정훈 한국도로공사 사장:
유사장은 교통·인프라 분야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도시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퍼듀대에서 교통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통연구원 책임연구원을 거쳐 2005년부터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교통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26년 6월 한국도로공사 사장에 취임해 AI 모빌리티 인프라와 서비스가 결합된 미래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