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원의 글로벌 렌즈] 美·사우디 원자력 협정, 한국도 李 방미서 원자력 협의 진전돼야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부부 주최 공식 환영 만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원자력 정책이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2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민간 원자력 협정을 체결했다. 구체적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기업의 참여 등 일정 조건 하에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까지 허용하는 방향으로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등의 허용에 극도로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런 미국이 스스로 세운 원칙에 예외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배경은 분명하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을 견제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우디를 자국 진영으로 확실히 묶어두기 위해 원자력 협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중동 내 핵확산 가능성과 사우디의 지역 패권 추구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협정을 체결한 것은 미국이 비확산 원칙보다 전략적 국익을 우선시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미국이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핵 정책을 조정할 수 있다면 70년 넘게 동맹을 유지해 온 한국 역시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미국이 현재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인 한국은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서 있는 동맹국이다.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와 핵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면, 한국과도 원자력 협력을 진전시키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

한국은 NPT를 성실히 준수해 왔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가장 엄격한 사찰을 받아온 국가인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건설·운영 기술을 보유한 나라다.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성공적으로 완공했고 체코 등 유럽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핵연료주기의 핵심인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권한은 여전히 한미 원자력협정의 제약을 받고 있다. 원전을 수출하면서도 핵연료를 독자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구조는 원전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다.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국내 원전 저장시설은 점차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고, 원전 확대 정책이 지속될수록 문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 이재명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원자력을 양국 전략협력의 핵심 분야로 꼽은 가운데 차세대 원전과 핵연료 등 원자력 전반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와의 협력은 한국 원전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미 원자력협정의 틀을 넘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활용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24일부터 시작되는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허용하며 원자력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은 만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라늄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포함한 한미 원자력협정의 추가적인 발전 방향도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사우디와의 원자력 협정은 전략적 필요가 있을 경우, 미국이 기존 원칙도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렇다면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한국의 원자력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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